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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45 ] 우리나라 등대 형식의 모태
등록일
2009-03-02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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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울기등대 구 등탑 ◆






1. 등록번호 : 제106호(2004년 9월 4일 등록)

2. 소유자 : 국토해양부장관

3. 설계자 : 미상

4. 건립연도 : 1958년 12월 30일

5. 면적 : 건축면적 90.9㎡, 연면적 180.5㎡

6. 위치 :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 905-5

7. 현 용도 : 등대

8. 구조 : 조적조 슬라브





울기 등대는 독자적인 근대 국가를 세계에 표방했던 대한제국 시기인 1906년 3월, 현재의 위치인 울산광역시 동구 일산동에서 불빛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원래는 단순한 형태에 움직임이 없는 부동등을 가진 목조 등간으로 시작하였으나, 1910년 8월 10일 기준으로 울기등대로 기록된것으로 보아 러·일 전쟁 이후 등대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등대로 승격되어 현재 모습의 근간을 갖추었다고 여겨진다. 울기 등대는 1956년 7월에 등탑 높이 6.1 m, 2층의 팔각형 평면을 가진 철근콘크리트 등대로 개량되었고, 1972년 다시 3m를 높여 3층으로 증축되었다. 그러나 주변에 수목이 우거져 등대가 잘 드러나지 않게 되자, 1987년 12월 해변 쪽에 새로운 부지를 잡아 신축하였다.



등대로 통칭되는 광파표지에는 배의 위치나 항로, 항만의 위치, 항의 입지 등을 알기 위해 연안의 육지에 설치된 등화를 가진 등대, 등대의 형태가 기둥모양으로 단순화되어 움직임이 없는 부동등을 가진 등간, 선박을 이용한 등선, 암초나 수심이 얕은 곳에 설치하여 선박에게 장애물 또는 항로의 소재를 알려주기 위해 바다 한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등표, 그리고 항로와 암초 등 장애물을 표시하기 위해 해저에 뜨게 한 부등표가 있다. 울기 등대는 목조 등간에서 시작하여 2층의 팔각형 등대 또 그 이후 3층으로 증축되었고, 다시 신축되어 해양 친수문화공간으로 시민들에게 개방되어 우리나라 등대의 변화과정을 압축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에 서양식 등대가 처음으로 사용된 것은 1903년 6월 1일 인천지역의 소월미도 등대, 팔미도 등대, 북장자서 등대, 백암 등표에 불이 밝혀지면서부터이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들 등대들은 대부분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열강들의 새로운 식민지 개척과정에서 등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에 따라 각국은 등대 부설에 적극적이었고 당시 새로운 재료와 기술이 등대를 부설하는데 적용되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목조가구식(木造架構式)의 전통건축에서 벽돌, 콘크리트, 철근콘크리트, 철골조 등 다양한 재료의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바다 속에 등탑의 기초를 설치하는 등 근대적 공학기술이 도입됨으로써 건축기술의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울기등대 역시 러·일 전쟁과 맞물리면서 일본이 우리나라의 침략을 본격화하는 과정에서 세워진 등대로서 목조 등간에서 콘크리트 등대로의 변화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울기 등대가 부설된 1906년 이후에는 석조나 벽돌조의 원형평면을 갖는 초기 등대형식과는 달리,절영도 등대 이후 콘크리트조의 팔각형이나 육각형 평면을 갖는 형식이 주종을 이루게 된다. 또 1907년 소청도 등대 이후에는 콘크리트 축조기술의 발전에 따라 등대의 형태도 6각형, 8각형에서 원래의 형태인 원형으로 발전된다. 즉 등대 부설과정을 통해 콘크리트 재료가 실험되면서, 등대건축이 우리나라 건축재료 기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 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울기등대 등탑 내부에서와 같이 조립식 내부 계단의 사용은 과거의 시공 방법과는 달리 조립을 통한 현장 가공성을 중시한 시공방법으로 등대건축의 근대적 성격을 알 수 있다.



울기 등대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8각형 평면 등탑에 반원형 배럴볼트(barrel vault)의 출입구가 돌출되어 있다. 흔히 대한제국기 등대건축의 출입구에서 보여지는 서양건축의 고전적 장식은 극히 절제되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출입구 반대편 등탑에는 삼각형의 박공지붕을 갖고 있는 이디큘러(aedicula) 형식의 창문 장식이 있고, 창문밑에는 까치발 형식의 브라켓(bracket)을 두어 고전적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울기등대의 또 다른 특징은 1972년 증축으로 난간이 2개 층에 걸쳐 설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울기 등대 역시 대한제국기의 다른 등대와 마찬가지로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유도하기 위하여 구조적, 기능적,형태적 고려가 이루어진 결과물이며“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근대건축의 이념을 가장 잘 표현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서 2004년 9월 4일 등록문화재 106호로 등록·관리하고 있다. 울기 등대 역시 일본의 침략적 의도에 의해 대한제국기에 부설되었지만 대한제국의 자본에 의해 일본인 전문가를 초청하는 형식이 되어 등대부설의 주체는 대한제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부설된 울기 등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등대 형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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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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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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