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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화 속을 거닐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순천 송광사
작성일
2024-06-27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6

영화 속을 거닐다, 영화 <헤어질 결심> 속 순천 송광사 “처음부터 좋았습니다. 날 책임진 형사가 품위 있어서.” 영화 <헤어질 결심> 속의 여자는 자신의 손에 핸드크림을 발라준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왜 이곳에서 그런 고백을 했을까. 이토록 고색창연한 절, 송광사에서. 01.순천 송광사 조계문과 징검다리

영화 속 낭만적 배경이 된 곳, 순천 송광사

송광사는 순천 조계산 서쪽에 자리 잡은 유서 깊은 절이다. 부처님[佛], 가르침[法], 승가[僧]라는 불교의 세 가지 보배 중 훌륭한 스님을 많이 배출하였다 하여 승보 사찰(僧寶寺刹)로 불린다. 우리에게 ‘무소유’라는 가르침을 주신 법정(1932~2010) 스님이 17년간 수행한 불일암도 순천 송광사 뒷산에 있다.


이 오래되고 고색창연한 절에 한 형사와 여자가 등장한다. 변사 사건으로 사망한 남자의 아내인 송서래와 이를 수사하는 형사 장해준이다. 장해준은 송서래를 용의자로 지목해 감시하고, 송서래는 그런 형사를 관찰한다. 그러던 두 사람이 결국 시선을 나누는 곳이 바로 가을비가 내리던 송광사였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 속 한 장면이다. 2022년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최초로 감독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한 형사와 용의자의 사랑 이야기다. 영화는 늘 불투명한 안개처럼 모호한 장면으로 가득하지만, 유독 순천 송광사 장면만은 비가 오긴 했지만 가장 선명한 장면으로 채워졌다.


02.순천 송광사 침계루 03.순천 송광사 범종각 04.설법전 앞 긴 계단

순천 송광사에서 촬영된 영화 속 장면들

사천왕상의 부리부리한 눈동자에서 시작한 영화 속 장면은 해준이 서래의 손이 거칠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간질간질하게 변한다. 서래의 고백이 이뤄진 곳은 ‘우화각(羽化閣)’이다. ‘우화각’은 삼청교 위에 지어진 누각으로 다리 아래의 물에 반사되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우화’는 소동파의 적벽가에 나오는 우화등선(羽化登仙)에서 유래한 말인데, 몸과 마음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하늘나라로 올라 신선이 된다는 의미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인 차안(此岸)에서 강 너머 깨달음의 세계인 피안(彼岸)으로 향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서로의 고백을 듣고 설레는 발걸음으로 둘이 향하는 곳은 침계루다. 계곡 바로 옆에 자리한 침계루는 기다란 기둥이 받치는 아름다운 누각이다. 그 후 둘은 ‘종고루’로 올라가 법고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 이곳에서 해준은 서래에게 동질감을 표현하고, 서래는 화답하듯 법고를 ‘둥둥’ 친다. 둘은 그렇게 북소리를 주고받는다. 아쉽게도 일반 관람객은 종고루에 올라갈 수 없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사찰 측의 허락을 받고 촬영했다고 한다.


둘이 하나의 우산을 받쳐 쓰고 긴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은 ‘감로탑’으로 향하는 계단이다. 이곳은 순천 송광사에서 경치가 가장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가파른 계단 위에서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순천송광사보조국사감로탑(順天松廣寺普照國師甘露塔)을 만날 수 있다. 해준과 서래는 법당에 앉아 이어폰을 하나씩 나눠 끼고 해준의 음성 파일을 듣는다. 그 속에는 해준이 그동안 서래를 지켜보며 녹음한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첨언하기도 하던 서래는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린다. “우는구나, 마침내.” 이어폰 속의 목소리와 서래의 눈물이 겹치며 두 사람의 마음도 마침내 겹치는 순간이었다.


05.순천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안개 같은 마음속, 남은 것은 선연한 기억뿐

하필이면 두 사람이 순천 송광사로 갔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찬욱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마치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하듯이 데이트 장소로 유명한 사찰을 선택하지 않았겠냐”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순천 송광사는 서래의 입에서 나온 ‘품위’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장소기도 하다. 계곡 옆에 자리 잡은 수려한 풍경뿐 아니라 감로탑을 포함해 사천왕상, 국사전, 목조 관음보살 좌상 등 수많은 국가유산이 있기도 하고, 고려시대부터 불교 수행의 정수인 ‘선정’과 ‘지혜’를 함께 닦아 온 큰 스승의 가르침이 내려온 곳이기 때문이다.


결국 두 사람의 마음은 바닷가에서 물거품과 함께 사라져버렸지만, 산에서 바다로 휘몰아치듯 떠밀려 가던 그 여정엔 쉼표처럼 순천 송광사의 한순간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은 안개와도 같아 우리는 종종 타인은 물론이고 자신의 마음조차 모르곤 한다. 그럼에도 좋았던 순간만은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게 순천 송광사는 영화 속 주인공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선연하고 아름답게 ‘품위’ 있는 장소로 남게 되었다.




글. 정효정(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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