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사랑
- 제목
- 우리나라 최초의 인쇄 관련 직업 인간 복사기, 필사원을 아시나요?
- 작성일
- 2022-12-29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2222
지식과 문화를 널리 보급한 전문직
우리나라에서 필사는 목판인쇄가 발달하기 전에 책을 만드는 일반적인 수단이었다. 불교 도입 초기에는 경전 보급과 공덕을 쌓는 수행의 한 방법으로 불교 경전을 베껴 쓰는 사경(寫經)이 유행하였다. 사찰에서 운영하는 사경소에는 경전을 필사하는 사경승(寫經僧)과 사경변상도(寫經變相圖, 사경에 경전의 내용을 그린 그림)를 그리는 화승(畵僧)이 있었다. 귀족들이 운영하던 사경소에서는 일반인 사경원(寫經員)들이 직업적으로 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신라시대에 제작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이다.
필사원은 목판인쇄와 금속활자인쇄가 이루어지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당시에 인쇄본이 활발히 간행됐다고 해도 국가의 주요 문서나 외교 문서는 친필로 작성하였기 때문에 글씨를 바르고 깨끗이 쓰는 필사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이 있었다.
고려 초, 서적의 인쇄 및 출판을 담당하던 비서성(秘書省)에는 기술직 하급관리인 이속(吏屬)으로서 문서와 장부를 맡아보는 주사(主事)와 영사(令史), 잘못된 글자를 칼로 긁고 고치는 일을 하는 기관(記官) 등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하급 관료인 사자관(寫字官)이 있어 외교 문서나 교서 등의 글을 쓰는 일을 하였다. 민간에는 직업인으로서 필사장이가 있었다. 영화 《음란서생》(2006)에 필사장이(김기현 분)가 소설책을 필사하여 판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보면 목판인쇄와 금속활자인쇄가 활발하던 조선시대에도 필사장이들이 민간에서 책 제작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필사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백성이 문맹자였던 시대에 필사원은 단순히 남의 글을 베껴 사본을 만드는 단순 업무 종사자가 아니라, 당대의 지식과 문화를 널리 보급하고 확산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 전문직이었다.
글. 김동규(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 경영학 박사) 일러스트. 박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