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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 ⑬] 우리 혼이 담긴 무술, 택견
등록일
2008-01-28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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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견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술입니다. 택견을 할 때에는 굼실굼실 너울거리는 독특한 동작을 기본으로 동작 하나하나에 탄력을 주며 부드럽게 움직이지요. 이러한 동작은 상대로 하여금 공격의 기세를 무디게 만들고, 상대의 공격에서 오는 충격을 줄여 줍니다. 언뜻 보기에는 탈춤처럼 경쾌하면서 부드럽지만, 안에서 나오는 엄청난 힘으로 상대의 목숨을 단번에 끊을 수도 있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무술



안악 3호분의 앞방 동쪽 곁방 입구 남쪽 상단에 그려져 있다. 고구려는 무예를 중요하게 여겼으므로 수박희가 백성들 사이에 성행한 것으로 보인다.



택견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다만 무술이 제천의식에서 생겨났다는 점에서 볼 때, 택견도 집단생활을 시작했던 선사 시대 때 생겨났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택견의 동작을 그대로 옮긴 듯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요. 이는 고구려 때 무예가 크게 발전했으며, 택견이 고구려 발전에 뒷받침이 되었던 중요한 무술이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택견은 ‘수박희’이나 ‘각희’라고도 하는데, 수박희는 택견의 손질을, 각희는 발질을 특히 강조해서 부르는 이름이에요. 수박희가 택견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기록된 것은 1798년에 쓰여진 『재물보』라는 책입니다. 『재물보』에는 “수박희는 ‘변’이라 하고 각력은 ‘무’라 한다. 지금에는 이것을 ‘택견’이라 한다.”라고 적혀 있어요.

삼국 시대에는 국가정책으로 무술을 크게 장려했답니다. 고려 시대에도 수박희는 무사들이 반드시 수련해야 하는 과목이었습니다. 기예가 뛰어난 무사들에게는 신분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기 때문에 수박희의 기술은 더욱 발달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앞다투어 이를 배우려고 했지요. 조선 시대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무술을 천하게 여겼으나, 병사를 뽑는 시험 과목에는 수박희가 있었다고 해요. 조선 후기에는 평민이나 천민들까지 택견을 열심히 연마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까지도 무사들의 택견을 흉내내며 놀았을 정도였지요. 이는 우리 조상들이 택견을 무술로서만이 아니라 놀이로도 즐겼음을 보여 주는 예입니다.



굼실굼실 독특한 리듬에 맞춰

택견의 움직임에는 품밟기와 활갯짓이 있습니다. 품밟기란 양 발을 어깨 넓이로 벌린 상태에서 정면에 있는 한 점을 번갈아 밟는 것이에요. ‘품(品)’ 자 모양처럼 삼각형을 이루는 세 지점을 밟는다는 뜻이지요. 품밟기 동작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활갯짓이란 두 팔을 위아래나 옆으로 움직이거나 둥글게 원을 그리며 안팎으로 돌리는 동작을 말합니다. 이 때 몸에 독특한 리듬을 주어 굼실거리는데, 품밟기를 하면서 활갯짓을 하는 모습이 부드럽고 아름다워서 전통 무용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택견은 주먹 대신 손바닥이나 손아귀를 주로 사용하며, 특히 발질을 많이 합니다. 그 쓰임새가 아주 많아서 옛 시인은 택견을 “백기신통비각술”이라고까지 말했답니다.



택견의 심판은 구경꾼

택견은 두 사람이 주로 발로 차서 상대를 넘어뜨리는 경기입니다. 경기하는 사람은 언제나 세 지점 가운데 한 곳에 발을 두어야 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 상대의 발 앞에 한쪽 발을 내밀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대접한다’고 하지요.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자리를 잡고, 지고 있는 쪽 선수가 먼저 상대의 다리를 툭 차는 것으로 경기를 시작합니다. 상대는 차인 다리를 뒤로 물린 다음 발을 바꿔 차는데, 이 때 높게 차기도 하며 높게 찬 다리를 양 손으로 잡아 상대를 넘어뜨리기도 합니다. 택견의 승부는 상대를 넘어뜨리는 것뿐 아니라 얼굴을 발로 차는 것으로도 판가름할 수 있으므로 어려운 발질을 많이 익혀야 해요. 높이 찬 발을 상대가 손으로 잡아 넘길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얼굴을 공격하지는 못하지요.

택견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심판이 나서지 않아도 경기가 잘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구경꾼들이 선수이기도 하고 심판이기도 하거든요. 두 선수가 너무 떨어져서 진행이 지루하다 싶으면 “붙어, 바짝 붙어!”라고 소리치기도 하고, 얼굴을 차이고도 계속 경기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선수가 있으면 “어서 빨리 손을 땅바닥에 짚고 나와!”라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이처럼 구경꾼들의 의견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기가 진행되고 판정이 이루어지지요.



아름답고 과학적인 무술



택견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무술입니다. 역사학자 신채호(1880∼1936)는 『조선상고사』라는 책에서 택견이 중국에 들어가 권법이 되고, 일본에 건너가 유술, 즉 유도가 되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택견은 매우 과학적인 무술입니다. 몸의 모든 근육들을 생김새 그대로 움직이도록 하므로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을 뿐 아니라 거리가 멀 때에는 발질로 차고 들어가다가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지면 순식간에 상대를 걸어 넘어뜨리는 빠르고도 부드러운 무술입니다.

택견은 아름다운 무술입니다. 두 사람이 맞서서 택견을 어우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춤을 추는 건지 싸움을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아름답고 우아합니다. 이는 한국인의 몸 속에 배어 있는 예술적 재능이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천 년을 이어 온 택견

일본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우리 민족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막으려고 민족말살정책을 폈습니다. 그래서 민족정신이 담긴 전통 무술까지도 탄압했지요. 택견을 하는 사람들은 보는 대로 잡아갔으며, 대신 일본의 가라테와 검도, 유도를 보급해 우리 민족에게 일본 정신을 심으려 애썼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을 이어 온 택견의 맥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었지요. 택견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신한승(1928∼1987) 같은 분들이 있었던 덕분이랍니다. 택견은 신한승의 집념과 노고에 힘입어 198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되어 빛을 보게 되면서 더욱 활발하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제 택견은 생활 무술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무술로서 그 가치를 세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천의식 |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 지내는 종교 의식으로, 노래하고 춤추고 술 마시며 즐겼다.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마한의 시월제 등이 있다.

민족말살정책 | 한글 등 민족 고유의 정신이 담긴 것을 말살해서 영원히 일본의 식민지가 되게 하려던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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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계절출판사에서 발간한 [어린이 문화재 박물관②]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과 사계절 출판사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홍보담당관실 (042.48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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