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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지신명께 드리는 제사의 정점, 우리 술에 깃든 문화와 정신
작성일
2012-11-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382



술은 물과 불의 상생의 산물


우리 민족은 고래로부터 물을 물리적, 지리적 형상이 아니라 정신적, 정서적 위상으로 받아들여 왔다. 물의 원형성을 곧 세상의 창조력, 영원한 생명력, 풍요의 근원, 청정한 정화력으로 생각하여 왔던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물은 농경생활의 실용성을 훨씬 뛰어넘어 약수, 정화수처럼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불도 생명력 또는 창조력의 상징으로 여겨 왔으며, 불이 가지고 있는 무서운 파괴력을 제사에서의 소지, 향불, 정월대보름의 쥐불놀이처럼 흔히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청정의 힘, 정화의 힘으로 받아들였다. 흔히 물과 불을 상극관계로 생각하지만, 물과 불의 원형성은 동일하므로 오히려 상생관계라고 하는 것이 옳다.

우리 민족이 본 술은 물과 불의 상생적 결합이다. 물과 불은 서로 밀어내고 서로 이기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조화하고 보완하는 신비가 있다. 물과 불의 조화는 푸른 열매인 벼[禾]로 변화한다. 그리고 벼는 술을 만든다. 그러므로 평화平和는 벼[禾], 곧 밥과 술을 먹는 것[口]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곧 물과 불의 조화로 만들어진 밥과 술을 나누어 먹는 것이 평화다.


술은 제사 음식의 정점

· 공동체의 안녕과 단결을 위한 동제나 조상에게 지내는 제사를 풀어 말할 때 ‘주포酒脯를 진설하고 향화香火를 올린다’고 한다. 포는 술과 향을 뺀, 제사에 올리는 음식 일체를 의미하므로 술, 포, 향중에서도 가장 핵심 되는 것은 술이다.

왜 술일까? 그 옛날 생산력이 미비하여 삼시세끼 끼니 때우기도 쉽지 않은 처지에 많은 양의 곡식을 이용해 작은 양의 술을 빚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술은 기본적으로 귀한 것이었고, 귀하기 때문에 한 집단의 지배층이나 힘 있는 어른, 받들어야 할 조상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 세상의 혼령은 현실의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술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몫이 된다. 대개 제사 주재 어른들의 차지가 크지만, 우리 민족은 힘 있는 사람들이나 어른들만이 술을 독점하지는 않았다. 벼, 곧 술의 원형이 지니는 평화의 뜻을 기려 참여자 모두가 그 향미를 누리는 기회를 골고루 갖게 하였으니, 이는곧 음복이다. 음복은 자연스런 음주문화의 교육과정이기도 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 음주교육은 밥상에서부터 시작된다. 대가족제 하에서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올리던 반주는 어린 아들, 손자에게도 가끔 재미 삼아 조금씩 권하며 밥상머리 음주교육을 실시한 것이다. 그리고 넓은 범위의 친지들이 모이는 제사에서의 음복은 더 사회화된 음주교육이고, 보다 제도적인 음주교육은 향음주례鄕飮酒禮이다.



음주예절 교육, 향음주례

우리나라는 고려 인조시대에 과거제도를 정비하면서 지방에서 관리들을 중앙으로 보낼 때 향음주례를 행하도록 규정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세종이 집현전에 명해 우리 실정에 맞게 향음주례를 상세히 정하게 하여 일반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향음주례는 이후 이 땅에서 음주예절의 경전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으며, 무절제한 음주에서 오는 폐해를 예방하고 올바른 음주예절을 갖도록 하는 사회교육 과정으로 정착했다. 

향음주례는 향촌의 선비, 유생들이 향교, 서원 등에 모여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는, 어진 이를 존중하고 노인을 봉양하는 향촌의례이다. 매년 음력 10월에 길일을 택하여 고을의 관아가 주인이 되어, 나이가 많고 덕이 있으며 재주와 행실이 갖추어진 사람을 주빈으로 삼고 그 밖의 유생을 손님으로 하여, 서로 모여 읍양하는 예절을 지키며 주연을 함께 하는 일종의 사회교육인 셈이다.

오늘날과 같이 변화무쌍하고 복잡다단한 시대에 향음주례의 절차 그대로를 따라가며 술을 마시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늘이 내려준 술과 음식을 함부로 다루지 않고, 질서 있고 예절 있는 분위기 속에서 술 즐기기를 권하는 향음주례의 근본정신은 오늘에도 그 의미를 잃지 않는다. 



우리 민족 특유의 안주문화

세상이 남자와 여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다른 한편으로 세상은 술 마시는 사람과 술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천지가 술판이요, 모두가 술꾼으로 보이겠지만, 통계에 의하면 인류의 30% 정도는 아예 술을 못 마시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종교적 신념에서거나 알레르기 등 신체 질환, 또는 몸 안에서 알코올을 분해시키는 효소의 활성도가 유전적으로 매우 낮아 술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하여튼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 술을 즐겨 마셔왔는데, 신기한 것은 민족, 또는 동서양에 따라 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는 술을 음식으로 대하는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술을 술 자체로, 곧 기호품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술을 음식으로 받아들였다. 우리에게 있어 술이란 항시 식사를 할 때 반주로 마시거나, 술만을 따로 마실 때도 안주按酒(풀이하면 술을 ‘어루만지는’ 음식)를 꼭 곁들여야 했다. 술을 음식으로 받아들이면, 술 자체를 많이 마실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안주가 알코올의 흡수를 완화시키기 때문에 알코올로 인한 피해가 별로 없다. 

사라져 버린 우리 전통주

술은 당해 사회의 문화적 전통을 반영하고 있다. 『임원십육지』, 『증보산림경제』, 『주찬』 등 우리 전통 술의 제조법을 기술한 전적들을 보면 조선조 말까지 1백여 가지의 술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기록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도 포도주 등 12가지의 술이, 조선시대에 천축주 등 74가지의 술이 외래 술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나타나지만, 조선말까지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외래 술은 없었다.

그런데 그 다양했던 우리 전통 술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1904년 구대한제국의 재정고문이었던 일본인이 일본의 사례를 따라 주세법을 구상하고, 1909년에 그 법이 반포됨으로써 판매용, 가용家用 가리지 않고 양조 면허제가 도입되고,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제는 종래의 주세법을 주세령으로 고쳐, 가용 술에는 고율의 세금을 매겨 억제하고, 양조업자에 의한 화학주의 대량생산만 가능토록 정책을 펴 나갔다. 이것이 우리 전통 술이 멸절된 과정이다.

이렇게 우리 전통 명주들이 사라졌으니 우리 술이 세계인의 입맛에 오르내릴 일이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민중의 술로서 수 천 년 간 끈질기게 명맥이 이어져온 막걸리가 요즘 들어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저 알코올의 막걸리가 갖는 원초적 순수성이 웰빙 흐름과 맞아떨어진 결과로 보인다.

막걸리는 김치, 된장 등과 같은 우리 민족의 전통 발효식품으로 풍부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 유산균, 식이섬유, 비타민 등의 영양소를 함유하고 있다. 혈액순환, 면역력 증진, 노화방지 등 막걸리의 효능이 밝혀지면서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즐겨 마시던 막걸리가 우리 강역을 넘어 세계인들까지 즐기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면에서 멸절된 다른 전통 술들의 복원, 중흥도 급하다.





글·김학민 프레시안 음식문화학교 교장 사진·전주전통술박물관,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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