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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눔에 대한 소중한 추억 - 혜전 송성문 선생 문화재 기증
작성일
2018-08-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1604

2003년 새해가 밝은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에서 문화재 수증 업무를 담당하던 필자는 한 노신사의 방문을 받았다. 문화재 기증의 절차를 문의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기증 절차를 안내해 드리고 기증에 필요한 서식을 드리자 이 노신사는 앞으로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고 총총히 박물관을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 놀라운 일이 무얼까 하며 반신반의했다.

한 노신사가 예고한 ‘놀라운 일’

얼마 뒤 다시 박물관을 찾은 노신사의 손에는 국보 4건, 보물 22건 등의 물목이 빼곡히 적혀 있는 기증희망원이 들려 있었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기증업무를 담당한 지 채 반년도 안 된 필자로서는 흥분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노신사는 송성문(1931~2011) 선생이 소장하던 문화재 일체를 기증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기증 절차를 대신 맡았다고 밝혔다.

정신을 가다듬고 기증희망원을 통해 기증 대상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국보 제246호 초조본 대보적경(11세기), 국보 제273호 초조본 유가사지론(11세기), 국보 제271호 초조본 현양성교론(11세기), 보물 제1125호 불설대보부모은중경(1432년), 보물 제1140호 묘법연화경(1463년), 보물 제1281호 자치통감(1436년), 보물, 보물, 보물, 보물, … 총 45건. 뭐라 말을 잇기 어려웠다. 한눈에 보기에도 우리나라 고인쇄 문화재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긴 목록이었다. 이 밖에도 세종대의 왕지(보물 제897호), 조선 선조대의 한석봉 서첩(보물 제1078호), 조선 숙종대의 기사계첩(보물 제929호) 등 인쇄 문화재 이외의 중요문화재도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게다가 국가지정문화재만 중요하고 그 이외의 문화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지정문화재가 26건이나 포함되어 있는 기증 물목 앞에서 국보, 보물을 운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기증문화재의 인수와 관련된 내용을 상의한 노신사는 또 훌쩍 박물관을 떠났다.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이분은 고인쇄 문화재 전문가 전문(田文)선생이었다. 전문 선생은 송성문 선생과 교분을 나누며 인쇄 문화재의 수집과 관리를 도운 분이었다. 박물관의 간부들을 만나보지 않겠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전문 선생은 뭐 굳이 그럴 것이 있느냐는 답을 남겼다. 하는 수 없이 선생을 배웅하고 난 필자는 흥분된 마음을 억누르며 기증 희망 건을 보고했다. 박물관은 일순간에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개인이 국가지정문화재를 26건이나 소장하는 것만도 어려운 일일 뿐더러, 이 모두를 기증하는 일 또한 전무후무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믿기 어려운 일을 한 이는 1970~80년대에 영어 교재로 압도적인 인기를 누렸던 『성문종합영어』의 저자로 유명한 송성문 선생이었다. 기증된 문화재는 송성문 선생이 평생에 걸친 노력으로 수집한 한국 고인쇄 문화재의 정수였다.


송성문 선생의 고귀한 나눔의 정신

그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1950년 신의주교원학교를 졸업하고 월남했다. 1953년 군에 입대한 그는 통역장교로 9년여 근무했고, 1961년에는 동아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67년에 『성문종합영어』를 내놓고 1976년에는 성문출판사를 창업함으로써 이후 한국 영어 교육의 독보적 존재가 되었다. 그는 1950~60년대 전란의 상처가 채 가시지 않은 시절 숱한 고서들이 제지공장에서 폐지로 파기되는 것에 충격을 받고, 그때부터 고인쇄 문화재 수집을 평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의 문화재 수집에는 남다른 대목이 있다. 서화나 도자기와 달리 고인쇄 문화재의 가치를 알아보는 이가 적던 시절 그는 오롯이 고서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수집한 문화재의 의미와 가치를 밝혀 이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받는 어려운 일을 거듭했다.

그토록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수집한 애장품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온 국민이 그의 수집품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길을 선택했다. 선생은 1차 기증에 이어서 추가로 한 차례 더 기증을 해서 기증문화재는 총 65건에 이른다. 국가지정문화재 26건을 포함한 귀중한 문화재를 기증하는 일은 사상 초유의 일이었고 앞으로도 있기 어려운 일이다.

선생은 고귀한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셨고, 그럼에도 자신의 공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 겸손의 미덕을 가르쳐주셨다. 선생은 자신의 애장품을 박물관에 기증하던 날에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던 날에도, 기증문화재 특별전이 열리던 날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송성문 선생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은 고인쇄 분야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기관이 되었으며, 선생이 기증한 소중한 문화재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의 중근세관과 기증관에 전시되어, 우리 민족이 도달했던 높은 수준의 인쇄문화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글. 장상훈(국립중앙박물관 전시과장) 일러스트. 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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