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사랑
- 제목
- 오리건대학교 조던슈니처미술관의 시작 머레이 워너 컬렉션 속 한국 미술품
- 작성일
- 2022-05-30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858
미국 최초의 아시아 미술 중심 대학 미술관
미국 시카고의 부유한 가정 출신의 거트루드 배스 워너는 이혼 후 1904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사업을 운영하던 머레이 워너(Murray Warner)를 만나 재혼했다. 그는 중국에서 거주하며 남편과 함께 아시아 전역으로 여행을 다녔고, 이때부터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종교와 전통문화를 배우며 미술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후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왔지만 1920년 남편이 사망하자 워너는 아들이 교수로 재직 중이던 오리건대학교가 자리한 도시 유진(Eugene)에 정착했다.
워너는 예술과 교육을 통해 동서양 문화의 간극을 좁히고 궁극적으로 세계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꿈을 가진 이상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오리건대학교에 그동안 수집했던 3,500여 점의 아시아 미술품을 남편 이름인 머레이 워너 컬렉션(Murray Warner Collection)으로 기증했고, 이를 바탕으로 1930년 대학교 부속 미술관이 세워졌다. 이것이 현재 조던슈니처미술관(Jordan Schnitzer Museum of Art, University of Oregon)의 전신으로, 미국 최초로 아시아 미술에 초점을 맞춰 세워진 대학 미술관이다.
머레이 워너 컬렉션에서 한국 미술의 비중은 큰 편이 아니지만, 시대와 장르의 범위가 넓고 미술관 설립 당시부터 꾸준히 전시되어 왔다. 거트루드 배스 워너는 미국으로 돌아와 유진에 정착한 후에도 계속해서 한국 미술품을 구입했다. 이 사실은 20세기 초 서울의 ‘테일러상회(W. W. Taylor & Co.)’가 발행한 명세서를 통해 부분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 명세서에는 1924년에 테일러상회가 오리건대학교 미술관이 구입한 6점의 고미술품을 미국 오리건의 포틀 랜드로 보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중 첫 번째 항목인 ‘Palace screen(궁중 병풍)’이 눈길을 끄는데, 이는 바로 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인 〈십장생도10폭병풍〉이다. 〈십장생도 10폭병풍〉은 1879년 당시 세자였던 순종의 천연두 회복을 기념하여 제작된 계병(契屛)으로, 조선 말 궁중회화의 전통을 반영한 화려한 십장생도와 제작 경위, 치료에 참여한 의약청 관원들의 이름이 담겨 있다. 또한 학술 연구를 통해 이 병풍이 구한말 종로에서 지전(紙廛)을 운영하던 주인섭이 소유하고 있던 것과 같다는 것이 알려졌다. 궁궐에 출입하던 전직 관료 주인섭이 이 병풍을 획득해 테일러상 회에 판매했으며, 워너가 다시 이를 사들여 미국 오리건에 오게 된 것이다. 제작 경위와 시기 그리고 외국으로 반출되는 경로가 확인되는 흥미로운 문화재이다.
국립문화재연구원과의 교류로 복원된 소중한 유산
워너가 구입했을 당시부터 일본식으로 변형되어 있던〈십장생도10폭병풍〉은 2010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재연구원)의 보존처리 지원사업을 통해 고창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복원된 후 2012년 국립고궁박물관에서도 전시된 바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에도 또 다른 한 점의 머레이 워너 컬렉션의 한국 문화재 보존처리를 지원했다.
이는 조선시대 〈지장시왕도〉로 이 불화는 워너가 수집했을 때부터 오랜 세월의 흔적이 화폭에 역력했으며, 본래의 장황을 잃고 서양식 액자에 담겨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세척과 보존처리 과정을 거쳐 본래의 부드러운 색채와 금니의 화려한 문양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고, 장황 역시 보다 한국적인 형식으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보존처리 후 학술연구를 통해 1600년경 제작된 오랜 역사를 지닌 수준 높은 마본불화 (麻本佛畵)임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지장시왕도〉는 이번 6월 새로운 한국실 교체 전시를 통해 8년 만에 보존처리 후 처음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오리건대학교 조던슈니처미술관은 머레이 워너 컬렉션을 바탕으로 꾸준히 한국 미술 컬렉션을 확장해왔다. 2000년 대부터는 근현대 작품도 수집하여 이곳의 한국 미술 소장 품은 현재 500여 점에 달한다. 국내 여러 기관 그리고 한국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오리건 지역의 개인 수집가와 꾸준히 소통하고 협력하며 한국 문화재의 연구와 전시, 보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글, 사진. 김안나(오리건대학교 조던슈니처미술관 한국국제교류재단 글로벌챌린저 박물관 인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