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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국가무형문화재‘진주삼천포농악’박염 보유자 별세
등록일
2022-02-17
주관부서
무형문화재과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672

국가무형문화재 ‘진주삼천포농악’ 박염(1941년생) 보유자가 노환으로 2월 16일(수) 오후에 별세하였다.


  □ 생년월일: 1941. 7. 10.
  □ 빈    소: 사천 공설장례식장 1호실(☎055-831-4594)
  □ 발    인: 2022. 2. 19.(토), 오전 9시  ※장지: 가족묘원(경남 사천)
  □ 유    족: 박영출, 박성출(이상 子), 박미자(女)  2남 1녀
  □ 주요경력
    - 1974. 진주삼천포농악 전수장학생
    - 1977. 진주삼천포농악 이수자
    - 1982. 진주삼천포농악 조교
    - 1984. 진주삼천포농악 보유자후보
    - 1990. 삼천포시민문화상 수상
    - 1991. 진주삼천포농악 보유자 인정
    - 1994. 사천시장 표창장 수상


※ 국가무형문화재 진주삼천포농악(1966. 6. 29. 지정)
  진주삼천포농악은 진주와 삼천포 지역에 전승되고 있는 농악으로 영남농악에 속한다. 편성은 기수(旗手)와 쇠, 징, 북, 장구, 법고 그리고 양반과 포수로 되어 있다. 모두가 흰 바지와 색깔 있는 저고리의 농악복에 색띠를 두르고, 모자(상모)를 쓴 채 연주하는데, 개인놀이가 비교적 발달하였다. 판굿에서는 채상모놀이가 돋보이며,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八陣解式陣)굿이 특이하다. 빠른 가락을 모는 경우가 많아 힘차고 가락이 다채로워 흥겹다.

  1941년에 태어난 고(故) 박염 보유자는 14세부터 같은 마을에 사는 문백윤의 휘하 삼천포송포농악대에서 수벅구 김봉구에게서 벅구(농악에 쓰는 작은 북, 주로 소고)를 배우기 시작하여 2년 뒤부터 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1981년 문백윤 사망 이후 뿔뿔이 흩어진 쇠꾼들을 규합하여 삼천포농악단을 다시 결성하고 활동했는데, 농악을 배우고자 하는 전국의 대학생들이 모여들어 농악으로 삼천포 지역의 문화를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하였고,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990년에는 제1회 삼천포시민문화상을 수상했다. 특히, 판굿의 개인놀이에서 꽹과리를 치는 상쇠와 어우러지며 장구를 치고 상모를 돌리는 고(故) 박염 보유자의 예능은 다른 지역의 농악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모습으로 진주삼천포농악의 특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단이었다. 이 같은 농악에 대한 열정과 전승활동을 인정받아 1991년 국가무형문화재 진주삼천포농악 보유자로 인정되었으며, 한평생 진주와 삼천포 지역의 농악 전승과 발전에 헌신하였다.



OPEN 공공누리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출처표시) 이 보도자료와 관련하여 더 자세한 내용 설명이나 취재를 원하시면 무형문화재과 이채원 연구관(☎042-481-4966), 문철훈 연구사(☎042-481-4967)에게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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