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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사리의 작은 신전 하고사리역
작성일
2010-05-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941



 
마을의 역사歷史, 고사리의 역사驛舍, 하고사리역

문화재청 직원과 함께 등록문화재를 조사하기 위해 하고사리역이 위치한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에 도착하니 여느 때와는 달리 전·현직 이장님을 비롯해서 많은 마을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등록문화재로 등록시키기 위하여 많은 대상을 찾아 나섰지만 그토록 환대를 받은 적은 없었다. 전·현직 이장님을 비롯하여 동네의 많은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하고사리역에 얽힌 옛 이야기에서부터 며칠 전 철거를 간신히 모면한 일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금은 등록문화재에 대한 등록을 다소 환영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조사를 나갔던 당시였던 2006년에는 등록문화재 등록을 많은 소유주들께서 극도로 반대하고 있었다. 제천의 모 은행은 등록문화재 조사를 갔다 오자마자 리모델링을 한지 얼마 안 된 한 건물을 철거해버렸다. 사실 당시 조사자들은 그 건물은 등록문화재로 등록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그날 하고사리의 주민들은 달랐다. 하고사리역에 얽힌 하나의 추억을 한마디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는 마을 어르신들의 열정은 그야말로 감동이었다.



자원 수탈을 위한 고사리역과 삶을 닮아낸 하고사리역

하고사리역이 위치하고 있는 강원도 삼척시 도계지역의 철로는 일제 강점기 자원 수탈과 값싼 노동력을 통해 식민지 공업 발달을 위해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부설되었다. 대한제국시기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기 까지 한국철도는 크게 3가지의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제1기는 열강들의 철도이권쟁탈이 시작된 1880년대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X자 형으로 한반도 종관철도가 완성된 1906년까지이고, 제2기는 대륙진출을 위해 일본과 한국 만주를 연결하기 위해 만철중심의 1926년까지이다. 제3기는 한반도에서 석탄, 목재, 철, 농산물 반출 등을 본격화하고 식민지 공업과 군수산업을 일으키며 식민지 수탈을 본격화하기 위해 만철에 위탁운영을 했던 것을 해제하고 총독부가 직접 관할하던 1926년부터 1945년까지이다. 당시 철도정책에 대한 변화는 1910년 한일합방이후 일본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른 것이다.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의 역할은 정치 군사적 하부조직에서 1926년 이후 산업원료와 자원의 공급지로서 그리고 잉여자본의 투자지로서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의해 삼척의 도계지역은 석탄 채굴을 위해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1927년 수립된 <12개년 계획선>중 한반도의 척추에 해당하는 원산과 포항, 울산과 부산간을 연결하는 341마일의 동해선과 연결을 위해 철암선(묵호역~철암역) 상에 놓여져 있다. 따라서 당시 기차의 주인은 사람이 아닌 석탄이었다. 고사리 마을 사람들 실어 나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땅 속에 묻혀있는 석탄을 보다 많이 채굴하여 일본으로 내 보내기 위해 철도가 부설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하고사리역이 위치하고 있던 역사가 석탄채굴을 위해 도계광업소가 만들어지면서 역사가 석탄채굴과 가까운 쪽으로 옮겨지면서 고사리역이 만들어졌다. 마을의 중심이 되었던 고사리역이 석탄 채굴을 위해 옮겨지면서 그 지역에는 새로운 이방인들이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이 지역의 철도역사시설 관리는 삼척철도주식회사라고 하는 사철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지금도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고사리 131-4, 즉 고사리역 쪽에는 1938년 10월 6일 축조한 변전소등 관련시설이 남아 있다. 고사리역은 고사리 사람들과의 연계가 끊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수탈 정책에 의해 철도역사가 마을과의 연계가 떨어지게 되자  마을사람들은 역사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들 스스로가 역사驛舍를 짓기로 하였다.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인 황토와 목재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황토는 주변의 하천에서 수 km 떨어진 곳에서부터 지게로 지어왔고, 목재는 주위의 산에서 채취해왔던 것이다. 집을 지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마을 사람들이 설계도도 없이 합심하여 참여하였다. 하고사리역을 받치고 있는 석축 역시 마을사람들이 들짐을 지어 쌓은 것이다. 비록 고사리라고 하는 역사의 이름은 빼앗겼지만 마을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스스로 역사를 짓고 이름을 하고사리역이라고 명명하여 사용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하고사리 역사는 마을사람들 스스로 역장을 맡아서 역을 운영하여왔고, 1967년 9월 1일에서야 비로서 공식적으로 간이역 영업을 인정받게 되었다.





고사리의 작은 신전, 하고사리역

하고사리역은 대합실과 역무실, 숙직실, 부엌이 혼합되어 있는 ㄱ자형 평면을 갖고 있다. 공간은 이렇게 복합적이지만 연면적이 32.425 ㎡에 불과하여 10평이 채 안 되는 매우 적은 간이역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 지어진 가장 작은 역사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단순한 간이역이라도 대합실로의 출입을 강조하여 삼각형의 박공지붕 밑에 포치가  돌출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하고사리역은 출입구라기보다는 마을에서 철로로 진입하면서 철로와 평행한 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는 문이 있다. 다른 역사의 경우 마을에서 광장을 거쳐 철도 역사에 들어서서 기차를 타기 위해 철로 쪽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지 여건으로 말미암아 바로 철로면을 따라 진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합실과 역무실 숙직실이 장방형의 평면 안에 연속되어 있고, 숙직실과 연계된 부엌이 마을 쪽으로 돌출되어 있다. 건축 입면은 마을사람들이 모두 참여하여 축조한 것인 만큼 매우 단순한 형태의 간이역으로 지붕은 맞배지붕 형식으로 천장에 반자를 둘렀다. 그런데 이렇게 작고 단순한 하고사리역은 강력한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성냥갑 같은 하고사리역은 늘어진 버드나무, 가로등과 함께 어우러져 웅장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는 산세와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그의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작지만 마을의 강력한 신전인 것이다.  



 

신전의 부활

식민지 수탈공업에 의해 마을의 번성과 발전이 왜곡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자발적 의지가 모여 주변의 황토와 목재, 하천의 자갈을 모아 하고사리역이 지어졌다. 1988년 이후 무인간이역이 되었지만 1970년대 하루 이용객이 500명에 이르는 등 이 하고사리역은 마을의 모든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역이 그동안 방치되어 오다가 이 마을의 이장님이 철도공사 관련사의 아는 분에게 보수를 부탁하게 되어 승낙을 받게 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11월, 포크레인 등을 동반하고 인부들이 하고사리역 앞에 모였다. 보수를 위해 방문 한 줄 알았는데, 하고사리역을 철거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날은 돌아가신 마을 사람들을 위한 마을제사를 지내는 날로 하고사리역이 이 세상을 떠나가기 바로 직전인 상태가 되었던 것이다. 이장님은 부랴부랴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강력하게 항의하고 몸으로 막아서서 철거를 저지하였다. 마을 제삿날 또 하나의 마을의 신전이자 상징인 하고사리역을 잃을 뻔 했던 것이다. 사실 주민들 스스로도 어느 정도의 기금을 모아 보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고사리역을 철거로부터 지켜낸 날이 돌아가신 고사리 마을사람들을 기리기 위한 마을 제사일이어서 하고사리역은 이날 다시 부활하게 되었다.


 

 부활에서 성형수술로

부활된 하고사리역은 주변에 큰 감동을 주었다. 이러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하고사리역은 2007년 7월 등록문화재 336호로 등록이 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도코모모 코리아에 의해 2008년도 근대문화유산 지킴이상이 주어지기도 했다. 이윽고 다시 살아난 하고사리역에 성형수술이 행해졌다. 문화재로서의 품위를 위해 다듬어질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성형수술은 하고사리역이 갖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흔적을 지워버리고 말았다. 하고사리역이 간직하고 있었던 마을의 역사는 깨끗한 흰색의 비닐판벽에 의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얼굴이 지닌 세월의 흔적이 무심한 이 성형외과 의사에게는 깨끗하게 지워내야 할 상처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마을의 역사와 흔적을 지워내 성형수술을 한 지금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야말로 무표정한 창고가 되어버렸다. 그토록 지키려고 애썼던 것은 이런 모습이 아닌데. 신전의 재 부활은 불가능한가?  

 
글·사진 | 김종헌 배재대학교 교수, 도코모모 코리아 회장  
사진제공·임병국 열차사랑동우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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