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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해도 - 아름다운 물속 풍경화에 담긴 삶의 이야기
작성일
2017-05-3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160

 어해도 - 아름다운 물속 풍경화에 담긴 삶의 이야기 물고기나 게와 같은 어패류를 그린 그림을 어해도라 한다. 이 모티프는 어패류를 정확히 기록하고자 한 박물적인 사실성과 더불어 각 소재들이 상징하고 있는 길상적 의미란 양면적 특색을 지닌다. 어해도는 물고기, 게, 조개 등의 어류와 더불어 수생 및 육지의 식물이 함께 등장하기에, ‘물속의 풍경화’라 부를 수 있다. 이번 특집 주제인 ‘조개’가 담긴 어해도가 등장하게 된 배경과 작품마다 담고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자산어보를 비롯한 박물학적 높은 관심

조선왕조가 천주교도를 박해한 신유박해(1801년) 때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경북 포항의 장기로 귀양을 갔다. 그의 셋째 형인 정약종은 처형됐고, 그의 둘째 형인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전남 흑산도로 보내졌다. 정약전은 그곳에 머물며 바닷물고기의 생태를 관찰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지었다. 그는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물고기의 언어를 인간의 것으로 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유배 생활에서 몰려오는 외로움을 잊기 위한 방편도 있지만, 물고기란 창구를 통해 세상을 들여다보고자 한 실학사상이 근본 동기가 됐을 것이다.

큰놈은 지름이 두 치 정도이고 껍질이 매우 엷으며 가로, 세로로 미세한 무늬가 있어 가느다란 세포(細布)와 비슷하다. 양 볼이 다른 것에 비해 높게 튀어나와 있을 뿐 아니라 살도 풍부하다. 빛은 희거나 혹은 청흑색이다. 맛이 좋다. - 정약전의 『자산어보』 中 바지락에 대한 설명 -

자산어보에는 물고기 외에도 게, 조개, 말미잘, 상어, 해조류 등 흑산도 근해에 서식하는 2백 종이 넘는 해양생물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다뤘다. 이 무렵 궁중에서는 물고기의 언어를 화폭에 담은 어해도(魚蟹圖)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어해도란 말 그대로 물고기와 게를 그린 그림이지만, 실제로는 수중에 사는 모든 생물을 소재로 삼는다. 해물잡탕에 들어가는 해산물을 떠올리면 된다. 이 시기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기물 및 동식물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중국에서는 『삼재도회(三才圖會)』, 『고급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등 백과사전류 책에서 어해도에 관한 정보를 상세히 다뤘고, 일본에서는 어보를 비롯한 동식물의 도보가 제작되었다. 유난히 박물학적 관심이 높아졌던 시기가 17〜19세기다.

극적이고 사실적인 장한종의 어해도

회화에서, 정약전과 같은 위업을 달성한 이가 장한종(張漢宗, 1768~1815)이다. 그는 어해도 분야에 우뚝 선 화원이다. 풍속화와 진경산수화처럼 사실적인 화풍이 대세를 이뤘던 시기, 그의 어해도 역시 시대 흐름을 따랐다. 유재건(劉在建, 1793~1880)이 지은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를 보면, 그가 어떻게 어해도를 그렸는지 자세하게 나온다.

“장한종은 물고기와 게를 잘 그렸다. 젊었을 때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을 사서 그 비늘과 등껍질을 자세히 관찰하고 본떠 그렸다. 매양 그림이 완성되면 사람들이 그 핍진함(실물과 아주 비슷함)에 찬탄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유재건의 『이향견문록』 中 -

장한종은 어물을 꼼꼼히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는 비단 장한종, 그리고 어해도에 국한된 특색은 아니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산수화, 풍속화, 화조화 등 전 장르에 걸쳐, 관념에 치우친 사고에서 탈피해 자연에 관심을 두고 물상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풍조가 나타났다 . 그의 대표 작품 <어해도화첩>(그림1) 가운데 조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그림을 보면 장한종이 조개를 얼마나 관찰하고 그렸는지 실감난다. 화첩이 아니라 보다 큰 병풍 그림을 보면, 사실적인 생태에만 주목하지 않고 복숭아나무나 버드나무 등 산수화나 화조화의 배경을 적극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쏘가리와 붕어·미꾸라지와 같은 민물고기, 문어·자라·조개, 소라·꽃게·조개 등 끼리끼리 모아 놓았다. 그는 사실성과 서정성이란 두 마리의 토끼를 적절하게 조화시켜 어해도의 세계를 풍요롭게 가꿔나갔다.

02_물고기들의 활기찬 모습을 화려한 꽃과 나무의 배경 속에 담았다. 장식성이 강한 어해도다. <어락도>, 종이에 채색, 94.8×320.5cm ⓒ삼성미술관 리움 03_<어해도> 게와 새우로 이뤄진 간단한 짜임의 그림이지만, 게와 새우의 몸짓으로 보아 이 둘 사이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오고간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28×33cm ⓒ조선민화박물관

길상적이고 해학적인 어해도

물고기가 자유롭게 노니는 즐거움을 그린 <어락도(魚樂圖)>(그림2)가 있다. 장자와 혜자가 주고받는 대화에서 따온 제목이다. 너비 3m가 넘는 10폭을 한 화면으로 사용하여 잉어, 쏘가리, 숭어, 메기 등 여러 물고기들이 활기차게 노는 모습을 표현했다. 장한종이 추구했던 사실성과 서정성을 웅건하게 확장했다. 매화, 해당화, 갈대, 모란, 연꽃과 오리, 버드나무, 수초 등 화려하고 풍요로운 꽃과 나무를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어해가 중심이면서 화조화의 아름다움도 함께 맛보게 했다. 물고기들은 대부분 짝을 지어 움직이고 있는데 부부 금실을 염원하는 현실적인 상징을 강조한 것이다.

궁중에서 유행한 어해도가 19세기 후반 민간으로 옮겨지면서 오히려 더 성대한 불꽃을 태웠다. 민화에서는 사실성보다 부부금실이나 다산 같은 가정의 평안을 염원하는 길상적이고 현실적인 소망을 더 중시했다. 따라서 <어락도>처럼 물고기들이 쌍으로 등장해 사이좋게 유희를 즐기거나 서로 교합하는 장면이 유난히 많아진다. 뿐만 아니라 물고기들이 팔팔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그려 그 꿈틀대는 생명력을 닮기를 기원했다. 서민들이 어해도를 통해서 무엇을 바라는지 분명해진다.

민화 <쏘가리> 역시 사실적인 묘사나 서정적인 은유가 뛰어난 장한종의 작품과는 달리 급제를 기원하는 뜻과 같은 상징성에 더 방점을 둔다. 쏘가리의 한자 표기인 ‘궐어(鱖魚)’ 중 ‘궐(鱖)’자가‘궁궐(宮闕)’의 ‘궐(闕)’자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즉 쏘가리가 입궐(入闕), 다시 말하면 출세를 상징하는 것이다.

<어해도>에 등장하는 새우도 마찬가지다. 등이 굽은 모양 때문에 바다의 노인이란 뜻의 해로(海老)가 되고, 해로는 다시 부부가 함께 늙어간다는 해로(偕老)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게는 한자로 해(蟹)라고 하며, 게의 딱딱한 껍질을 등갑이라고 불러 1등이라는 의미를 부여해 시험 합격의 의미를 담았다.

조개는 그 생김새가 여근(女根)을 닮았다 하여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자로 조개가 합(蛤)이기 때문에 궁궐의 문을 뜻하는 합(閤)과 그 음이 같아 높은 지위를 가리킨다. 백합조개는 대합(大蛤)이라고 하는데, 크게 어울린다는 대합(大合)의 의미로도 표현한다. 민화 <문자도>에서는 조개가 새우와 함께 그려져서 새우의 하(蝦)와 조개의 합(蛤)이 화합(和合)을 의미하게 된다.

민화 <어해도>(그림3)의 변신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장한종의 그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해학적인 의미로 재해석되었다. 사람처럼 의인화된 어류들의 표정을 보면, 웃음을 머금게 한다. 새우의 다리와 더듬이가 어느새 사람의 팔다리로 변해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고, 곁에 있는 게들도 그 흥겨움에 딱딱한 몸을 들썩인다. 겁을 먹고 무리 지어 도망가는 송사리 떼를 앞뒤로 가로막은 물고기들이 한 번에 빨아들일 기세로 큰 입을 벌리기도 하여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을 나타내기도 한다. 여기에는 우울함을 지우려는 정약전의 필사적인 노력이나 물상을 자연스럽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장한종의 진지함은 없다. 대신 세상을 밝게 보고 행복을 추구하는 유쾌함과 명랑함이 화면 가득히 묻어난다.

 

글‧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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