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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리학을 담는 철학의 그릇사적 안동 병산서원 (安東 屛山書院)
작성일
2022-07-28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37

성리학을 담는 철학의 그릇사적 안동 병산서원 (安東 屛山書院) 경북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에 자리한 사적 안동 병산서원은 서원 앞으로 낙동강이 휘돌아 흐르고 그림 같은 자연 풍경을 서원 안으로 고스란히 들여놓은 솜씨가 돋보인다. 군더더기 없는 7칸 기둥 사이로 강과 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속에 녹아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00.여름철인 7월부터 9월까지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는 개화시기가 길어서 백일홍이라 불리는데, 안동 병산서원에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화마로부터 지켜낸 건축의 진수

2020년 4월 25일, 안동시 풍천면 인금리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에 재발화하면서 병산서원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초속 10m 안팎의 강풍으로 진화작업이 순탄치 않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화재 예방에 총력을 기울였고 안동 산불 화마(火魔)로부터 병산서원을 지켜낼 수 있었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 역할을 해오던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풍산현에 있는 것을 서애(西厓) 유성룡(柳成龍)이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1607년 서애가 타계하자 정경세(鄭經世) 등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광해군 5년(1613) 존덕사를 세워 그의 위패를 모시고, 1629년에 그의 셋째 아들 유진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에게서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된 이곳은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며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진 뒤 강당은 1921년, 사당은 1937년에 각각 다시 지어졌다. 병산서원에는 유성룡의 문집을 비롯해 문헌 1,000여 종 3,000여 책이 소장돼 있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보여주다

고요히 자리한 병산서원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은 만대루이다. 누마루를 떠받드는 기둥은 휜 나무를 그대로 썼고 주춧돌은 다듬지 않은 투박한 모습이다. 2층 마루로 오르는 계단은 거대한 통나무를 깎아 만들었다.


서원의 중심인 입교당 마루에 앉으면 만대루가 한눈에 보인다. 기둥과 기둥 사이로 강이 흐르고 병산의 푸른 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명성과 달리 한없이 소박한 모습은 자연을 즐기는데 방해되는 요소를 최소화했다. 7칸의 누각은 건물 안으로 강과 산을 더 끌어들였고, 바라보는 사람마저 그 속에 녹아들게 해 준다.


만대루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구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에서 따왔다고 한다.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라는 뜻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풍경을 감상하게 만드는 이곳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 병산서원은 2019년 소수서원, 남계서원, 옥산서원, 도산서원, 필암서원, 도동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 등과 함께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되었다.


철종 14년(1863)에는 임금에게서 ‘병산’이라는 이름을 받아 서원이 된 이곳은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며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정리. 편집실 사진.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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