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좌측메뉴

제목
風納土城에서“백제 초기 도로”발견- ’06년 풍납토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 개최 -
등록일
2006-11-21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956
국립문화재연구소(소장 김봉건)에서는 백제 초기 도성인 풍납토성(사적 제11호)에 대한 제1차 10개년 학술조사 추진계획을 수립, 풍납동 197번지일대(舊 미래마을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漢城百濟 (B.C.18~A.D.475) 당시에 축조한 도로, 대형 폐기장, 석축수로, 주거지 등 80여 기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여기서는 수천 점의 기와를 비롯, 각종 토기류, 토제초석, 철기류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금번 조사에서 확인된 도로는 지금까지 경주의 신라왕경이나 백제 사비시기(A.D.538~660년) 부여·익산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도로에 비해 최소 200~300년 정도 앞서는 것이며, 초기 백제의 유력한 왕성으로 추정되고 있는 풍납토성 내에서도 처음으로 확인된 귀중한 자료이다. 발견된 도로는 너비 8m, 확인 길이 41m의 남북도로 1기와 이것과 교차하는 너비 5m 정도의 동서도로 1기이다. 도로는 먼저 너비 7.5~8m로 땅을 얕게 판 후 가운데 부분에 폭 5m, 두께 20cm 가량의 잔자갈을 가운데가 볼록하도록 깔아 노면을 조성하여 양 측면으로 빗물이 자연스럽게 배수되도록 축조하였다. 이렇게 노면에 자갈을 다져서 축조하는 방법은 사비시기 부여의 궁남지나 관북리유적, 익산의 왕궁리유적의 도로가 노면에 특별한 포장을 하지 않는 것에 비해 많은 공력이 소요되는 것으로 풍납토성의 위상을 실감케 한다. 또한 이 도로들은 한성기 후기에 들어선 주거지나 수혈에 의해 일부가 파괴된 채로 조사되고 있어 그 축조·사용시기가 한성기의 비교적 이른 시기인 3세기대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여, 신라 왕경이나 부여지역의 이른 시기 도로의 상한연대가 6세기 무렵인 것에 비교하면 적어도 30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이외에도 각종 석렬과 석축, 수로 등 이 시기 유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유구들이 도로와 함께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한성기 이른 시기 이 일대에 중요한 시설물이 들어서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004년부터 진행된 본 지역의 조사를 통해 도로를 비롯하여 수천 점의 기와와 토제초석, 토관 등이 발견된 폐기수혈, 석축수로와 석렬, 주거지 및 이에 부속된 각종 수혈 등 80여 기가 넘는 한성 백제기의 유구들이 새롭게 발견되었으며, 출토된 유물 또한 수 만점에 이른다. 향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197번지 일대(20,955㎡)의 나머지 지역에 대한 조사를 2010년까지 추진할 계획이며, 그 이후에도 풍납토성내 사적지정지역에 대한 연차조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여 백제사의 보고(寶庫)인 풍납토성의 실체규명에 주력할 예정이다. ▣ 자문회의 일시 : 2006. 11. 21(화) 11:00 ▣ 주민을 위한 현장설명회(2회) : 2006. 11. 21(화) 16:00 / 11. 22(수) 14:00   ▣ 장      소 : 서울시 송파구 풍납1동 197번지 일대 발굴현장   ▣ 조 사 기 관 : 국립문화재연구소   ▣ 발 굴 기 간 : 2006. 3. 2 ~ 현재 ※ 이 보도자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국립문화재연구소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학예연구관 홍형우 010-9936-5678, e-mail honghw@nricp.go.kr 학예연구사 신종국 017-209-0293, e-mail sjk1203@ocp.go.kr [SET_FILE]1[/SET_FILE][SET_FILE]3[/SET_FILE][SET_FILE]2[/SET_FILE]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문화재청은 「저작권법 시행령」제73조 및「공공저작물 저작권 관리 지침」제22조에 의해 공공누리를 2012.10.16.부터 적용합니다.
첨부파일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