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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28 ] 근대주의 교회건축의 모델
등록일
2008-10-20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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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 ◆ 서울 혜화동 성당 ◆





1. 등록번호 : 제230호(2006년 3월 2일 등록)

2. 소유자 : 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3. 설계자 : 이희태

4. 건립연도 : 1960년

5. 면적 : 연면적 2,206.78㎡

6.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58-2

7. 현 용도 : 종교시설

8. 구조 : 철근콘크리트 라멘조(지하 1층, 지상 2층)



기존 성당건축의 형태 개념을 거부한 강당형(hall..church)의 성당 건물로 단순 명료한 기하학적 형태, 비대칭 입면구성 등은 1960년대 이후 지어지기 시작한 근대주의 교회건축의 모델이 될 정도로 기념비적인 건물이다. 또한 이 성당에는 한국 가톨릭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어 가톨릭 성미술(聖美術)의 기념비적인 건물로도 인식되고 있다.



혜화동 성당은 전체가 철근 콘크리트구조의 단순한 상자(box)형 건물로 평면은 장방형인데 장축 맨 전면에 중앙 좌우 쌍 열주를 비롯해 7개의 기둥이 있는 반외부공간인 열주랑, 그 다음이 입구 홀,그리고 7칸의 회중석, 2칸의 제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제단 좌측에 제의실과 성가대석이, 입구 홀 좌측에 계단실(종탑)이 부가되어 있다.



건물의 정면은 기념비적인 크기의 계단, 그리고 그 위에 설정된 추상적 매스, 그리고 전면 스크린의 조각으로 구성하였다. 지붕은 완만한 맞배 경사지붕이나 파라펫에 가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각형 형태의 사방입면은 수평·수직선과 기하학적인 창 뚫기로 근대적인 조형감각을 보여준다.



남서향을 정면으로 한 성당의 정면 상부에는 화강암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4복음사가의 상징이 조각되고, 성경구절이 새겨져 있으며, 왼편 계단실의 종탑은 사각상자 형태로 적벽돌 영식쌓기로 되었는데 정면에 주보성인인 성 베네딕도상(화강석 부조로 1961년 김세중 작)이 걸려있다.



내부공간은 열주나 공간의 분절이 없는 평천장의 강당형태로 매우 단순하다. 다만 제단 우측에 바닥에서 천장까지 길게 난 수직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이 제단의 위계를 줄 뿐이다.





혜화동 성당은 약현성당(1893년), 명동성당(1898년)에 이어 1927년 서울에서 3번째 가톨릭 본당으로 탄생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이 지역의 정식 명칭은 혜화동이지만 잣나무골이라는 뜻의 백동(栢洞)을 주로 사용하였다. 이웃한 반촌(班村)과 함께 이곳은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곳이다. 즉 한국 천주교회 창설기와 수난기에 있어 교리를 배우고 토론하며, 교우들이 숨는 보금자리 구실을 하였으며, 1909년 성 분도(베네딕도) 포교 수도회가 내한하여 자리잡고, 1945년 가톨릭 신학교가이곳에서 재개교한 이래 많은 성소자를 배출한 요람일뿐더러 현 시대에는 평신도의 신앙 중심지였다.



성당은 건립 당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장이던 장발을 중심으로 이희태가 1955년 설계에 착수,1957년에 착공하고 1960년에 완공 축성하였다. 당시 이희태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출강하였는데 이 때 근대미술의 선구자인 장발, 김세중 등과의 교류를 통해 당시 유럽의 모더니즘 운동에 대해 눈을 떴다. 그러므로 당시 대다수의 건축가들이 모더니즘과 국제주의 건축을 수용하기에 급급하여 자신들의 개성을 개발하고 표현하지 못했던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시도와 독자적인 성당건축양식을 정립해 나갔다고 보여 진다.



당시 유럽은 교회의‘전례운동(Liturgical Movement)’과 건축계의‘근대운동(Modern Movement)’의 영향으로 양식주의에서 탈피한 근대적인 교회건축이 시도되고‘성미술 운동(L'Art Sacr)’의 영향으로 교회 안에 현대미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절정에 달한 때였다. 그러나 국내는 아직 절충주의 성당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나마 양식적인 성당도 초기보다 더 조잡하고 일률적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어진 혜화동 성당은 한국건축사에서는 모더니즘의 표상으로서, 종교적인면에서는 가톨릭 미술의 기념비적인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처음으로 평신도들이 힘을 모아 가톨릭 신자 미술인들만의 수준 높은 역량으로 이룩해 낸 아름다운 성당으로 종교사적, 건축사적, 미술사적 가치가 높아 2006년 3월 2일 등록문화재 230호로 등록·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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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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