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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올 한 올 자연과 함께 짓다
작성일
2017-07-0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519

한 올 한 올 자연과 함께 짓다 - 우리 전통 직물 삼베·모시·무명·명주 옷 한 벌을 지으려면 시간과 땀, 지혜가 삼박자를 갖춰야 했다. 삼베와 모시, 면직물을 얻기 위해 씨앗을 심고, 다 자란 식물을 수확해 한 올의 실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수작업을 반복했다. 고운 명주 한 필을 얻기까지 또 얼마나 많은 누에를 키우며 실을 뽑았을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각각의 재료로 삼베, 모시, 무명, 명주를 어떻게 완성했는지 그 여정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좌측 상단부터 삼베(김점순 作) ⓒ한국문화재재단, 모시(문정옥 作) ⓒ한국문화재재단, 명주(이규종 作) ⓒ한국문화재재단,  쪽염색무명(윤대중 作) ⓒ한국문화재재단

01_한산모시짜기 ⓒ문화재청, 02_삼베의 재료가 되는 삼 ⓒ셔터스톡

한여름의 청량감을 품은 ‘삼베와 모시’

빳빳하게 풀을 먹인 후 정성스레 다듬이질한 삼베로 홑청과 베갯잇을 분주히 바느질하던 어머니의 모습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였다. 습하고 무더운 여름용 침구로 삼베만 한 것이 없다. 거칠고 열전도가 잘 되어 시원하기 때문이다.

하절기용 직물에 사용되는 마(麻)는 인류가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던 섬유이다. 식물의 줄기에서 속껍질을 벗겨내어 만들기 때문에 인피섬유라고 부르며, 줄기의 껍질을 벗겨 찌고 말리고 가늘게 쪼개는 과정을 반복해 실을 완성한다. 모든 것은 아낙네들의 무릎과 치아, 그리고 손끝에서 이뤄지는 힘든 작업이다.

마섬유로 만든 직물은 삼베와 모시이다. 삼베는 삼(杉) 또는 대마라고 불리는 한해살이풀, 모시는 다년생 모시풀 줄기의 인피부에 생성되는 섬유세포를 사용한다. 거칠면서 시원한 청량감을 가지고 있는 마섬유는 매우 질기고 튼튼하다. 형태 안정성이 낮아 쉽게 구겨지는 것이 마섬유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으나, 바꿔 생각해보면 천연섬유가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삼베는 표백되지 않는 고유한 황색을 띠고 있어서 그 자체로 자연의 감성을 지니고 있으며, 모시는 더욱 가늘고 섬세하며 고유한 광택을 보유하고 있어 옅은 색으로 염색해 하절기용 고급 직물로 애용해 왔다.

지역별 특산물로 널리 알려진 안동포는 경북 안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운 삼베 포이며, 충남 한산의 세모시는 정련하지 않은 비단 직물인 생명주와 비교될 정도로 결이 섬세하고 고운 광택을 지녔다.


백성들도 따뜻한 겨울을 나다 ‘무명’

식물을 원료로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직물은 면이다. 면은 섬유장이 5㎜도 안 되는 짧은 단섬유다. 줄기에 열려있는 목화송이에서 씨를 분리한 후, 솜뭉치를 빗질해서 적절한 두께의 솜고치로 만들고, 거기에 꼬임을 주어 실을 뽑아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인피를 벗겨낸 후 가늘게 쪼개고 이어서 만드는 마직물에 비해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 보인다.

고려 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귀국할 때 목화씨를 붓 뚜껑에 숨겨서 들여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문익점 이전에도 우리나라에서 면직물이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은 여러 사료에 의해 밝혀져 있으며, 목화 역시 재배되어왔다. 그렇지만 문익점이 가지고 온 목화씨는 그의 장인이었던 정천익에 의해 일반 백성들이 면직물을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이후에 목화송이에서 씨를 빼내는 씨아와 실을 잣는 물레가 보급돼 생산량이 확대되는 시기를 맞았던 것이다.

면섬유는 측면에 천연 꼬임을 가지고 있으며, 성장 과정에서 세포 원형질로 채워져 있던 부분이 수확 후 건조되면서 섬유 가운데에 비는 공간을 형성한다. 이러한 꼬임과 중공은 면섬유의 함기량을 높여 보온성이 우수한 성질을 갖게 한다. 면섬유의 보급은 값비싼 비단 직물을 사용할 수 없었던 일반 백성들에게 따뜻한 동절기를 선물했다. 포근한 목화솜과 함께 면포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목화는 남부지방에서 일부 재배되고 있으나, 생산량이 미미하여 거의 전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03_누에고치에서 만든 명주실 ⓒ한국문화재재단, 04_안동포 짜기 ⓒ국립무형유산원, 05_재배하기 전 목화송이 ⓒ셔터스톡, 06_나주의 샛골나이 ⓒ문화재청

우아한 아름다움을 갖춘 ‘명주’

면과 마직물이 식물을 원료로 했다면,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의 대명사인 견직물은 누에고치의 단백질인 피브로인(Fibroin)이 주성분이다. 봄에 부화한 어린 누에는 뽕잎을 먹으면서 돌과 잠을 반복하여 4회 탈피한 후 5령의 큰 누에로 성장한다. 다 자란 누에는 토사구를 통해서 실을 토해내며 스스로의 몸을 2~3일에 걸쳐 고치로 완전히 감싼 후에 그 안에서 누에나방으로 날아갈 날을 기다리게 되는데, 이때 누에고치를 뜨거운 물에 넣고 실 꼬리를 잡아 견섬유를 풀어낸다.

하나의 고치에서 풀려나오는 견섬유의 길이는 1~1.5㎞에 달한다. 천연섬유로는 유일한 장섬유이다. 견섬유를 정련하여 불순물을 제거하면 매끈한 삼각 단면의 피브로인 2올이 모습을 드러내는데, 이러한 단면형과 매끈한 측면의 형태를 갖춘 견섬유로 제직한 명주는 우아한 광택과 부드러운 촉감을 갖추고 있어 섬유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견섬유로 만들어진 전통직물들은 평직(세로실인 경사와 가로실인 위사가 번갈아 교차되는 가장 기본적인 조직)으로 제직한 명주를 비롯해 다양하게 사용됐다. 그중에서도 견섬유의 장점을 최대 활용한 직물은 각종 단(緞) 직물이다. 수자직(경사나 위사가 직물 표면에 많이 나타나게 하는 조직)으로 제직하여 무늬가 없으면서도 유려한 광택을 지니고 있는 공단(貢緞), 여기에 다양한 무늬를 넣어 제직한 운문단(雲紋緞), 화문단(花紋緞), 보문단(寶紋緞) 등의 아름다운 비단 직물들은 예나 지금이나 고급직물이었으며, 만들어진 지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많은 유물이 화려한 문양과 부드러운 광택을 자랑한다.

예로부터 사용되어온 전통직물인 면, 마, 견직물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성과 심미성은 최근 학술적인 필요 때문에 재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가의 중국산 삼베 포가 재현할 수 없는 독특한 청량감을 가진 안동포나 비단만큼 결이 고운 한산 세모시, 국내에서 수직으로 생산된 무명 등과 같은 직물은 예전만큼 흔히 보이지 않는다. 값싼 수입품이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전통직물을 재현할 수 있는 인력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현재 한산모시와 안동삼베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산모시는 2011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한산모시짜기>로 등재되었으며 문화 콘텐츠로 개발해 지역축제로까지 발전된 좋은 사례이다.

전통문화란 창의적으로 계승하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다. 현재 박물관에 전시된 전통직물로 만든 복식류 유물들은 유기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스스로 소멸하여 없어져 버린다. 우리의 후손들은 사진으로만 그 화려했던 흔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채취해 실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실로 다양한 직물을 제직하는 전통이 지켜지기를 기대한다.

 

글‧배순화(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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