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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① ] 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
등록일
2008-04-07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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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동 구 서울공과대학




1.등록번호 : 제12호(2002년 5월 31일)

2.소 유 자 : 서울산업대

3.설계자 : 조선총독부 회계과 영선계

4.건립연도 : 1942년

5.면적 : 본관 연면적/10,193㎡, 전기전자관 연면적/8,853㎡

6.위치 :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172

7.현용도 : 교육시설

8.구조 : 철근콘크리트조(지하 1층, 지상 3층)



1938년 4월 칙령 제251호로 조선총독부는 ‘경성제국대학 학부에 관한 건’을 개정하여 경성제국대학에 이공학부를 추가하고, 1941년 3월 조선총독부령 제29호에 의해 물리학과, 화학과, 토목공학과,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과, 응용화학과, 광산야금학과 7개 학과를 설치하였다. 해방직후 경성제국대학은 한 때, 경성대학으로 개칭되었으나, 1946년 ‘국립서울대학교’추진계획에 따라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개편되었다. 본 건물은 1980년 서울공대가 관악으로 이전할 때까지 공과대학 본관으로 사용되었으며, 서울공대가 이전한 후에는 경기공업개방대학을 거쳐 서울산업대학교로 사용되고 있다.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의 본관으로 건축된 본 건물은 근대건축 양식 및 상징성을 강조하는 8층 높이의 타워, 현관의 권위성, 중정을 구성한 ‘ㅁ’자형 배치와 한국 근대 고등공업교육의 최고학부가 위치했던 곳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건축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당시는 물론 해방이후에도 오랫동안 한국공학교육의 요람이었던 곳이 도심에서 왜 그리 먼 곳에 세워졌을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가 설립된 시기와 그 이면에 숨겨진 목적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938년은 일본이 대륙침략 욕심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중일전쟁을 도발한지 1년 후이고, 이어서 보다 큰 전쟁인 태평양전쟁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동 시기에 일본의 최고학부인 동경제국대학 공학부가 확대되면서 제2공학부가 설립되었다. 그런데, 제2공학부는 기존 공학부 캠퍼스와는 달리, 넓은 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니시치바(西千葉)에 위치하였을 뿐 아니라, 군사시설도 함께 설치되었다고 한다. 이는 제2공학부의 설립목적이 전쟁수행을 위한 군사기술 개발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역시 기존의 캠퍼스인 동숭동에서 멀리 떨어진 태릉에 위치하였고, 공교롭게도 현 육군사관학교가 위치한 곳에는 일제강점기말에 일본군 부대가 위치해 있었다.



이는 동경제국대학 2공학부의 설립목적이나 운영과 같은 맥락 속에서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두 공학시설의 설립 목적이 모두 전시체제하에서 전쟁수행을 위한 고급기술개발과 인력을 양성하는데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개발을 위한 고급기술자 양성과 함께 개발한 기술을 실전에 배치할 수 있는 실험장이 함께 필요했기 때문에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대규모 교육, 연구개발 및 실험공간의 확보와 군부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1호관과 2호관 두 건물은 위계에 따른 배치, 규모, 세부 표현에 있어 명확한 차이를 갖고 있다. 배치에서 1호관인 본관은 대학 정문과 마주하고 있어 매우 직설적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으며, 2호관은 본관의 오른쪽 뒤편에 한걸음 물러난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두 건물 모두 절제된 근대건축의 미학을 구사하고 있지만, 1호관 중앙의 높은 타워는 본관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권위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복되는 세로로 긴 사각형 창은 조적구법에서 나타나는 창호의 모습으로, 철근콘크리트조에서는 적절한 건축어휘가 아니다. 그러나 단순 어휘를 무한 반복시켜 모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합리주의 경향은 동 시기 군국주의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태리와 히틀러의 나찌 독일의 건축흐름과 맥을 같이한다.



외관의 구성방식이나 현관로비의 구성방식 등은 양식적 변이와 재료사용에서 양식건축과 차이를 가질 뿐, 공간구성에 있어서는 이전의 양식건축의 그것과 차이가 없는 것도 모더니즘 건물이면서도 권위적 이미지를 갖게 하는 한 원인이다. 따라서 본 건물군은 건축 재료와 기술의 변화로 구법은 모더니즘을 따르고 있지만,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의 입지로 교외가 선정된 것이나, 군부대와의 인접배치 등에서 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의 군국주의의 목적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셈이다. 구서울공대 건물은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12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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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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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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