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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41 ] 전형적인 미국 모더니즘 주택양식
등록일
2009-02-02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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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이승만 별장 ◆






1. 등록번호 : 제113호(2004년 9월 4일 등록)

2. 소유자 : (주)제주축산개발

3. 설계자 : 미상

4. 건립연도 : 1958년

5. 면적 : 연면적 49.59㎡

6. 위치 :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산155번지(송당목장 내)

7. 현 용도 : 별장용 주택

8. 구조 : 석조 및 시멘트벽돌 조적조(지상 1층)

9. 참고문헌 : 제주도 근대문화유산 조사 및 목록화 보고서(제주도, 2003)

제주 이승만별장 기록화 조사보고서(문화재청, 2005)



제주 이승만 별장의 원래 명칭은“귀빈숙사”또는“귀빈사”로 불리었으며 현재 송당 목장에서 남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있다.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와 그 주변에는 울창한 수림이 조성되어 있어 그 풍광이 마당 한 가운데 서있는 팽나무 한그루와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다.



이 건물의 태동은 한국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이었던 밴플리트(James Alward Van Fleet)가 미국 플로리다로 낙향하여 목장을 운영하던 195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해 밴플리트는 이승만 대통령에게‘제주에 동양 최대의 미국식 목장’을 만들 것을 건의하였다. 이에 따라 1956년 이승만 대통령, 밴플리트(당시 한미재단 고문), 군수뇌부, 농림부장관 등이 제주도를 방문하여 지금의 송당을 최종후보지로 결정하고,‘국립 제주도 송당목장 개발계획’에 착수하였다. 1957년 10월에 축사 7동, 창고 1동, 특호관사 1동(이승만 별장), 을호관사 3동 등을 일차로 준공하여 지금의 송당 목장의 기틀을 만들었다. 완공된 이후 이승만 대통령은 귀빈사를 한번 이용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제주도민들은 이 건물을“이승만 별장”으로 부르게 되었으나, 현재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건물의 구조와 형식을 살펴보면, 외벽의 바깥쪽은 제주에서 나오는 현무암을 이용하여 동측의 현관 쪽은 바른층으로 쌓았고, 그 밖의 벽면은 허튼층으로 쌓았다. 외벽의 내측과 내벽은 시멘트 벽돌로 쌓았으며, 지붕은 경사가 낮은 지붕으로 아스팔트싱글에 테두리는 동판으로 몰딩되어 있다.





벽면에는 두 가지 기쁨이 동시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쌍희’(囍)자 장식과 테라스 바닥 면에는 만사(萬事)가 뜻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회문 장식이외에 미국 서부의 황소 도안을 장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의 재료와 장식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나, 전반적으로 1950년대 이후 나타나는 전형적인 미국의 모더니즘 주택 또는 전원풍의 주택 모습을 띄고 있다.



이 건물의 공간구성을 살펴보면, 21×72m 정도의 긴 장방형 공간을 크게 3개 영역으로 구성하였다. 중앙에는 공공 공간인 현관과 복도, 거실이 배치되어 있고, 남측에는 개인 공간인 화장실이 딸린 주침실과 2개의 침실,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또한 개인 공간의 반대편인 북측에는 가사공간인 거실과 연결된 식당, 주방, 창고, 유틸리티 그리고 가정부 또는 집사를 위한 침실이 하나의 영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공간의 특징은 1940년대 이후부터 미국의 모더니즘 주택에서 채택되던 개인공간, 공공공간, 가사공간으로 구분되는 기능주의 주거 공간의 구성으로 볼 수 있다.

그밖에 침실의 난방은 우리나라의 온돌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나, 거실과 식당 등은 벽난로, 라지에이터에 의한 복사난방을 채택하고 있어 신발을 벗지 않고 생활하는 서구의 주거방식이 적용된 것을 알 수 있다.

건물의 양식적 특징은 일제강점기에 서구 모더니즘 양식의 주택들이 일본을 경유하면서 일본풍이 첨가되어 우리나라에 정착하던 루트에서 벗어나, 서구의 양식이 곧바로 수입되어 제주도의 토속적인 요소와 결합되어 나타나는 초창기 모더니즘 주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인 면에서 제주도는 고려시대 이래 지속적으로 외래문화와 토속문화가 접속되어 왔다. 고려 말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몽고마를 방목하던 목장으로, 일제강점기는 양과 소들을 방목하던 목장으로, 해방 이후에는 미국식 목장 등 외래문화가 유입되어 하나의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냈다. 이승만 별장은 바로 이런 외래문화와 제주도의 토속적인 문화가 융화되어 나타난 주택코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이 건물은 제주도민들 스스로“이승만 별장”으로 알고 있을 만큼 과거부터 알려진 건물로 역사성이 있으며, 근대주거사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서 그 가치가 있어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재 113호로 등록·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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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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