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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해 우리 역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작성일
2024-05-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34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통해 우리 역사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흙덩이에서 나온 그대로 전시되는 문화유산은 없다. 한톨 한톨 흙을 털어내고, 한땀 한땀 복원과 보존처리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세상과 만날 수 있다. 문화유산의 어제와 오늘 사이에 국립문화유산연구원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가 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센터는 ‘DMZ 6.25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유품 보존처리’ 사업을 통해 총 1,352점의 유품을 보존처리했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보존처리를 통해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과 호국보훈 정신을 세상에 전한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를 찾아가 봤다.

문화유산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문화유산병원

유산(遺産)이란 사전적으로 앞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를 말한다. 후대에 사물, 문화를 전달하기 위해선 형태가 최대한 온전하고 건강해야 한다. 그러나 문화유산은 환경, 매장 상태, 재질 등에 따라 다양한 손상이 일어나며, 발굴 후 환경 변화에 의해 빠르게 부식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속하고 과학적인 보존처리가 꼭 필요하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문화유산의 훼손 원인과 메커니즘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각 재질에 맞게 복원·보존처리하여 형태와 가치를 되살리는 곳이다. 한마디로 문화유산을 진찰하고 치료하는 ‘문화유산병원’이다.


많은 국가유산이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의 손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2018년 8월부터 2020년 4월까지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국보인 창경궁 자격루 누기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센터는 자격루 원형을 보존하고, 제작 참여자와 제작 기법 등 사라진 기록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자격루 제작에 참여한 12명의 직책과 이름 중 글자가 마모되어 파악할 수 없었던 4명이 누구인지도 새로 확인했다.


그 외에도 국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이순신 난중일기와 서간첩 임진장초,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등이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를 거쳤다. 현재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함안 말이산 고분군 출토 가야 유물 등이 이곳에서 보존처리되고 있다.


01.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내부 02, 03.금속유물 보존처리 모습

과학기술과 장인정신을 결합한 세계 수준의 보존과학

보존과학은 보존처리, 과학적 조사 연구, 재료 연구로 구분한다.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이루어진다. 문화유산의 연대와 정보를 과학적으로 조사·분석·연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보존처리하며, 이때 필요한 재료와 전통 기술, 현대 기술을 연구해 적용한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이재성 학예연구사는 “앞의 세 가지가 동시에 이뤄지는 기관은 전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라고 설명한다.


“보존처리, 과학적 조사 연구, 재료 연구, 세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내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관은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이 유일합니다. 보존과학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된 기관인 셈이죠. 보존처리 기술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과정을 기록하고 자료화하며 노하우를 축적한 덕분에 국내 보존처리 기술은 해외에 보급할 만큼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유물에 달라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클리닝, 부식인자를 제거하고 안정화하는 탈염, 추가 훼손을 막는 강화 등 보존처리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는 비파괴 조사, 영상 분석을 통해 문화유산을 진단하며, 금속, 도토기, 벽화, 석조, 지류, 직물, 목재 등 재질에 따라 세분화하여 문화유산을 보존처리한다. 의·과학 기술과 장비도 동원된다. 비파괴검사 시에는 X-Ray, MRI, CT 등 진단 장비를 활용하고, 세심한 복원을 위해 치과 치료 장비와 수술용 칼 등 각종 도구를 투입한다. 양양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 보존처리를 진행한 윤혜성 연구원이 작업의 난도를 ‘장인정신’에 빗대어 설명한다.


“문화유산을 덮은 흙은 현미경으로 확대해 들여다보면서 수술용 칼로 조금씩 세밀하게 긁어 제거합니다. 종일 고개를 숙이고 작업하고 난 뒤 맨눈으로 확인해 보면 1㎝ 정도 작업이 진행되어 있곤 하죠. 장인정신에 비견될 만큼 세심한 정성을 기울여야 문화유산의 추가 훼손을 막고, 온전한 형태로 보존할 수 있습니다. 문화유산 하나를 보존처리하기까지 4~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존처리 후 문화유산을 전시·관리할 곳을 고민하는 것 또한 센터의 역할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존처리를 담당하는 이태종 학예연구사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은 6.25전쟁 당시 피폭으로 파괴되어 1957년 시멘트로 복원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적으로 석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쳐 2016년부터 탑 해체 후 새로 보존처리되었죠. 재발을 막기 위해선 급격한 온도 변화, 습도, 미생물 등에 민감한 석재 특성을 고려해 복원 위치가 신중히 고려되어야 했고, 지난해 심의를 통해 법천사지 내 유적전시관으로 복원 위치가 결정되었습니다”라고 설명한다.


04.석조문화유산 보존처리 도구  05.X선 투과조사 장비 모습 06.보존처리에 필요한 안료와 센터 금속실 모습

DMZ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유품 보존처리

2020년부터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국방부와 협업으로 DMZ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과 유품 보존처리 사업을 진행했다.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화살머리고지, 백마고지에서는 화기, 탄약, 전투장구, 개인 유품 등 총 9만 5,000여 점이 발굴되었고, 유품의 보존처리가 지연될수록 훼손, 부식 등의 위험이 커지기 때문에 국방부와 국가유산청 간 협조 체계가 구축되었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에서는 전문 장비와 인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4년에 걸쳐 유품 보존처리 작업을 진행했고, 그 덕분에 유품 1,325점이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를 거쳐 전시되거나 유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전쟁 유품 보존처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먼저 유품의 보존 상태를 조사하고 기록을 남기며, X-Ray, CT 등을 이용해 방사선 비파괴 조사를 수행한다. 여기서 총기류 안 총알 유무, 식별번호 등을 확인하고 내외부의 훼손 정도를 판단할 수 있다. 그다음 현미경으로 확대·관찰하며 표면 이물질을 제거한다. 철 부식화합물의 경우 작은 힘에도 쉽게 바스러질 수 있어 더욱 세밀한 작업이 필요하다. 이후 철기의 염분을 빼내는 등의 안정화처리와 건조, 강화처리, 접합·복원 등의 과정을 거친 뒤 보존 상태 조사와 정리가 끝나면 하나의 작업이 마무리된다. 이재성 학예연구사는 그간 많은 문화유산의 보존처리를 진행해 왔지만, 이번 유품 보존처리 작업은 의미가 남달랐다고 전한다.


“우리가 만나는 문화유산은 청동기, 철기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시기가 매우 넓고 다양합니다. 지금의 나와 먼,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흔적이죠. 하지만 6.25전쟁 전사자 유품은 내 큰아버지와 동년배인 분들의 물건이었습니다. 살아계셨다면 지금 내 이웃일 수도 있는 분들이죠. 그래서인지 그분들이 느꼈을 감정과 고통이 제게도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고 임병호 일등중사의 수통은 8개 정도의 탄흔으로 추정되는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치열한 전쟁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유품이었죠. 그 상황을 후대에 최대한 선명하게 보여드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어 여느 때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보존처리에 임했습니다."


07.보존처리에 필요한 안료와 센터 금속실 모습

보존처리는 문화유산의 끝이 아닌 시작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의 일은 단순히 과거의 것을 오늘의 우리에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다. 이재성 학예연구사는 보존처리 작업을 “역사의 사라진 퍼즐을 찾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후대에 전할 유산을 온전하게 보존처리를 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역사를 더 명확하게 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더욱더 값지다는 것이다.


“윤혜성 연구원이 주축이 되었던 양양 선림원지 금동보살입상 보존처리 작업의 경우, 처음 발굴되었을 때는 흙덩어리 상태와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보존처리를 통해 우아한 자태와 또렷한 이목구비는 물론이고 콧수염 형태까지 세밀하게 복원되고 금빛을 되찾았죠. 그 덕분에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연구도 새롭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보존처리는 문화유산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이재성 학예연구사는 “빛나는 보물 뒤에는 이들을 보물로서 더욱더 가치 있게 만드는 보존과학이 있었음을 기억해 달라”라고 덧붙였다.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가 보존처리한 DMZ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시 수습된 유품은 9월 1일까지 전쟁기념관에서 전시된다. 문화유산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더욱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6.25전쟁 유품을 비롯한 문화유산 보존처리를 통해 그들이 우리에게 함께 들려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지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글. 이성미 사진. 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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