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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51 ] 건축미가 뛰어난 철도 건축물
등록일
2009-04-20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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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역 차량정비고 ◆






1. 등록번호 : 제202호(2005년 9월 14일 등록)

2. 소유자 : 한국철도공사

3. 설계자 : 미상

4. 건립연도 : 1925년경

5. 면적 : 현황측량면적 688.9㎡

6. 위치 :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 245-225번지

7. 현 용도 : 정비고

8. 구조 : 조적조



진주역 차량정비고의 원래 명칭은 ‘진주역 기관구(晋州驛機關區)’였다. ‘기관구’란 기관차를 관리하고 운용, 정비, 보관 따위를 담당하는 기관을 의미한다. 또한 역내에서 차량의 정비를 담당하는 기구가 위치하던 건물도 기관구로 일컬어졌다.



1923년 경전선 - 경부선의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三浪津)과 호남선의 광주광역시 송정리(松汀里)를 잇는 철도 - 개통과 함께 1925년 진주역이 설치되었는데, 이 건물은 역사(驛舍)와 동시에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정 규모 이상 되는 철도역에서는 역사와 기관구 등이 중요한 시설물이었다. 특히, 그 당시에는 증기기관차가 주종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기관구는 급수탑과 함께 설치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현재 급수탑은 없어졌다.



건물의 전체적인 구조는 벽체가 붉은 벽돌로 되어 있는 공장형태의 건물이다. 건물 정면과 뒷면의 양방향에 기관차 2대가 동시에 진입할 수 있는 아치형 출입구 2개가 나란히 설치되어있다. 출입문을 달기 위해 돌쩌기를 설치한 벽면과 아치는 모두 화강석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붉은 벽돌로 마감되어 있다. 이 벽면에는 한국전쟁 당시 비행기의 기관총 사격을 받은 총탄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긴박하였던 전쟁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좌우측 벽면에는 부축벽이 3.6m 간격으로 설치되어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받치고 있다. 지붕은 원래 기와로 되어 있었으나, 1980년대 초에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목재 창호 등이 알루미늄 창호로 교체되기도 하였다.





이 건물의 공간규모와 구성을 살펴보면, 가로 117m 세로 393m의 긴 장방형 형태로 기관차 2대가 동시에 진입하여 수리할 수 있다. 바닥에는 2조의 레일이 깔려 있고, 레일 가운데에는 자동차 수리소에서 볼 수 있듯이 정비공들이 철도 차량을 쉽게 점검·수리할 수 있도록 하부에 50㎝ 정도의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그 밖에 보조 공간으로 건물의 좌측 바깥에 별도의 레일을 깔았다. 아울러 건물 우측면에는 목욕탕, 보일러실, 유지창고, 공작실, 숙직실 등이 있는데, 공작실 및 숙직실은 원래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외의 공간은 후에 증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특징은 근대적인 형태의 공장형 건물로, 표준설계도서에 의하여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건물의 유형을 살펴보면, 초창기에는 비늘판벽의 창고형 건물로 건립되다가 일제강점기 중반부터는 2대∼3대 정도를 정비할 수 있는 소규모 기관구인 경우 붉은 벽돌로 바뀌었다. 또한 부산 기관구처럼 4대를 동시에 정비할 수 있는 규모인 경우 두 건물을 붙여 쌍둥이 건물 형식으로 한 것도 찾아 볼 수 있고, 경성 기관구처럼 5대를 정비할 수 있는 규모인 경우는 철근콘크리트로 건립되기도 하였다.



지금 우리들은 옛 추억의 역사(驛舍)와 증기기관차를 낭만과 그리움의 표상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도입 초기의 철도는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문화가 숨어있었다. 즉, 당시 철도는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일본제국주의의 야심이 그대로 녹아 있는 부산물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철도가 가지는 상징성이 매우 컸으므로 일본제국주의자들이 근대화된 표상으로 철도를 전면에 부각하였으며, 당시 이것을 받아들이는 민중의 문화적 충격이 대단했을 거라는 예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비록 진주역의 부속시설에 불과하지만, 일본제국주의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당시 건립된 기관차 정비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를 갖고 있어, 2005년 9월 14일 등록문화재 202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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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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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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