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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44 ] 건축수법이 뛰어난 서양식 건축물
등록일
2009-02-23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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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구 수피아여학교 커티스메모리얼 홀 ◆






1. 등록번호 : 제159호(2005년 4월 15일 등록)

2. 소유자 : 학교법인 호남기독학원

3. 설계자 : 미상

4. 건립연도 : 1900년대

5. 면적 : 연면적 172.38㎡

6. 위치 :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238-1

7. 현 용도 : 예배당 및 동아리방

8. 구조 : 벽돌 조적조(지하 1층, 지상 1층)



광주시의 옛 주택지인 양림동 언덕에 자리한 이국적인 건물로 수피아 여학교를 설립한 배유지(Dr.Eugene Bell, 1868-1925)목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배유지 목사는 미국 켄터키출신으로 목사 안수를 받은 신학박사이다. 1895년 한국에 들어 왔고 1896년 나주에 선교부가 설치되자 그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가 광주에 들어온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가 쓴 개인선교보고에 의하면 1904년 12월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는 1903년 목포 정명여학교와 영흥학교를 세웠고, 광주에 와서는 북문안 교회를 설립하고 초대당회장이 되었으며 1908년 숭일학교와 수피아여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처럼 수 많은 사업을 수행한 배목사는 1925년 57세를 일기로 광주에서 별세하여 양림동 선교회 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1897년 목포항이 개항되고 나서 광주에 수 많은 외국인들이 드나들었는데 서양선교사들은 대개 의료와 교육, 그리고 선교사업을 주로 하였다. 1905년 광주읍성의 북문안쪽에 북문안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건물은 1층 한옥으로 평면은‘ㄱ’자 형태로 남녀가 엄격히 구분되었다. 같은 해부터 10년에 걸쳐 광주읍성의 서편으로 광주천을 건너 완만한 광산군 효천면 양림리 동산에 선교와 교육, 의료를 위한 시설들이 9동의 주택, 2개의 학교, 1동의 병원, 1개의 성경학교가 들어섰다. 이들 중에서 수피아홀을 중심으로 한 수피아 여학교 관련시설과 제중병원, 오웬기념관, 벨기념관, 선교사 사택 등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북문밖교회, 양림교회, 향사리교회, 북동천주교회 등이 건립되었다.



커티스메모리얼의 건립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수피아 홀(1911년)과 오웬기념관(1911년),그리고 선교사 사택(1920년)과 동일한 회색벽돌을 사용한 점과 배유지 목사가 초기에는 한국목조 주택을 개조하여 살았던 점, 당시의 사진에 나타나는 건물의 모습으로 보아 1911년에서 1927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수피아여학교의 뒤편 언덕에 경사지를 이용하여 2층 건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아래에서 보면 2층 건물이나 뒷면에서는 단층 건물로 보이도록 계획하였다. 따라서 경사지를 이용하여 윗단으로는 2층을 드나들고 아랫단에서는 1층으로 드나들어 실내에 특별히 2층으로 오르내리는 계단이 필요 없다. 이 건물의 평면형식은 직사각형으로 출입은 폭이 좁은 측면방향으로 진입하게 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서양건축에서 정형화 되어 있는 것으로 한국건축과는 정반대로 다른 모습이다. 정면은 다소 급한 지붕을 둔 박공형의 입면으로 중앙부에 현관문이 없이 안으로 들어가는 알코브진 벽면을 만들고 대칭적으로 양쪽에 현관문을 두었다. 1층의 평면은 좌우방향으로 난 복도를 두고 그 앞, 뒤측에 실을 배치했으며 2층은 현관의 전실을 통해서만 출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2층은 넓은 하나의 실로 되어 있고 바닥은 널판을 깔았다. 천정은 합판으로 된 평반자를 덮었다.



외벽은 하부에 쑥색의 돌을 2단 쌓아 벽면 하부를 견고히 만들고 그 위에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회색벽돌로 네덜란드식 벽돌쌓기를 하였다. 네덜란드식 벽돌쌓기란 길이 쌓기와 마구리쌓기가 반복되는 방법이다. 특히 외벽에는 좌우측면에 2개씩, 배면에는 1개의 보강기둥을 두어 구조체계가 되며 건축벽면을 보강하였다. 이들 기둥 중에 일부는 내부실들에 난방을 하는 굴뚝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벽을 보강하는 방법은 조적식 건물에서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다.

이 건물의 현관과는 반대 방향인 아래 면에는 1층에 환기와 채광을 위한 겹창형식의 유리창을 4개소 두었고 2층에는 넓은 벽면에 원형의 고정창을 두었을 뿐이다. 창호는 서양식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겹창인데 바깥 창은 윗부분에 경첩을 두어 밀어 젖히게 하였고, 그 안의 창은 오르내리게 하였다. 특히 2층의 창은 두 짝인데 아치 벽돌로 첨두아치를 만들었고, 그리고 1층의 창과 문은 평아치를 만들었는데 첨두아치의 Key Stone부분은 화강석 대신에 5개의 아치벽돌을 사용하였다. 또 정면과 배면의 원형창은 고정창으로 변화와 포인트를 주고 있다.



광주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서양식 건물로 의장적으로 단순명쾌하고 단아하여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재 159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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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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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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