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사랑
- 제목
- 아름다운 마을 숲의 기억 천연기념물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
- 작성일
- 2022-09-29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680
서로에 기대어 살아온 마을과 숲의 기억
낙동강 줄기가 휘돌아 흐르는 하회마을 강변 모래톱에는 오랜 역사를 간직한 소나무 숲이 있다. 조선 선조(宣祖, 재위 1567~1608) 때 문경공 류운용이 강 건너편을 가로막고선 부용대(芙蓉臺)의 기운을 누그러뜨리려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어 조성했다고 전하는데 지금의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숲은 100여 년 전 당시의 자리에 다시 조성한 것이다.
“사실 소나무 숲만 보면 더 넓고 오래된 숲도 많으니 만송정 숲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하회마을을 등지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강과 모래톱, 그 너머 웅장한 절벽까지 품은 소나무 숲은 오직 만송정 숲뿐이죠. 400여 년 전 이곳에 숲을 조성했던 마음과 지금 이 숲을 지키고 키워 가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도 만송정 숲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최윤호 문화재수리기술자(식물보호)는 하회마을의 유명세로 덩달아 많은 사람의 발길을 받아내고 있는 만송정 숲의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방문해 모니터링 하고 있다. 숲을 관리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조언도 전한다. 만송정 숲은 자연적으로 생겨난 원시림(原始林)이 아니라 사람의 힘으로 조성한 인공 숲이기 때문에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회마을에서는 만송정 숲을 돌보는 노력과 함께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나무를 대신할 수 있도록 후계목을 꾸준히 키워 내며 숲을 지켜 나가고 있다.
“사람이 만든 숲이 마을을 살기 좋게 하고 그 숲을 마을이 함께 지켜 나가는 마을 숲은 우리의 오랜 전통입니다. 탁 트여 기댈 곳 없는 자리나 바람이 세고 물이 자주 범람하는 지역에 터를 잡은 마을은 당연한 듯 나무를 심고 숲에 기대어 살아갔죠.” 만송정 숲은 다시 조성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대부분의 마을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윤호 문화재 수리기술자(식물보호)는 시골 마을에 가면 틀림없이 마을 숲이 있었을 자리에 절로 눈이 간다. 아쉽게도 여전히 숲으로 남아 있는 경우는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사실 소나무 숲만 보면 만송정 숲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하회마을을 등지고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강과 모래톱, 그 너머 웅장한 절벽까지 품은 소나무 숲은 오직 만송정 숲뿐이죠.
식물을 해치는 것도, 지키는 것도 사람이다
“우리 선조는 자연과 어울려 사는 법을 알았어요. 유명한 서원에 가 보면 어김없이 오래되고 아름다운 나무가 함께 있습니다. 또 좋다는 정자를 완성하는 것은 나무와 주변 풍경입니다. 우리 건축에 ‘차경(借景)’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자연 풍경을 한발 물러서서 누리는 겁니다.”
최근에는 ‘숲세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연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식물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사실 30여 년간 식물과 함께해 온 최윤호 문화재 수리기술자(식물보호)도 언제나 정답을 알지는 못한다. 식물이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유전적 다양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나무가 사람은 상상하기 힘든 긴 시간을 살아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천연기념물을 지켜내야 하는 그에게 있어 특히 어려운 부분은 어디까지 사람의 힘을 보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관리하는 천연기념물 중에 수령이 500년 정도 되는 상주 상현리 반송이 있습니다. 이런 노거수를 보호하려면 우선 사람이 나무의 생존을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늙은’ 나무가 오래 버틸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일도 필요하죠.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지가 부러져 나무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지지대를 대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지지대를 대면 나무 스스로 버티는 힘을 잃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합니다. 고민 끝에 5년 전쯤 지지대보다 의존성이 낮은 탄성 케이블 설치를 시도했는데 아직까지 건강하게 잘 버티고 있습니다. 그럴 때 보람을 느끼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식물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병충해는 해외에서 들어온 소나무재선충병 한 가지뿐이다. 그밖에 모든 위협은 다름 아닌 사람, 그리고 사람에서 비롯된 기후변화이다. 하지만 최윤호 문화재수리기술자(식물보호)는 그런 위협으로부터 식물을 지키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자신이 머무르는 수십 년이 나무에는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동안이라도 나무가 건강하게 사는데 작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다면 족하다는 그. 그 마음이 담담하고도 굳건한 나무를 닮았다.
글. 편집실 사진. 이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