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황두진

[ 한옥에살어리랏다_⑧ ] 한옥에 대한 새로운 감성

아틀리에 R





관청의 지원금 없이도, 누가 한옥지역이라고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뜻에 따라 한옥을 사서 고치는 사람들이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존재한다. 역으로 이런 지역일수록 지원금을 받기 위해 서울시의 한옥 수리 규정을 따라야 하는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매우 독특한 결과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젊은 건축가 서승모다.

종로구 창성동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청와대 인근 효자동 바로 아랫동네’라고 하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많은 다세대주택들이 들어섰지만 여전히 이곳저곳에 한옥들이 파편처럼 박혀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그 동네의 한 골목길에 겉으로 봐서는 그냥 평범한 작은 한옥 한 채가 서 있다. 그러나 이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옥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모든 고정관념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집은 ‘한옥이 이럴 수는 없을까’라는 호기심과 창의력이 발휘된 집이다. 그런 점에서 한옥을 이용한 현대건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자 이 집을 고친 건축가인 서승모는 아직 마흔이 안 된 신예다. 일본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자기의 작업실을 구하던 중, 마침 적당한 한옥이 나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지붕과 기둥만 남기고 모든 것을 다 제거해버렸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자기의 생각을 담아나갔다. 서승모는 이 집에 대한 자신의 작업을 일반적인 ‘리노베이션’(renovation)이 아닌 ‘리-이노베이션’(re-innovation)이라고 설명한다. 이 집의 구조를 보면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외벽을 제외하고는 내부 칸막이벽이 거의 없다. 심지어 화장실이나 샤워실도 공간 구분을 커튼으로 해결하고 있다. 일종의 한옥형 원룸이라고 할 만한 것인데, 물론 여기저기에 기둥과 창방 등 목구조가 드러나 있어서 원래의 공간적 배치를 짐작할 수는 있다. 그는 이것을 ‘연속적 분절’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서로 통해 있기는 하되 여전히 구별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공간의 수직적 변화를 모두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마당을 높여서 내부 바닥과 같은 높이로 만들었다. 그래서 비어 있는 마당 또한 내부의 연장인 것처럼 느껴진다. 이 집은 돌아다니기도 쉽고 집 안 어디에서나 마당의 존재가 가깝게 다가온다. 서까래 아래에 바짝 달은 유리벽만이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이루고 있을 뿐인데, 블라인드의 각도를 조절함으로써 매우 다양한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 또한 특이하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집은 한옥이 아닐 수도 있다. 특히 한옥에 대한 순수주의적, 보수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옥의 미래를 고민하고 한옥에 새로운 감성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역시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집에 대해서도 매우 신선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옥을 종착점이 아닌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면 이 집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집은 왜 한옥 전문가나 장인, 목수들만이 아닌 현대 건축가들이 한옥 작업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는 예이기도 하다. 이 작은 집이 한옥에 대한 논의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해주고 있는 것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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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베개에서 발간한 [한옥에 살어리랐다]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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