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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학술조사보고서 발간
등록일
2010-01-22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677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 Ⅲ-2001~2007년 조사구역 백제유적편』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 Ⅳ-2008년 조사구역편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백제 사비기(538~660년) 왕궁터로 추정되는, 부여 관북리백제유적(사적 제428호)에 대한 발굴조사 내용(2001~2008년도) 수록한『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 Ⅲ, Ⅳ』2권을 발간했다.

  

  부여 관북리백제유적은 1982년 주춧돌과 연화문수막새 등 백제시대 유물이 다수 발견되면서 백제 사비기의 왕궁 후보지로 인식된 이후 1982년부터 1992년까지 충남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로 백제시대 연못과 도로, 각종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성과에 힘입어 2001년에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이 일대의 전반적인 조사를 통해 왕궁의 위치와 규모를 확인하고자 학술발굴조사가 재개되었다. 학술발굴조사는 부여군의 의뢰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8년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번에 간행된『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 Ⅲ』에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남편과 서편 일대 “추정 왕궁터”에서 조사된 백제시대 대형 전각(殿閣)1)건물터,  돌이나 나무로 짠 지하 저장고시설, 방형의 연못, 도로, 기와로 조립한 도수(導水)2)시설 등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대형 전각건물터는 익산 왕궁리 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는 중심적인 건물의 하나로 이 일대가 왕궁터였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유구 중 하나이다. 더불어 ‘수부(首府)’라는 글자가 찍힌 명문와, ‘하천상(下賤相)’이 쓰인 목간, 변기형토기인 호자(虎子), 불상의 광배(光背), 백제인의 얼굴이 그려진 묵서인면문토기 등 다양한 연구 자료와 유물이 다수 확인되었다.

  

  또한『부여 관북리백제유적 발굴보고 Ⅳ』는 2008년 구드래 주차장부지 일대에서 조사된 백제시대의 기와 깔린 시설(건물지) ? 석축시설,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우물지 등을 발굴조사 한 결과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저습지를 메우고 대지를 조성하여 왕궁의 영역을 서북쪽으로 확장한 사실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흙을 돋아 대지를 조성한 흔적은 백제 관북리 백제유적 곳곳에서 확인되었는데 크게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따라서 백제시대에 이 일대에서 대규모 토목공사를 두 번에 걸쳐 실시하여 사비의 중심 공간을 재정비하고 영역을 확장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 발간되는 보고서를 통해 부여 관북리 일대에 분포하는 백제시대 유구의 분포 양상과 시기적 변천 과정을 종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앞으로 사비기 백제 왕궁 연구에 중요한 기본 자료가 될 것이다.


  한편, 2008년까지의 조사로 부여 관북리 백제유적 일대에 대한 조사가 일단락  되었으나 아직도 정전(正殿)의 위치 등 왕궁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미 시가지로 변한 부소산 남쪽 기슭에 대한 전면적인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 따라서 부여군의 부여고도보존계획과 보조를 맞추어 이 일대에 대한 장기적인 학술 발굴 조사계획을 수립하여 백제 사비기 왕궁의 실체를 지속적으로 구명해 나가고자 한다.



1) 궁궐


2) 물이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물길을 만듦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김낙중 041-832-1965
                                        정자영 041-833-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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