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페이지 경로
기능버튼모음
본문

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26 ]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발상지
등록일
2008-10-07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082
-------------------------------------------------------------------------

★Quiz정답을 보내실때★

정답과 함께 *이름*연락처*주소*이메일 주소* 를 꼭~!꼭~!입력해 주세요~

다른 입력사항이 없으면 당첨이 안되요..ㅠㅠ

*Quiz정답은

① 글아래 [메일보내기]버튼을 클릭~!

② 뉴스레터 하단에 [한줄의견]버튼을 클릭~! 해주세요^^

③ 참고로 퀴즈담당자 메일주소는 [chquiz@ocp.go.kr]입니다.

*Quiz 마감일은 매주 금요일입니다.

*당첨자는 다음호(문화재발견_103)에서 발표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0^

-------------------------------------------------------------------------



[center] ◆ 화동 구 경기고교 ◆





1. 등록번호 : 제2호(2002년 2월 28일 등록)

2. 소유자 : 서울특별시교육청

3. 설계자 : 미상

4. 건립연도 : 1938년

5. 면적 : 연면적 6,979.4㎡

6.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동 2

7. 현 용도 : 교육시설(도서관)

8. 구조 : 철근콘크리트조 벽돌벽 구조



‘화동(花洞)’이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동네에는 우리에게 오랫동안 아주 익숙한 한국 중등교육기관의 자부심이었던 학교가 위치해 있었다. 경기고등학교가 바로 그것이다. 이 땅에 첫 근대중등교육기관으로 출범한 경기고등학교는 대한제국기인 1899년 4월 4일 칙령 제11호에 따라 중학교 심상과 4년, 고등과 3년 과정으로 1900년 관립중학교로 출범하였다.1906년 관립한성 고등학교, 1911년 경성고등보통학교, 1921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1938년 경기공립중학교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학교 명칭의 변화에는 주권의 변화와 한국근대교육사의 흐름이 반영되어 있다.



1921년 경성제1고보로의 개칭은 중등교육수요 증가에 따른 제2고보(현 경복고등학교)의 신설에 따른 것이었고, 한인 교육시설에 붙여졌던‘고등보통학교’가 중학교로 바뀐 것은 황국신민화정책의 일환이었다. 고등보통학교는 일본인 학교 ‘중학교’와는 명칭뿐 아니라, 학제 면에서도 6년제 중학교와 달리 5년제로 운영되어 일정한 차별이 있었다. 1938년 고등보통학교가 중학교로 개칭되어 외견상 일본인 학교와 동일한 학제를 갖추게 되는데, 이는 일본이 대륙진출을 본격화 하면서 황국신민화정책을 강화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구경기고등학교 본관은 이 시기에 건립되었다.



안국동 로타리에서 안동별궁이 있었던 풍문여고를 오른편에 끼고 경사길을 오르다 보면 왼편에 아트선재미술관이 있고, 그 대각선에 경기고등학교가 있었다. 화동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화개동(花開洞)에서 유래했는데, 장원서(掌苑署)가 있어 화초를 재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이를 줄여 화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지역은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중앙고보, 휘문고보 등)이 밀집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그 중심은 경기고등학교였다. 이 학교 터는 조선말기 개화파 관료들의 거주지였다. 처음엔 김옥균의 소유였는데 그 뒤 서재필과 박제순의 집이 더해지면서 교지가 넓어졌다.



70년대까지 일류 고등학교의 대명사이던 경기고등학교가 도심과밀화 방지와 강남개발이라는 정부시책에 따라 강남으로 이전해갔지만, 우리나라 중등교육의 발상지라는 역사적 의의를 살려 여타 학교 이적지에 대기업 사옥이 들어선 것과는 달리 서울시민을 위한 시립도서관으로 사용되어왔고,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2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구 경기고 본관은 1938년 철근콘크리트조에 중앙난방으로 건축된 한국근대 학교건축의 3세대에 해당하는 건축물이다. 철근콘크리트조 학교 건축은 개화기의 양식목조 건축으로 지어진 1세대 목조 학교 건축과 1920년대에 벽돌조로 지어진 2세대 벽돌조학교 건축의 뒤를 이어 등장한 3세대 학교건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구 경기고등학교 본관은 철근콘크리트조였지만, 철근콘크리트의 구조적 특징이 디자인으로 연결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



양식건축의 특징인 엄격한 좌우 대칭과 중앙이 강조되는 구성,??돌출된 현관부를 통하여 기존의 권위적 상징성의 부여가 신 교사 디자인에서도 중요했음을 보여준다. 특히,중앙현관 상층부 수직부분은 중심성을 강화시켜줄 뿐 아니라, 좌우 수직요소 반복은 고딕건축의 양식적 요소가 간략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전면 디자인은 여전히 벽돌조 건축물의 입면 패턴의 관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주현관의 곡면부 처리와 창호, 양측면의 후면부 계단실 모서리 개구부 디자인에는 철근콘크리트조 모더니즘 건축의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현 정독도서관 내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산재해 있다. 서울교육사료관으로 사용되는 구 경성고등보통학교 시절의 교사는 문화재는 아니지만 초기 벽돌조 교사의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또한, 현재 정원으로 바뀐 운동장 동쪽 오른편에는 종친부(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호)가 자리 잡고 있다. 종친부는 왕실 일가 친척들이 인사상의 문제와 종친간의 문제 등을 논의하던 곳으로 옛 국군수도통합병원 후원에서 1981년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흥미로운 것은 구 본관과 2동 사이에 있는 우물이다. 이 우물에는 “둥근 우물이다. 아마 전조(前朝)때 것 같은데 샘은 메어지고 흔적이 없고 다만 돌만 우뚝하구나.”라는 명문(1900년/광무4년)이 새겨져있는데, 이는 경기고등학교의 출범시점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이 땅의 연혁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밖에도 한국현대건축을 주도했던 이천승의 구 음악당(현 직원식당), 김태식의 2동 건물(구 교사동)도 1960년대 건축의 일면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산이다.





-----------------------------------------------------------------------------------



*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






첨부파일
    등록된 파일이 없습니다.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