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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조선시대 그림 속 기계식 자명종
작성일
2024-05-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70

조선시대 그림 속 기계식 자명종 동아시아에서 시계는 제왕학인 천문학에 속한 도구였다. 『서경(書經)』의 「요전(堯典)」에서 유래한 ‘관상수시(觀象授時)’1)는 ‘象[천문]을 살펴 時[때]를 알려 준다’는 뜻이다. 하늘과 소통하는 ‘관상수시’는 농업 국가였던 조선에서 국왕의 중요한 임무였다. 조선에서 서양의 기계식 시계, 자명종과 만남은 어떠했을까? 조선시대 그림 속 시각화된 자명종의 표현에서 조선 사람들의 미지의 세계, 새로운 시간의 인식과 반응 그리고 그 의미를 살펴본다. 00.〈이하응초상 와룡관학창의본(李昰應肖像 臥龍冠鶴昌衣本)〉, 이한철, 유숙, 1869, 비단에 채색, 133.7x67.7cm, 보물 Ⓒ서울역사박물관

서양 문명의 표상, 동서 교류의 상징

자명종(自鳴鍾)은 추, 태엽 등을 동력으로 사용하는 기계식 시계로,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소리가 울린다. 『Technics & Civilization』(1934)을 저술한 미국의 문명비평가 루이스 멈포드(Lewis Mumford)는 “근대 산업사회의 핵심 기계는 증기기관이 아니라 시계이다”라고 했다. 이는 시계의 정교한 톱니바퀴 구조가 기계 장치의 완벽한 모델로 유럽의 기계 발전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자명종은 16, 17세기 예수회 선교사들이 선교 목적의 선물로 처음 들여왔다. 효명세자(孝明世子, 1809~1830)가 『경헌집(敬軒集)』 권2 「산재영물시(山齋詠物詩)」 49수 ‘자명종(自鳴鍾)’에서 “예로부터 하늘을 측량함에 조화로운 물건 많았으나 공교한 것 서양만은 못하네[從古測天多造化巧工莫似西洋人]”라고 했듯 19세기까지 조선에서 서양산 자명종은 서양 과학기술문명의 상징이었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50세 초상화인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이하응초상〉(1869)에 탁자 위에 생전 흥선대원군의 소장품으로 추정되는 문방제구와 함께 자명종이 있다. 그림 속 자명종은 통상 로마자 숫자판이 있는 앞면은 빈 원으로, 유리로 만들어져 내부가 보이는 측면은 시계 내부 톱니바퀴 구조로 시각화되었다. 여기에서 자명종은 탁자 옆 ‘척사검(斥邪劍)’이라 적힌 환도(還刀) 옆에 위치하며 병인양요(1866) 이후 실체로 다가온 서양 문명에 대처하는 흥선대원군의 식견과 통찰력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01.《책가도 10폭 병풍》, 19세기, 비단에 채색, 각 198.8x39.3cm Ⓒ국립중앙박물관

진귀한 수집품, 완호(玩好)의 대상

서양의 자명종은 상당한 고가품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왕실, 경화세족에게 새롭고 신기한 ‘완상물’로서 수집, 애호되었다. 숙종(재위: 1674~1720)은 자명종을 침상 베갯머리에 두고, 자명종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시에서 숙종은 자명종을 완호(玩好)하는 이유로 ‘형상[形의 妙]’, ‘구조[制의 奇]’, ‘정확성[無差忒]’을 들었다(『열성어제((列聖御製)』 권12).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65 ‘청령국지(蜻蛉國志)’ 「기복(器服)」에서 ‘자명종(自鳴鐘)을 속칭 시계(時計)라 하는데, 누시계대(樓時計臺)와 회중시계(懷中時計)가 있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자미상 《책가도 10폭 병풍》에는 중앙 제5폭의 중심에 동그란 회중시계와 제8폭에 탁상용 자명종이 그려져 있다.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을병연행록(乙丙燕行錄)』 권2에는 제5폭 그림과 같은 회중시계의 일종인 문시종(問時鐘)을 ‘내가 평생에 한번 보기를 원하는 것’, 제8폭 그림과 같은 태엽 자명종과 문시종의 기능을 겸하여 제작된 탁상용 자명종을 ‘천하의 이상한 보배’라고 했다. 19세기 남병철(南秉哲, 1817~1863)은 『규재유고(圭齋遺藁)』 권5 「험시의설(驗時儀說)」에서 “서양에서는 프랑스만 시계공이 2,000명이고, 제작법도 계속 변해 그 기교가 사람들의 의표를 찌른다.”라고 했다. 이렇듯 18세기 홍대용이 평생 한번 보기 원했던, 천하의 이상한 보배 자명종은 마침내 19세기 책거리 그림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서양 문명을 대표하며 시각화되고 있다.


02.〈책거리 병풍을 배경으로 찍은 돌잔치 기념사진〉, 20세기 초 Ⓒ국립민속박물관

호사와 길상의 이미지, 근대 도시의 대중 속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형록 필 《책가도 8폭 병풍》(덕수4832)에는 탁상용 자명종과 회중시계가 그려져 있는데, 그림 속 회중시계 아래 장식 술에는 ‘목숨 수[壽]’, ‘복 복[福]’자가 있어 당시 몸에 지니고 다니는 회중시계에 길상의 인식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876년 개항 이후 자명종은 이전보다 값싼 물건이 되어 확산되었으나 여전히 서민에게는 호사(豪奢)를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이와 같이 조선 말기와 근대기에 팽배했던 ‘부(富)와 길상(吉祥)’을 담은 시계에 관한 인식을 보여주는 자료가 〈책거리 병풍을 배경으로 찍은 돌잔치 기념사진〉이다.


아이의 학문적 성공을 염원하는 책거리 병풍 배경 한편에는 ‘서양의 문명’, ‘부와 길상’의 동경과 바람을 담은 자명종이 자리하고 있다. 

앞서 루이스 멈포드가 시계를 ‘근대 산업사회의 핵심 기계’라고 했던 것은 단지 기술만을 두고 한 것이 아니었다. 기계식 자명종은 문자판과 시침을 통해 시간의 경과를 공간의 변화로 표현하였고, 새로운 시간인식은 구(舊) 지식체제의 틀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조선시대 그림 속 기계식 자명종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시간의 서막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 관상수시(觀象授時): 『서경(書經)』의 「요전(堯典)」에서 유래한 ‘象[천문]을 살펴 時[때]를 알려 준다’는 뜻.




글·사진 제공. 이혜원(청주공항 문화유산감정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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