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모든 생명을 귀히 여기는 지혜
- 작성일
- 2017-05-31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1087
인간은 동물과 함께 벌레라는 조상에서 시작하여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 동물원의 한식구이다. 티끌도 인간과 친족 관계다. 그러나 인간은 티끌에서 작은 벌레를 아우르는 모든 생명과 함께 인류애를 나누기 어렵고 티끌을 자식처럼 사랑할 수는 없다. 그 불가능함을 아는 인간은 애초에 모든 생명을 아우르는 사랑을 함부로 입에 담지 못한다. 그렇다고 저 티끌과 벌레, 온갖 동물들이 나의 친족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같이 살아야 하듯, 사람은 한 지구에서 태어난 벌레 형제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러한 고민을 하는 유학자들은 자신들 역시 벌레에서 시작된 하나의 짐승임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인간이 ‘남의 살을 먹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어떤 정당한 답변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온갖 만물과 인간이 결국은 한 가족처럼 동일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동물들을 관찰해보면 이 짐승들은 인간과 다를 바 없다. 도둑질을 하기 위해 남의 눈치를 보는 쇠똥구리, 형제자매를 극진히 돌보는 닭, 군중심리에 민감해 남들 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 하는 새, 서로 협동해서 달걀을 훔치는 쥐, 온몸에 진흙을 발라 나무토막으로 위장하여 먹이를 잡는 족제비. 이 짐승들은 인간처럼 욕심도 부리지만 인간처럼 희생하기도 하고, 인간처럼 똑똑하기도 하지만 인간처럼 바보 같은 실수도 한다.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보다는 동물과 인간을 관통하는 동일한 작동원리를 찾는 것에서 이 세상의 무궁무진함을 엿볼 수 있다.
조선말 학자 최한기는 ‘습성’에 대한 이야기로 만물 친족설을 언급한 바 있다. 최한기는 나와 다른 혐오스러운 습성을 가졌다고 나보다 작고 약한 짐승, 나와는 다른 의견을 가진 타인에게 쉽게 횡포와 폭력을 저지르는 이유는 대개 아무 반추 없이 좋고 싫음에 기계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그들은 그런 습성에 중독된 사람들이라고 한다.
짐승, 그리고 짐승 같은 인간들이라는 낙인을 찍고 폭력을 저지르는 습성을 깨려면 모든 만물이 그저 한 뿌리에서 시작되어 같은 원리로 살아갈 뿐이라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조선의 실학자들은 이미 만물 친족설을 바탕으로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 바 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습관을 마음의 표식이자 독특한 지문으로 추앙하기 때문에 더욱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몸이 변하면 습관과 거처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 다양한 짐승들이 그들의 몸으로 겪는 추측과 나의 몸이 겪은 추측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은 우리 모두 같은 뿌리에서 살아간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이에 대해 쓴 정약용의 시로 글을 맺고자 한다.
글‧최지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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