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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⑮ ] 일제강점기 학교건축의 변천사
등록일
2008-07-14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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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 대봉동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및 강당



1.등록번호 : 제5호(2002년 2월 28일 등록)

2.소 유 자 : 교육과학기술부

3.설계자 : 미상

4.건립연도 : 본관 1923년, 강당 1925년

5.면적 : 본관 - 건축면적/849㎡,연면적/1698㎡

6.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60-18번지

7.현용도 :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고교 교사, 강당

8.구조 : 본관 - 적벽돌 조적조(지상 2층), 강당 - 적벽돌 조적조(단층)

9.참고문헌 : 대구지역근대건축물조사보고서(영남대민족문화연구소,1988)

대구시사 제4권(사회편, 대구시,1995)



일제강점기의 사범학교는 일제 식민지 정책을 실천하는 교원의 자질 함양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대구사범학교도 이러한 목적으로 1923년 4월 경북 도립 사범학교로 개교한 후 1929년 4월에 관립 대구사범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해방 후인 1946년 10월 15일에 대구사범학교 본과는 국립 대구사범대학으로 승격되었다. 심상과는 대구사범대학 부속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10월에 경북대학 사범대 부속중학교로 개칭되었다.



1923년에 준공된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은 북측 도로에 면한 ‘一자형’의 붉은벽돌조 2층 건물로 오랫동안 부속중학교 본관으로 사용되었다. 1972년 2월에 화재로 건물 서측면 교실이 전소(全燒)되고 외벽만 남았으나 이 학교를 졸업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원형에 가깝게 복구되었다. 지금은 내부를 수리하여 부속중고등학교 역사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는 정면에 해당하는 북측에 복도를 둔 편복도식으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에 교무실 등의 관리실과 일반교실을 남향으로 배열했다. 1층의 중앙부에는 역사자료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본관 좌우측 끝에 계단실이 있다. 지붕은 당초 일식(日式) 평기와로 마감되었으나 화재이후 수리하면서 아스팔트 싱글로 교체되었다.



본관은 정면 중앙에 돌출된 현관을 두고, 좌우의 지붕에 박공을 설치한 형태로, 본관 건물로서의 권위와 절제된 건축미를 잘 나타내고 있다. 돌출된 현관은 4개의 사각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평지붕을 올린 형태이다. 현관의 돌기둥 앞에는 공 모양으로 만든 두 개의 대형 장식 석물(石物)을 올려놓았다.



건물 외벽은 화강석 줄기초 위에 붉은벽돌을 쌓고, 일정한 간격마다 키 큰 창을 냈다. 창문은 원래 목재 오르내리창이었으나 지금은 알루미늄 새시 창으로 바뀌었다.



창문 2개소마다 1개의 상인방을 사용하여 마치 수평 띠처럼 인식되며, 창문 아래의 화강석으로 만든 하인방은 빗물이 흘러내리도록 물 흘림 경사를 두었다. 1층 창문의 하인방과 그 좌우 벽체는 인조석으로 마감되었고, 처마는 벽돌을 3단으로 내쌓고 인조석으로 마감하였다. 본관의 1, 2층 바닥은 당초 모두 마루였으나 수리하면서 콘크리트 바닥으로 바뀌었다. 건물 좌우 끝의 계단은 목조 계단으로, 난간을 구성하는 엄지기둥에만 간단한 장식을 하여 간결하게 처리했다. 현관 오른편에는 대구 사범학교 학생들의 독립운동을 기념한 <대구사범학교사건>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사건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에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의 활동이 적발된 사건으로 학생 35명이 1940∼41년에 문예부·다혁당(茶革黨) 등의 비밀 항일단체를 결성하였고, 《학생》 《반딧불》 등을 발간하여 일반 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고취시켰으며,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각 학교에 배치되면 국사와 국어를 가르치라고 권장했다. 그러나 1941년 8월 《반딧불》이 일본 경찰에 압수됨으로써 관련자 전원이 체포되었다.



강당은 구 본관의 서측면에 인접하여 건축된 단층의 붉은 벽돌조 건물이다. 1925년에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실내체육 및 집회활동을 위해 건축되었다. 강당은 동서 방향으로 긴 장방형이며, 우진각 지붕 앞뒤에 6개의 반원형 도머창이 돌출되어 변화 있는 외관을 형성하고 있다. 주출입구는 서편 운동장 서편에 있으며, 강당 내부의 넓은 마루와 무대, 준비실 등은 당시 이곳에서 체육 및 집회활동이 행해졌음을 말해준다.



강당 외벽은 화강석 줄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쌓은 것으로, 외벽 양 측면 모서리에는 버팀기둥을 세워 벽이 구조적으로 안정되게 했다. 뒷벽에는 모자이크 타일로 학생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새겼다. 외벽의 창은 키 큰 장방형으로, 목재 오르내리창이 당초 모습대로 남아있다. 창 위쪽의 상인방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붕 처마부분에 화강석을 3단 내쌓은 것이 마치 처마 돌림띠처럼 보인다. 강당 내부 바닥에는 좁은 목재 쪽널을 깔았으며, 출입문에는 여닫이 목재 양판문을 달았다. 천장은 폭이 넓은 합판을 대고 우물 정(井)자 형태로 졸대를 붙여 마감했다.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 및 강당은 지역 교육계 및 사회에 기여한 많은 인재들이 교육받은 유서 깊은 건물이다. 일제 중반기의 학교 본관 및 강당의 형식과 구조수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근대기 학교건축의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무엇보다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된 많은 인물들이 이 건물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건축물이며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제5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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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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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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