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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천년이 지난들 자연의 광채가 변할 리야
작성일
2017-05-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375

천년이 지난들 자연의 광채가 변할 리야 - 인고의 시간 견디고 빛 발하는 ‘자개’ 바다에서 난 조개가 박힌 자리에 산에서 난 옻이 내려앉았다. 나전칠기(螺鈿漆器)는 그렇게 장인의 손끝에서 핀 보석이다. 빛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나전칠기. 광채가 나되, 눈이 부시지 않은 오색 빛깔의 조화는 영롱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 선생을 찾아 바다에 살던 조개의 환골탈태, 전통자개의 특성과 매력에 대해 들어봤다.

01. 그린 모양 그대로 실톱으로 자개를 자르는 공정 02. 섬세하게 잘라낸 나뭇가지 모양의 나전

나전 명장, 최고의 자개를 말하다

나전칠기는 칠공예 장식기법의 하나로, 조개껍데기를 박패로 만들어서 기물의 표면에 감입(嵌入)하는 공예를 나전(螺鈿)이라 통칭한다. 자개는 나전의 순우리말이다. 자개를 나무에 직접 새겨 상감(象嵌)할 때도 있지만, 대개 나무 바탕에 삼베나 모시를 바르고 칠을 한 다음 자개를 붙이고 연마하기 때문에, 통상 나전에는 칠기라는 말이 붙는다. 좋은 나전칠기가 나오려면 솜씨 있는 목수와 칠장인, 나전 장인이 삼위일체를 이뤄야 한다.

강원도 원주의 ‘전통공예연구소’는 반백 년 넘게 나전칠기 외길을 걸어온 이형만(72) 나전장이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공간이다. 공방 창가에 앉아 햇살에 전복껍데기를 이리저리 비춰보던 이형만 선생은 자개의 매력에 대해 ‘오색영롱한 자연의 색을 품고 있어 일반인들도 호감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개껍데기가 뿜어내는 색감은 화려하면서도 은은합니다. 시간과 빛의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가 풍겨 나오지요. 자개 문양을 표현할 때, 빛이 화려한 자개만 붙이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면서도 단조로운 것까지 다양하게 조화를 표현하는 것이 기술입니다.”

조개껍데기가 뿜어내는 색감은 화려하면서도 은은합니다. 시간과 빛의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가 풍겨 나오지요.

자개로 문양을 만드는 방법에는 자개를 실처럼 자른 상사(詳絲)를 이용해 선 위주의 기하학적 문양을 표현하는 ‘끊음질’, 자개를 문양 그대로 오려낸 뒤 실톱이나 줄로 다듬어 면 위주의 사실적 문양을 표현하는 ‘줄음질’이 있다. 줄음질의 대가인 이형만 선생은 경남 통영에서 태어났다. 남해안의 물 맑은 통영은 자개의 본고장이다.

“제 고향에서 전복 껍데기는 지천으로 널린 흔한 것이었어요. 자개는 자연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재료였는데, 이제는 해상 오염 때문에 점차 수입량이 늘고 있지요. 수입산은 화려하기는 해도 우리나라 자개처럼 영롱하지 않고 단색이라서 마땅히 쓸 게 없어요. 오색 빛으로 뽐을 내는 국산 조가비 크기가 점점 작아져 쓸 면적이 별로 없고요.”

나전칠기 재료로는 전복, 소라, 진주조개 껍데기가 주로 많이 쓰이는데 마음에 드는 질 좋은 국산 자개를 구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는 까닭에 이 명장은 “좋은 자개가 보이면 빚을 내서라도 무조건 사들인다”고 귀띔했다.

“특히 남해안과 제주도 근해에서 나는 것이 가장 곱고 질이 좋아요. 오색 빛을 내는 전복껍데기의 경우 현재 남해 연근해에서 생산됩니다. 그나마도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이죠. 양식 전복에서 나는 자개는 자연산만큼 빛깔이 곱지 않아 자연산을 선호하지만, 점점 고갈돼 가고 있으니까요. 양식 전복은 보통 3년 정도 키워내다 파는데, 나전 재료로 쓰려면 최소 5년 이상 돼야 가공할 수 있는 두께가 나오기 때문에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색영롱한 광채를 피워내는 손

실톱으로 자개를 자르고, 칠긁기 칼로 옻칠을 조심스레 벗겨내는 소리가 공방의 여백을 울린다. 우리나라 전통 자개의 기본인 전복패(색패)는 빛에 따라 다양한 색을 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과 일본이 주산지인 청패는 청색과 푸른색이 물결 모양으로 조화를 이룬다. 바닥이 고르지 못해 넓은 문양을 작업하기 어렵지만, 아롱진 물결의 빛이 은은하다.

자개는 자연적 색채효과가 매우 뛰어난 재료다. 때문에 명도대비 효과로 자개문양을 극대화하기 위해 바탕색은 주로 흑칠을 사용했다.

우리 민족이 자개를 장식에 사용한 흔적은 일찍이 통일신라시대 유물에서 발견되고 있다.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시대에는 경전을 넣는 함이 나전으로 제작됐을 만큼 선조들의 나전칠기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고려시대 나전칠기는 흑칠을 입힌 기물에 나전, 대모(바다거북 등딱지)를 감입한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전복패를 종잇장처럼 얇게 갈아 사용한 ‘박패법(薄貝法)’, 대모를 얇게 갈아 그 뒷면에 색을 칠하거나 금박을 입혀 표면에 비쳐 보이도록 하는 ‘복채법(伏彩法)’은 고려 나전칠기의 중요한 기법이다.

“조선 중기까지는 차를 달인 물이나 식초에 자개를 담가 연질이 되게 한 다음, 가위와 바늘, 송곳 같은 도구를 이용해 자개 문양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실톱이 보급되면서 크고 작은 문양은 물론이고 세밀한 곡선까지 능률적으로 줄음질을 할 수 있게 되었지요.”

01_조개껍데기로 완성한 나전칠기 작품 02_재료의 빛깔을 확인하는 이형만 나전장 03_각각의 다른 모양과 빛깔을 가진 나전의 재료들

어둠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전통

옻칠의 검은 바탕을 여백 삼아 넉넉한 자연을 문지르고 다듬는다. 칠순이 넘은 나이지만 이형만 나전장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에 쏟는다. 무려 45가지 공정을 거쳐야 비로소 발광(發光)하는 나전칠기는 인고의 산물이다. 빠르면 6개월, 보통의 경우 1년 이상의 제작 기간이 소요되는데, 장롱같이 손이 많이 가는 대작은 2~3년이 걸리는 지난한 작업이다.

공방 한쪽에서 현란한 빛을 내뿜는 자개농이 시선을 붙잡는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오묘한 빛깔에 학이 날갯짓하고, 사슴이 놀라 귀를 쫑긋거리기도 한다. 농의 전면을 뒤덮은 휘황찬란한 자개 장식이 방을 환히 밝힐 정도로 화려하다.

“옛날 우리 어머니들은 바쁜 일상 속에도 틈날 때마다 자개장을 닦아 윤을 냈어요. 소박한 세간 가운데서 작은 자개함이라도 하나 들여놓으면 이내 방 안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빛으로 가득 차곤 했지요.”

자개장이 부의 상징이 되던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제는 뒷방 신세로 물러나 쓸쓸한 뒤안길을 맞았다. 이형만 선생도 어느덧 나전칠기 분야에서 가장 연장자가 됐다.

“예전에는 자개를 가능한 많이 사용해 화려함을 강조했는데, 지금은 자개를 줄여 여백을 살리고 있어요. 검은 바탕이라고 해서 단순히 텅 빈 공간이 아니에요. 자개가 품고 있는 자연의 광채가 세월과 함께 점점 더 영롱하게 빛을 발하게 해야죠.”

과거의 영화를 뒤로하고 새 빛을 머금은 자개농을 천으로 닦아내자, 숨죽이고 있던 자개들이 다시금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시간과 자연 그리고 장인이 함께 빚어낸 전통은 그렇게 부단히 살아 숨 쉬고 있다.

 

글‧윤진아 사진‧안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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