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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지정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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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석사 범종루는 누각의 요건을 충분히 갖춘 누각이다.
작성자
배용호
작성일
2022-09-15
조회수
218

부석사의 범종루는 누각의 요건을 충분히 갖춘 건물이다.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 한국의 일곱 사찰을 묶어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때가 2018년이다. 이후 부석사는 일곱 사찰 맨 앞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안양루(安養樓)로 오르는 무량수전 앞마당이 그 중심이다. 그래서 “百年幾得看勝景(백년기득간승경, 인생 백 년 중 몇 번이나 이런 경치를 구경할 수 있을까)”하는 김삿갓 탄식이 나올만하다. 안양루 서쪽 모퉁이를 말한다.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있는 사바세계와 하늘가에 뜬 선계가 한꺼번에 눈에 들어온다. 경내 지붕은 물론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까지 안양루 처마 끝과 이어져 있다. 극락정토의 풍광이다.
안양루는 올라올 때 ‘문(門)’이던 것이, 올라서 보면 어느새 ‘누(樓)’가 되어 있다. 안양문(安養門)은 말 그대로 안양(극락)으로 진입하는 문이다. 이 누각만 지나면 바로 극락 세상이란 뜻이다. 그러나 극락의 길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뜻일까? 안양루로 오르는 계단은 엄청나게 높아 보인다.

앞서 안양으로 오는 길목에 범종루(梵鐘樓)가 있었다. 안양을 오르려면 반드시 거치는 누문(樓門)이다. 사찰 진입 공간의 중심을 잡아주는 크고 안정된 건물이며, 그 역시 ‘門’과 ‘樓’의 역할이 동시에 부여된 구조이다. 그러면서 구품만다라(九品曼茶羅)를 수행하는 중책도 함께 맡겨져 있다. 또한 부석사 전체 건물의 기준이 될 뿐만 아니라 진입 축의 중문(中門)까지 겸하고 있어 팔방 시선의 중압감을 안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범종루는 그런 중압감을 파격으로 날려 보내고 있다. 앞모습은 활달한 2층 누각에 봉황이 날개를 활짝 편 팔작지붕 모습이다. 그러나 뒤쪽 뜰에 서 보면 어느새 단층 전각의 맞배지붕이 되어 다소곳이 몸을 낮추고 있다. 거기에다 진입 손님을 공손히 모시려 함일까? 한옥 특유의 가로 배치형을 벗어나 누각이 세로로 배치되어 있다. 이점 또한 파격 중의 파격이다. 이런 대단한 파격은 지구상에서도 그 유래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엄청난 파격에도 불구하고 범종루는 전혀 어색하거나 지나치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형이 주는 지루함을 보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부석사는 각각의 건축물마다 자신만의 공간을 연출한다. 그중에도 범종루만큼 주변을 압도하고 강렬한 빛을 발하는 건물도 흔치 않다. 맨살을 확연히 드러낸 기둥의 육체미도 그렇고, 석양 나절에 따로 연출되는 실루엣 아트가 그렇다. 터진 벽이 훨씬 여유로워 보이는 범종루는 이미 부석사에서 가장 친근한 건물이 되어 있다.
누각은 보통, 아래층은 게이트로 윗층은 실용 공간으로 활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범종루 역시 누각의 요건을 충분히 갖춘 복층 구조이며, 아래층은 사람들을 안내하는 문이요, 윗층은 괘불을 걸고 법회를 할 때는 마당을 연장해 주는 신축성 건물이 된다. 그만큼 누(樓)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부석사는 진입 축 건물이 모두 연도의 중간에 서서 건물 안쪽으로 진입자들을 유도하는 구조이다. 일주문, 천왕문, 회전문, 범종루, 안양루가 차례대로 그러하다. 또한 그 건물들은 구품의 석단 위에 축조되어 있어 아래에서 보면 어느 것이랄 것도 없이 모두가 누각처럼 훤칠한 키 높이를 가지게 된다. 모두를 누각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높이를 갖추었다는 말이다. 이른바 봉황산이 만들어낸 ‘봉황루(鳳凰樓)?’들인 셈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누각 대표를 뽑는다면 범종루가 단연 1순위일 것이다. 1748년 지어진 이래 지금까지 근 200년간 ‘범종루’로 불려왔다.

최근 문화재청이 부석사의 대표급 누각인 “안양루와 범종각을 보물로 지정”하겠노라고 예고를 했다. 그러면서 범종루를 누(樓)가 아닌 ‘범종각(梵鐘閣)’이란 이름으로 고시하여 혼란을 주고 있다. 부석사에는 이미 범종루 옆에 범종각이란 건물이 따로 있다. 사정이 그러함에도 문화재청이 특별한 설명 없이 ‘범종각’이란 명칭을 고시한 이유가 무엇일까?

조선 사대부들에게 있어 누각은 ‘하늘과 통하는 곳’이라고 믿어지고 있으며, 누정은 학문과 예술의 산실, 강학과 정신적 향유의 거점, 자연을 완상하는 풍류의 공간에 해당한다고 보아 대단히 중요한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안양각? 범종각? 등의 호칭 자체가 이런 고상한 품격의 훼손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를 걱정하는 지역민들을 중심으로 당혹해하는 기류가 느껴진다. 특히나 별서(別墅)인 누·정·대(樓·亭·臺)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점이어서 더욱 그런 기류가 거세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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