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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설명

제목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⑤ ] 대한제국의 근대국가를 향한 의지
등록일
2008-05-06
주관부서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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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nter] 덕수궁 석조전 동관



1.등록번호 : 제80호(2004년 2월 6일 등록)

2.소 유 자 : 문화재청장

3.설계자 : 하딩(G. R. Harding)

4.건립연도 : 1910년

5.면적 : 건축면적/1,630㎡, 연면적/4,122㎡

6.위치 :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5-1

7.현용도 : 업무시설

8.구조 : 석조(지상 2층)



석조전이 위치한 경운궁(현 덕수궁)은 외세의 압력으로 개항을 하였지만, 뒤늦게나마 자주적 근대화를 지향하며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대한제국의 본궁으로 삼았던 곳이다. 일본에 의해 그 꿈은 좌절되었지만, 근대국가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한 고종의 의지가 짙게 배어있는 석조전, 정관헌, 중명전 등의 건물이 남아 대한제국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석조전은 1900년 공사를 시작하여 1909년에 완공되었는데, 불행히도 근대국가의 이상을 담았던 석조전이 완공된 시점에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다. 석조전은 상해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건축가 하딩이 설계하였는데, 설계에만 2∼3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착공 시점이 1900년이니 대한제국을 선포한 직후에 설계가 의뢰된 듯하다. 이는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의 정궁으로 경운궁을 선택한 후 개명한 근대국가의 상징으로 서구의 역사주의 건축양식의 전각을 세운 의도를 짐작케 해준다. 석조전은 근대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으며, 그 지향점이 서구에 있었던 것이다.석조전은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완성도가 높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졌다. 굵은 석재로 만들어진 기단부와 삼각형 모양의 페디먼트가 얹혀진 정면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의 열주군은 전형적인 신고전주의 건축물의 모습이다. 기단부의 굵은 석재를 이용한 거친 돌쌓기(러스티케이션 기법)는 기단 상부의 매끈한 벽면과 대조되어 전체적으로 시각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정면의 페디먼트에는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이화 무늬가 새겨져 있다. 기둥을 보면, 정면 현관부에는 둥근기둥을 사용하였지만, 좌우 회랑부분에는 사각 기둥을 사용하여 변화를 주고 있으며, 기둥의 상부에는 이오니아 기둥에서 사용되는 회오리모양의 장식이 멋을 더하고 있다.





석조전은 서양건축의 구성수법에 따라 주 진입 층이 지상에서 1개 층 올려져 있다. 지금 기준에서 1층인 부분은 당시 시종들이 거처하던 지하층이었고, 지금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 건물의 정면과 양 옆으로 회랑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건물 전면에 회랑을 설치하는 것은 유럽사회에서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니다. 이것은 유럽제국이 동남아시아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더운 열대성 기후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채택한 것으로, 석조전이 당시 상해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기 때문에 동남아시아 국가의 역사주의 양식건축에서 사용되던 회랑이 사용된 것이다.내부로 들어가면, 천창이 설치된 2개 층 높이의 로비가 나온다. 인공조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대규모 건물에서 로비를 2층으로 만들고 천창으로 채광함으로써, 건물에 여유로움과 화려함을 주고, 천창으로 내부를 환하게 해주는 1석 2조의 효과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석조전 내부의 공간구성은 비교적 단순하다. 건축 당시 1층에는 접견실과 홀이 위치하였고, 2층에는 황제, 황후의 침실과 거실 및 욕실 등이 위치하였다. 실내는 영국인 로벨(Lovell)에 의해 로코코식 장식으로 화려하게 디자인되었으나 한국전쟁과 그 이후 박물관 및 전시관으로 사용되면서, 내부가 변형되었다.



2층에 올라가서 내부 전시를 관람한 후에는 정원을 향해 열린 창호 앞에 설 필요가 있다. 창호 앞에 서면 잘 정돈된 정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기하학적인 질서정연한 모습을 갖고 있는 석조전 앞의 정원은 창경궁 대온실 앞의 정원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근대적 조원술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정원과 함께 고종의 근대국가를 향한 의지를 담고 있는 석조전은 2004년 2월 6일 등록문화재 제80호로 등록·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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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디자인기획에서 발간한 [한국의 근대문화유산 Vol.1] 에서 발췌한 내용 입니다.

* 이글의 저작권은 문화재청에 있습니다.

* 사진과 글의 무단 전재나 복사를 금합니다.

* 문의_문화재청 대변인실 (042.481.4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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