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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천연색에 담긴 선조들의 녹색가치
작성일
2010-05-1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475



 
가장 이른 시기의 항라

2009년 11월. 전남 순천 송광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는 복장腹藏(불상을 만들 때 가슴 쪽에 넣어두는 보화나 서책 따위의 유물들)  유물 450여점이 발견 되었다. 유물은 조선 중기(15-17세기)의 전적典籍류, 의복, 직물, 다라니 등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했으며 매우 귀중한 것들이었다. 복식服飾도 두 점이 발견됐다. 저고리는 남성용, 배자褙子는 여성용이고 모두 수준급으로 제작된 우수한 복식자료이며 보존상태도 상당히 양호했다. 직물 편은 11점이 확인됐고 그중 항라亢羅(명주·모시 등으로 짠 여름 옷감)는 3족 항라로 현재까지 조사된 것으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국정광대다라니경(751년)이 기록된 종이 두루마리가 천년이 넘는 세월에도 불구하고 종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하면 불과 350~400년 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복식, 직물 및 항라의 발견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직물을 이해하고 나면 300년, 400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가를 알 수 있다. ‘지천년紙千年 견오백絹五百’이라는 옛말이 있다.‘한지는 천년, 비단은 오백년 동안 보존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직물은 종이에 비해 오랫동안 보관하기가 어렵다. 순천 송광사 3족 항라가 현재까지 조사된 것으로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것인 것도 그만큼 직물의 보관이 어려운 것도 한 이유일 것이다.

 

복식 유물에서 색깔의 비밀   

직물을 오랜 세월 동안 보관하기란 쉽지 않은데 순천 송광사에서 발견된 복식들을 보면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할머니가 젊은 시절에 입었던 옷이라고 장롱 속에서 꺼내 놓은 옷처럼 보관 상태가 좋기 때문이다. 그토록 보관상태가 좋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적으로 눈에 띠는 것이 색깔이다. 복식 유물은 한결같이 염색이 되어 있었는데, 유물에서 염색된 색소는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송광사 복식 유물에서 보여 지는 청색은 쪽염색으로 우리 조상들이 다양하게 사용해 온 천연색소이다. 일상의 옷, 관복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할 책 표지, 옷, 병풍 불화 등에 이용해 온 색소이기도 하다. 쪽 색소는 쪽풀을 베어서 물에 담가 색소를 추출한 다음 패각회(조개를 불에 태운 횟가루)를 넣어 침전시키고, 침전된 쪽 색소를 잿물에 풀어서 발효시킨 것으로 푸른색은 쪽풀에서 취했지만 쪽풀보다 더 푸르다靑取之於藍而靑於藍.

추출과정에서 강알칼리 성분인 패각회를 넣고, 발효를 시킬 때도 강알칼리 성분인 잿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발효된 쪽물은 pH 12-13이 된다. 다수의 미생물은 중성(pH 7) 영역에서 활동이 활발하므로 pH 12-13 정도 되는 강한 알칼리 상태의 쪽물로 염색을 하게 되면 세균이 소독된다. 염색을 하고나서는 잿물을 씻어 내지만 항균성과 항산화력을 갖는 쪽의 색소는 섬유와 결합하여 그 색이 없어지는 순간까지도 균의 침입과 부식을 막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순천 송광사에서 발견된 복식이 양호 하고, 당시의 복식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아마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해온 쪽문화가 있었고, 이것을 활용한 조상들의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한 천연색소

쪽 색소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천연색소는 항균력, 항산화력 및 약리성을 가진다. 단순히 색을 내는 것 외에 부패와 부식을 막는 효과도 있는데, 이것은 색을 갖는 식물이나 동물들의 생존전략에서 연유한다. 식물이나 동물들은 곤충이나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몸을 주변 환경과 유사한 색깔로 변화시킨다. 색깔을 주변 환경에 맞춤으로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생존하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숨어 있게 되면 대를 잇지 못한다. 원시민족 및 유목민 여성들은 자기 몸을 화려하게 치장함으로서 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고 그 중에 유전적으로 우월한 남자를 선택하여 대를 잇는 경향이 많다. 꽃을 피우는 식물도 벌이나 나비가 수정(꽃가루받이)을 시켜 주어야지만 종자를 맺고, 대를 잇게 된다. 식물은 대를 잇기 위해 노출의 위험을 무릅쓰고 화려한 색깔의 꽃을 피우거나 향을 내뿜는다. 꽃이 화려하지 않은 식물은 향기로, 향기가 약한 것들은 꽃 색깔로 벌이나 나비를 유혹하고, 그들의 힘을 빌려 수정이 되고 종자를 맺어 대를 잇는다. 꽃이라는 생식기관은 이처럼 종족 번식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며, 자기 방어적인 기작을 갖고 있다. 미생물이나 곤충이 가해했을 때는 독성물질로 대응한다. 뜨거운 햇살로부터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자외선과 같은 색으로 변하거나 항산화물질의 농도를 높인다. 이러한 물질들(색소)은 균이나 곤충에게는 위협적인 물질이 되지만 인간에게는 항균 및 항산화 물질로 유용하게 이용된다.




생활 속의 천연색 

우리 선조들은 색을 즐겨 사용했지만 유목민들이나 화려한 꽃처럼 색깔로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지는 않았다. 색깔은 화려하지 않지만 은은한 향을 품어 내는 꽃처럼 인품이라는 향기로서 사람을 감화시키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예禮로 삼았다. 생활 속에서 색의 사용도 자연을 해치지 않고 그 안에서 조화를 추구 하였다. 동치미나 물김치를 담글 때 갓을 살짝 곁들여 놓으면 처음에는 무색이지만 숙성이 되면서 자주빛 색을 내면서 이질적인 재료들을 조화 시킨다. 이것은 동치미나 물김치를 담글 때는 알칼리 상태였던 것이 숙성되면서 산성화되고, 그로 인해 갓에 포함되어 있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색소가 발색이 되는 원리이다. 안토시아닌 색소는 눈과 피부 보호, 항산화 효과 등이 우수한 색소이므로 그것 자체를 섭취하는 것만으로 몸에 좋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동치미나 물김치에 안토시아닌 색소가 함유된 갓을 넣어서 숙성 정도를 알아내는 색으로 활용했고, 알맞게 익었을 때 나타내는 조화로운 자줏빛 색을 맛과 함께 즐겼다. 소염, 해독, 이뇨 및 지혈 작용이 있는 치자를 장판에 염색하여 사용하였으며, 일이 많았던 여성들은 열을 내리는 작용이 있는 치자물을 떡에 넣어 먹음으로서 화를 내리기도 하였다. 군량미는 치자 물에 담갔다가 쪄서 말려 저장함으로서 변질을 막았다. 쑥이나 모싯잎 같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으면서도 항균력이 강한 식물을 떡이나 송편에 넣어 만듦으로서 색이 예쁘고, 보관이 쉬우며 맛도 좋게 하였다. 음식뿐만 아니라 산과 들에서 자라는 꼭두서니, 자초 등의 풀을 끓인 물, 여름철에 떨어진 풋감을 으깬 즙으로 옷감을 염색하였다. 자연의 색을 옷감에 염색하고자 했던 것은 자연을 해치지 않고 자연의 색으로 자연과 조화를 추구 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의 발로發露였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자연의 색을 음식이나 옷감에 물들여서 우리 생활에 가까이 했던 것들은 오늘날의 과학적인 시각으로 볼 때 우리 몸을 더욱 건강하게 하고,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 준다는 사실이다. 선조들이 들풀이나 나무열매에서 취했던 소박한 색들은 과학적인 해부에 의해 그 큰 가치가 인정되고 있으며, 현대에 이르러 음식, 화장품, 의약품 및 천연염색 등 다양한 분야로 전문화되고 산업화의 모태가 되고 있다.   


글·사진 | 허북구 재단법인 나주시천연염색문화재단 운영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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