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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제목
궁중유물전시관 "영왕.비복식 첫 공개 특별전" 개최
등록일
2002-06-06
전화번호
02-771-9952
작성자
궁중유물
조회수
7645
궁중유물전시관(문화재청, 강순형관장)은 개관 10돌과 영왕·비의 황실복식 환수 11돌 기념으로 한·일월드컵에 맞춰 특별전을 개최한다.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 영왕(懿 皇太子 英王, 1897-1970)은 고종황제(高宗皇帝, 1864-1907), 순헌귀비(純獻貴妃 嚴氏) 소생으로, 4살인 1900(고종 37)년 8월에 영왕(英王)으로 책봉되었으며, 11살인 1907년 8월 7일에 현, 덕수궁인 경운궁(慶運宮) 돈덕전(惇德殿)에서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24살에 일본 황족 나시모토궁(梨本宮)의 딸(方子)과 혼인(1920.4.28), 비(妃)를 맞았다. 융희황제 순종 승하(1926.4) 뒤 황위계승자이나 즉위치 못하고 이왕(李王)이라 불리었다.
영왕·비는 8·15광복 뒤에도 귀국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황족의 특권마저 상실되어 거처와 재산을 몰수 당하면서 재일 한국인 등록 신분으로 보내다, 1963년 11월23일, 병석의 몸으로 56해만에야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樂善齋)에 머물렀다. 귀국 후, 병상생활 속에서도 비(懿愍皇太子妃 李方子, 1901-1989)와 함께 심신장애인 재활원인 자행회(慈行會, 1966), 신체장애인 훈련원인 명휘원(明暉園, 1967)등을 세워 사회사업을 펼치다, 1970년 5월 1일 73수의 한 많은 삶을 마쳤다. 능은 홍유릉(洪裕陵,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 내의 영원(英園)이며, 비와 함께 합장되어 있다.
황태자비와의 사이에 진(晋)과 황세손 구(玖), 두 왕자를 얻었으나 진왕자는 요절(1921-1922)하고, 황세손 구(1931- ) 또한 일본에서 1996년 11월 25일에야 귀국하였다.

이번 특별전의 영왕·비복식은 영왕비가 1957년에 동경국립박물관에다 소장시킨 것을, l99l년 4월의〈영왕가에 유래하는 복식 등 양도에 관한 협정> 체결을 거쳐 10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돌아온 유물이 중심이다. 곧, 영왕·비의 1922년 4월 29일 융희황제 순종·비 알현 대례복(大禮服)인, 홍룡포와 적의(翟衣), 홍원삼 및 어린 진(晋)왕자의 예복들에 따른 가체와 노리개를 비롯한 각종 장신구, 227점 그리고, 일본 왕족녀들에게 양재(洋裁)를 가르친 하라 노부꼬(原のぶ子, 1901∼1997) 소장 영왕·비와 진왕자의 평상복식(중국·서양옷 포함) 44점을 조카인 하라 슈오꼬(原秋櫻子, 1934∼ )가 1999년 4월 우리에게 돌려준 것을 비롯한 총 280점이 전시된다.
이 온전한 황실복식들은 궁중복식 정통의 맥을 이은 걸작품으로 궁중 상의원(尙衣院)의, 궁중의궤에 따른 최후 역작인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더구나, 왕실이 아닌 황실의 의례복식(儀禮服飾)과 평상복(平常服), 관련 수식품(垂飾品)이 모두 품위와 격조를 갖춘 일괄품이라는데서도 의의가 크다.
그리고, 전시와 관련하여 4회에 걸친 궁중복식분야 국내외전문가의 특강도 열어 일반인들의 흥미와 이해를 높이는 자리도 마련하였다.
때마침 한·일공동월드컵을 맞아, 품격있는 이 황실복식을 한자리에 모두 모은 최초공개는 내외국인들과 함께 우리의 황실문화권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개막식 : 2002. 6. 10.(월). 15 : 00.
▶전시 : 2002. 6. 11.(화).∼2002. 7. 28.(일).

특강 :
· 6. 15.(토). 15:00. 영왕·비복식의 의의/김영숙(동양복식연구원장)
· 6. 29.(토). 15:00. 조선시대 궁중복식/심화진(성신여대교수)
· 7. 13.(토). 15:00. 아시아민족조형을 통해 본 한·일관계/
金子量重(일본 조형예술대학 교수)
· 7. 27.(토). 15:00. 궁중복식에 나타난 미적 가치/이주원(숭의여대 교수)

자세한 안내와 문의처는 궁중유물전시관 전시과(02-771-9954)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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