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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역사와 전설이 공존하는 사명대사, 원불과 원장 발견
등록일
2007-10-02
주관부서
작성자
문화재청
조회수
5145
문화재청(청장 兪弘濬)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김상옥)와 함께 추진하는 ?불교문화재 일제조사 사업?을 통해 사명대사께서 원불로 지니고 계셨던 금동여래좌상을 발견하였으며, 불상 복장인 원장을 통해 최종 확인되었다. 포항에 소재하는 대성사에서 조사단은 주지 운봉 스님이 은사 해봉 스님으로부터 전해 받아 보관하던 불상 한 구를 발견하였다. 이 불상은 높이가 불과 10㎝ 남짓한 작은 크기였지만, 조형성이나 양식 측면에서 결코 예사로운 불상이 아니라고 생각한 조사단은 예전 자료와 복장유물을 통해 사명대사 원불임을 최종 확인했다. 이 발견 사실은 금년 4월, 금동여래좌상 발견 소식과 함께 국가지정문화재 지정을 신청하기로 하였다는 내용으로 지역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포항 대성사 ‘금동여래좌상’은 1800년 남공철이 찬한 ?사명대사기적비(四溟大師記積碑)?에서 사명대사 원불에 대해 처음 알려지고, 1912년 조선총독부가 건봉사 낙서암 전송운대사에게서 불상을 촬영함으로써 대성사 불상이 사명대사 원불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료를 남겼으며,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1932년) ?보물조?에서 사명대사 원불의 존재가 다시금 확인된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대대적인 폭격으로 건봉사는 물론이고 사명대사 관련 유물이 대부분 소실되었고, 이 불상도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는 듯 했으나 2006년 조사를 통해 다시금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불상은 고려 말, 조선 초 왕실발원으로 금강산 일대에서 많이 조성된 불상 중 하나로 추정되며, 당시에 유행했던 라마교 불교양식을 잘 소화시켜 크기는 작지만 당당하고 품격 높은 예술성과 종교적 이상성이 잘 어우러진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불상이 세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명대사와 관련된 유물이라는 때문이다.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은 승려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때 승병을 규합하여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전후 정전회담에도 참여한 특이한 경력을 가지신 분이다. 임진왜란 때 잡혀간 무고한 백성과 약탈된 통도사 불사리를 찾아 왔으며, 불사리 12과를 건봉사에 봉안하였다. 불상 복장에서 나온 원장(願狀)은 1584(萬曆 甲申)년에 쓴 것으로서, 승려로서 자신의 염원하는 바를 한지에 자필로 써내려갔다. ‘釋迦如來遺敎弟子四溟沙門惟政歸依’로 시작하여 승려로서 자신의 염원하는 바를 한지에 자필로 써내려가고 ‘萬曆甲申十二月十六日弟子惟政願狀’으로 끝을 맺었다. 원장의 크기는 21(가로)×20.1(세로)㎝로서 이것을 꼼꼼하게 접어 불상 안에 보관하여 왔다. 문화재청에서는 불상에 대한 지정조사와 원장에 대한 보완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0월 개최되는 문화재위원회에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지정 여부를 검토하게 된다. 붙임 : 사명대상 원불(금동여래좌상) 및 원장 사진 1부. [SET_FILE]1[/SET_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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