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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42 ] 광주를 상징하는 대표건축물
등록일
2009-02-09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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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대학교 본관 ◆






1. 등록번호 : 제94호(2004년 9월 4일 등록)

2. 소유자 : 조선대학교

3. 설계자 : 이길성

4. 건립연도 : 1951년

5. 면적 : 연면적 42,605.43㎡

6. 위치 :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산 57-1외 2(375번지)

7. 현 용도 : 교육시설(조선대학교 본관)

8. 구조 : 벽돌조적조 위 흰색 페인트칠



무등산을 등 뒤에 두고 광주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무등산 중턱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흔히 광주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을 쉽게 들 정도로 광주의 랜드마크적인 건축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런 이유는 무등산이라는 광주의 어머니와 같은 푸른 배경에 백악관처럼 하얀 박공형 이미지를 하고 있는 거대한 건물로 시각적으로 튀어나고 조형적으로 강한 인지성을 느끼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건물은 광주시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높이 솟아있어 광주시내에서 쉽게 바라볼 수 있고 거대한 하얀 건물이 줄지어 있을 뿐 만 아니라, 뾰족한 지붕의 형태가 마치 무등산을 형상화 한 것 같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선대학교는 1946년 9월 광주야간대학원으로 설립된 이후 1948년 조선대학으로 개편되어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명문 사립대학으로 발전하였다. 이 건물이 지어진 1948년 광주지역에는 해방 이후라서 건축자재가 아주 귀하였고 기술도 뒤떨어져 겨우 2, 3층 건물이 주를 이루었기때문에 당시 6층은 크기나 높이의 위용이 대단한 건물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건축재료는 기본적으로 붉은 벽돌이었다. 현재 백색으로 보이는 것은 흰 페인트를 칠하였기 때문이다. 이 건물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건립된 김순하 선생 설계 작품인 구 전라남도청사 역시 원래는 붉은 벽돌 건물이었으나 후대에 흰색으로 페인트칠한 것이다.





처음에 이 건물이 건축될 때에는 박공형의 중심건물을 중앙에 두고 대칭적으로 양쪽에 상자모습의 방형건물이 하나씩만 있었으나 나중에 양 옆에 방형건물을 하나씩 또 새롭게 축조한 다음 그 위에 삼각형 부분을 증축하였다고 한다. 그 후 수차례 증축을 통하여 오늘처럼 박공형이 계속된 모습을 보여주는 거대한 건물에 이르게 되었다.



전체적인 건물의 모습은 중앙 현관을 중심으로 강한 대칭성을 지니면서 7층의 중앙부와 8층의 좌우측부분을 높게 하고 나머지 부분을 조금 낮게 5층으로 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다. 따라서 중앙과 좌·우측의 높은 부분에 출입구를 두었고, 배면에 편복도를 두어 전면의 각실과 연결하였고 상층으로는 계단을 통하여 오르도록 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이 시기에 건립된 건물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 정면진입, 편복도 형태가 주를 이룬다.





건물의 길이는 약 370여m이며, 건물의 구조는 단위모듈 3.6m, 기본모듈 7.2m로 구성되는 총 19개의 박공지붕이 산의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건물 우측에는 새로이 증축된 원통형의 6층 학생회관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층고는 기준층이 약 5.2m이나 박공 하부는 층이 변화되어 일정하지 않다. 이처럼 높은 건물을 벽돌조로 하기에 다소 염려되는 부분이 있으나 우선 벽면을 벽돌두장 쌓기를 하였으며, 벽 중간

에는 이 보다 더 두껍게 기둥형식으로 부축벽을 만들어 건물의 구조체계를 이루고있다. 물론 나중에 증축된 부분들은 당연히 철근콘크리트로 건립되었다.

또한 건물 전면광장은 건물의 길이 방향과 같이 선형으로 길게 이루어진 도로가 있으며 대부분 주차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전망이 좋은 높은 곳에 이처럼 넓은 대지를 마련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산허리에 입지한 거대한 규모에 비해 기본시설인 배수로와 경사지 처리시설의 미비로 건물후면은 낙석과 우수 범람의 위험이 있다. 특히 그간 무리한 증축으로 인하여 본관 중앙에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부분은 제한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부분적인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광주지역에 많지 않은 1950년대 건물로 외부형태의 독특한 조형성과 무등산과 어울리는 인지성 때문에 2004년 9월 4일 중앙의 5개 박공부분에 한하여 등록문화재 94호로 등록·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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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2]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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