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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기고

제목
문화재의 뒤안길(117)- 궁중채화(서울경제, '21.12.13)
작성자
강석훈
게재일
2021-12-13
주관부서
대변인실
조회수
431
문화재의 뒤안길(117)- 궁중채화 (서울경제, '21.12.13)


임금이 사랑한 꽃, 궁중채화(宮中綵花)


글/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조사연구기록과 학예연구사 


사진_홍벽도화준_1.jpg


 1886년, 조선의 고종은 프랑스의 사디[SADI CARNOT] 대통령과 조불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고종은 이 조약을 맺으며 프랑스 대통령에게 특별한 꽃을 선물하였다. 

두 개의 놋쇠 반(盤) 위에 금분을 입힌 고목을 세워 얇은 나무판을 오려 물들인 측백 잎을 달고, 주위에는 옥을 깎아 만든 난초와 아기자기한 꽃장식을 둘러쳐 만든 조선의 예술품, 궁중채화였다. 


 궁중채화란 옛 궁중의 각종 연회에서 사용하였던 가화(假花)를 뜻한다. 

재료는 비단에서부터 견직물, 모직물, 광물, 깃털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고려사』의 기록에 따르면, 궁중에 소속된 장인을 통해 궁중채화를 제작토록 하고, 이를 전담하여 총괄·관리하는 직책을 두고, 연회에 참석한 외빈에게 왕이 직접 꽃을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1019년(현종 10) 강감찬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하여 돌아오는 길에 친히 나아가 금으로 만든 여덟 가지의 꽃을 손수 강감찬의 머리에 꽂아주며 치하했다는 기록까지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채화가 국가와 왕실의 위상을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면 채화는 연회와 같은 특별한 날에 따라 격식을 달리하며 사용되었다. 

용도에 따라 화병에 꽃아 어좌를 장식하는 준화(樽花), 머리에 꽂는 수화(首花), 잔치상을 장식하는 상화(床花) 등으로 구분하였다. 

준화는 청화백자 화병에 홍색(紅色)과 벽색(璧色)의 복숭아꽃을 나뭇가지에 드리워 꽂아 만든 작품이다. 

상화에 오르는 수파련(水波蓮)은 연꽃 여덟 송이로 구성된 작품으로, 왕실 가족 외에는 아무리 지위가 높은 자일지라도 제공하지 않았다. 왕실행사에 쓰이는 채화들은 재료 준비 절차에서부터 완성된 작품의 종류와 개수, 그에 따른 소요경비까지 모두 왕의 보고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할 정도로 왕실 행사의 중요한 위치를 점하였다. 


 궁중채화는 자연 그대로의 꽃을 구현하기 위해 엄정하고 정교한 절차를 통해 제작된다. 직물의 정련, 염색, 매염을 거쳐 천에 풀을 먹인 후 오랜 시간 정성껏 다듬이질을 하여 재료를 손질한다. 

섬세한 가위로 꽃잎을 마름질하고, 인두에 밀랍을 묻혀 잎맥과 잎사귀에 생동감을 준다. 

그렇게 숱한 손놀림을 거쳐 한 송이의 꽃이 완성된다. 

수많은 꽃들은 격식에 맞게 나무줄기와 가지에서 피어나 하나의 작품으로 태어난다. 

 오늘날 궁중채화는 황을순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에 의해 그 명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으며,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작년과 올해에 걸쳐 궁중채화의 기록화 사업을 추진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나라 궁중채화에 대한 의미와 가치가 널리 알려지고 계승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_홍벽도화준_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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