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글 읊던 소리에 문화와 웃음을 더하다
- 작성일
- 2017-07-04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1531
상상 그 이상의 체험으로 가득한 월봉서원
문화재청은 조선시대 지방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와 ‘서원’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인문정신을 계승해 이를 현대적으로 재창조하기 위한 ‘살아있는 향교·서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부터 시작한 대표적인 지역 문화재 활용 방안 중 하나다. 올해는 전국 87개의 사업이 선정돼, 굳게 닫혀 있던 향교와 서원을 사람들의 생기 넘치는 이야기로 가득 채우고 있다(상세 내용은 문화재청 누리집 open.cha.go.kr 참조). 그중에서도 광주광역시 광산구 너브실 마을에 위치한 월봉서원의 프로그램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문화재청 우수사업으로 인정받으며 ‘명예의 전당’등재의 영예를 안았다.
월봉서원에 대한 명성이 자자한 터라 학교 단위나 지역 문화공동체의 단체 관람도 많지만, 체험 행사가 있을 때면 개인적으로 이곳을 찾는 발길만 평균 50여 명에 이를 정도다.
월봉서원의 프로그램은 이색적인 방식으로 역사를 전달하고 있다. 서원과 조선전기 문신인 기대승 선생에 대한 정신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놀이와 연극을 접목했으며, 수백 년 전 선비들이 했을 인문학적 연구를 따라 ‘철학’을 배우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또한, 기업과 기관을 위한 인문학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원을 찾은 누구나 유생복과 탁본 등을 자유롭게 체험해볼 수 있다.
70여 명의 초등학생을 이끌고 월봉서원을 방문한 지역 사회단체 ‘꿈과 도전’의 차유미 선생은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과 마주하고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기획된 ‘꼬마철학자 상상학교’가 인상적이네요. 놀이를 하면서 희로애락의 특징을 깨닫고, 자신이 어떨때 슬프고 화가 나는지 등을 토론하는 방식이 조선시대 선비들도 이렇게 철학을 공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합니다”라며 월봉서원의 색다른 프로그램에 대해 만족감을 표했다.
서원에서 노니는 아이들의 풍경도 각양각색이다. 월봉서원은 두 번째 와본 거라며 기대승 선생의 이름을 아는 체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사당 빙월당(氷月當)에서 만든 콩주머니와 탁본, 서원 모양 페이퍼아트로 서로 자기 것이 멋지다며 자랑이 한창인 무리도 눈에 띈다.
* 사단: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칠정: 예기에 나오는 사람이 갖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곧고 청렴한 고봉 기대승 선생의 선비정신을 기리며
백우산의 너른 품에 안겨 있는 월봉서원. 이곳은 성리학의 대가이자 이황 선생과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8년간 서신을 주고받은 기대승 선생의 정신을 기리고 있는 장소이다.
너브실 마을 초입에서 월봉서원을 향해 가는 길목부터 장관이다. 낮은 토담이 정겹고, 시원한 대나무 숲 덕분에 더위도 쉬이 잊게 만든다. 5분여간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면 월봉서원이 나타나는데 그 중앙에는 강당 빙월당이 있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인 빙월당의 칸마다 만들기 체험이 마련되어 있다. 아이들은 고사리손으로 바느질도 해보고, 빙월당의 편액과 민화 속 호랑이를 탁본할 수 있으며, 툇마루에 앉아 구연동화를 듣기도 한다.
한데 빙월당이란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이 명칭은 정조가 고봉 선생을 빙심설월(氷心雪月)같다해서 비롯했다는 설과 효종이 1655년에 내린 치제문에 “그대의 정신은 잘 단련된 금과 같고 윤택한 옥과 같으며, 물속의 달처럼 맑고 투명한 병과 같도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다.
월봉서원에 왔다면 고봉 선생과 퇴계 이황 선생이 8년 동안 나눈 서신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30대 젊은 선비인 고봉과 예순을 바라보던 노학자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서신으로 철학적 논쟁을 펼쳤다. 한 번의 짧은 만남 후 두 사람이 주고받게 된 편지는 후대 성리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논쟁은 물음과 수용, 다시 이해와 물음으로 이어졌다. 서신이 시작된 배경과 두 사람이 논했던 사단칠정에 대한 내용을 마당극으로 각색한 ‘드라마 판타지아’는 특히나 청소년들에게 호응이 높은 프로그램 중 하나다. 아이들이 극 속으로 뛰어들어 서신의 배달부 역할도 하고, 상황극과 보물찾기 식의 놀이로 사단칠정에 대해 알아보며 고봉 선생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선비의 풍류
한참을 뛰어놀던 아이들이 허기를 채우기 위해 ‘선비의 부엌’으로 향한다. 무더위 속에서도 큰 솥 앞에서 열심히 국수를 끓여내는 할머님들. 마치 시골집에 온 것처럼 정겹고 따뜻한 풍경이다. 소박하면서도 넉넉히 담긴 국수 한 그릇에 마음마저 배불러지는 오후,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린다.
퓨전재즈 ‘더블루 아이즈’의 공연이 시작된 것. 동서양의 조합을 선보이는 악기들의 콜라보가 신선하다. 어른과 아이 모두 즐길 수 있도록 동요나 드라마 주제곡을 선보이며 호응을 이끄는 공연팀. 고즈넉한 서원에 흐르는 재즈 선율이 꽤 잘 어울린다. 저 멀리 산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플루트와 아쟁이 합창을 선보이자 사람들은 저마다의 풍류를 즐긴다. 몇 가지 손동작을 함께 하는 입체적 감상법이 꼬마들의 몰입을 돕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월봉서원을 떠나는 발길이라면 한옥으로 지어놓은 다시(茶詩) 카페에 머무는 것도 좋겠다. 너브실 마을에서 난재료로 만든 제철 수제차를 맛볼 수 있으며, 재즈나 클래식 등의 버스킹 공연도 감상할 수 있다. 자연과 풍류, 그리고 다례(茶禮)가 있는 그야말로 선비문화를 만끽할 수 있는 반가운 공간이다.
글‧최은서 사진‧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