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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39 ] 실용성을 강조한 르네상스풍 건물
등록일
2009-01-05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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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 ◆ 순천 구 남장로교회 조지와츠 기념관 ◆







1. 등록번호 : 제127호(2004년 12월 31일 등록)

2. 소유자 : 재단법인 순천기독 결핵재활원 유지재단

3. 설계자 : 스와인하트(R. Swinehart)

4. 건립연도 : 1910년

5. 면적 : 건축면적 168.6㎡, 연면적 388.43㎡

6. 위치 : 전라남도 순천시 매곡동 142-5

7. 현 용도 : 기념관 및 진료소

8. 구조 : 조적조





이 건물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더럼의 사업가 조지 와츠(George Watts) 장로가 순천지역 선교에 기여한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미국 남장로회 한국선교회에서 1928년 건립한 것이다.

미국남장로회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의 한국선교는 1892년 테이트(L. B. Tate), 레이놀즈(W. D. Reynolds), 전킨(W. M. Junkin) 등의 선교사가 내한하면서 시작되었다. 레이놀즈는 1894년 잠시 순천을 방문하였고, 테이트는 1898년 순천 장터에서 전도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교활동은 1904년 광주에 선교부(mission station)가 설립되면서부터이다. 광주선교부의 오웬(C. C. Owen) 선교사는 순천 일대의 선교를 책임졌고, 이후 순천읍 교회, 대기리 교회, 구상리 교회 등이 설립되었다.



1909년, 프레스턴(J. F. Preston)과 코잇(R. T. Coit)이 순천 일대를 시찰하였을 때, 이 지역에는 이미 97개 교회에서 6천여 명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다. 이에 프레스턴은 순천선교부의 개설을 요청하여 1910년에 승인을 받았고,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순천 매곡동 언덕 2천여 평의 땅을 매입하여 건축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이 선교사와 건축비 부족으로 난관에 부딪히자 프레스턴은 1911년 귀국하여 모금을 위한 순회강연회를 열던 중 와츠를 소개받았다. 더럼장로교회의 장로였던 와츠는 전주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전킨의 처남으로, 선교사 13명의 생활비로 매년 1만3천달러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에 따라 순천 선교는 활기를 띠게 되었고, 교세는 꾸준히 성장하여 1913년 순천선교부로 독립하였다. 이후에도 와츠는 약속한 선교비 지원은 물론 수시로 특별헌금을 하여 순천지역 선교를 후원하였고, 이와 같은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지와츠 기념관이 설립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이 건물이 세워진 것은 순천고등성경학교 교사로 쓰기 위하여 지어졌다. 1921년‘달성경학교’로 시작된 성경학교는 새로운 교사가 필요하였다. 이 교사의 건축 비용도 와츠가 부담하였다. 그는 1923년부터 매년 건축비를 보내왔고 이렇게 모금된 7천 달러로 1928년 건물을 완공하였고, 이 건물을‘왓츠기념성경학원 (The Watts Memorial Bible School)’이라 불렀다. 건물의 건립은 미국에서 철도국장과 사범학교장을 지냈으며 금융업에도 종사했던 토목기술자겸 건축가인 스와인하트(R. Swinehart)가 담당했다. 1911년 부인과 함께 남장로회 선교사로서 내한한 그는 광주선교부에 소속되어 교회·병원·학교 등을 건축하였으며, 교육활동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건물 외관은 벽돌 조적조에 박공형 지붕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1층과 2층 사이의 세줄짜리 허리돌림(string course) 장식, 부분아치형 창문, 다락지붕의 도머창(domer window) 장식은 스와인하트가 건립했던 광주의 오웬기념각이나 수피아홀과 비슷하다. 조지와츠 기념관 역시 지나친 장식을 절제하여 화려하지 않지만 견고하며 단아한 르네상스풍 건물 분위기를 살리면서 실용성을 강조한 스와인하트 건축의 특성이 잘 드러나 있다.



이 건물 또한 한국 근·현대사의 변화와 궤를 같이 하였다. 일제강점기 성경학원은 일제의 탄압으로 선교사들이 본국으로 돌아간 1943년에 문을 닫았다가 1946년 다시 문을 열었다. 이어 한국전쟁 후 학생수가 급증하자 1952년 순천시 매곡동 179번지 언덕 위쪽에 새 교사를 지어 이전하였다. 이후 이 건물은 순천노회 사무실, 도사경회기숙사 등으로 사용되다가 순천기독진료소로 활용되었다. 순천기독진료소를 설립한 선교사는 휴 린턴(Hugh M. Linton)이다. 군산에서 활동한 선교사 윌리엄 린턴 (William A. Linton)과 광주에서 활동한 유진 벨(E. Bell)의 딸(Charlotte W. Bell)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난 그는 1954년부터 순천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농촌 일대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결핵환자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아 여수애양원과 광주기독병원, 전주예수병원 등과 연계하여 결핵퇴치운동을 전개하였다.













현재 이 건물의 1층은 순천기독진료소, 2층은 선교사들의 유품과 사진을 전시한 한국기독교선교역사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의 등록문화재인 매산중학교 매산관(제123호),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 학교(제124호), 순천 구 선교사 코잇가옥(전남 문화재자료 제259호), 순천 구 선교사 로저스가옥(제126호) 등과 함께 당시 이 지역이 선교 활동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건물로서 2004년 12월 31일 등록문화재 127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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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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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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