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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신비롭고 아름다운 창덕궁 후원 - 2007 세계문화유산 답사기 공모전 은상 수상작 -
작성일
2007-08-02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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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후원은 아름다운 여인 같다. 잠깐 만나고 돌아서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한 번 보고 자꾸 봐도 또 보고 싶은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여인. 이 아름다운 여인을 ‘알현’하려는 이가 워낙 많아 인터넷을 통한 주말 예약은 이미 한참 전에 매진이었다. 
 뜨거운 날씨 속에서 30분 동안 내내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현장 판매 10매 중 아슬아슬하게 9번째로 표를 구입하였다. ‘다행이다’, ‘감사합니다’를 마음속으로 연신 외쳐댔다. 창덕궁의 후원은 왕실 자손 이외에는 출입을 금했다고 하여 ‘금원’이라고까지 부르기도 했다는데, 쇤네가 들어가 볼 수 있다니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이 그깟 대수인가. 그저 감사할 뿐이다.

창덕궁의 후원 지대는 약 9만 평에 이르는데 이 중 인공적인 요소, 즉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 낸 것들은 1% 밖에 되지 않는단다.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 1% 밖에 되지 않는다면 뭐 볼 것이 있겠나 생각할 법도 하지만, 막상 후원에 들어서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물론, 후원에는 화려함과 웅장함으로 치장된 멋은 없다. 하지만 소박하고 기품 있게 꾸며진 정자들을 볼 때면 어쩌면 이렇게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지어졌는지 그 정자들이 거기에 있어 경치를 해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어울림을 지녔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주변 자연환경과의 완벽한 조화와 배치의 탁월함으로 인정받은 창덕궁은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조상들의 지혜와 아름다움이 담긴 문화재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후원 지대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곳은 부용지 일대이다. 야트막한 언덕을 하나 내려가면 후원의 초입부인 부용지와 부용정이 보인다. 네모진 연못에 떠있는 동그란 섬, 두 다리를 담그고 있는 날렵한 정자와 함께 초여름을 만나 연못 위에 핀 수련이라도 본다면 누구라도 감탄이 절로 나올 법한 풍경이다. 버금 아亞자 같기도 하고 열 십十자 같기도 한 부용정은 이름 그대로 연못에 핀 한 송이 연꽃을 닮았다. 부용정은 또 두 다리를 연못에 담글 수 있어 임금님께서 낚시도 하시고 시도 지으셨다. 신하들과 시 짓기 놀이를 하시다가 시를 시간 내에 못 지으면 가운데 있는 섬으로 유배를 보내는 놀이도 하셨다고 한다. 연못 위에 떠 있는 듯한 부용정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니 시가 청산유수로 흘러나올 듯해 유배당한 이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가운데 동그란 섬이 있는 연못의 이름은 ‘부용지’다. 연못은 네모진 모양으로 그 가운데엔 동그란 섬을 두었는데, 이것은 유교적 우주관인 ‘천원지방 -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라는 원리에 따라 지어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바로 사람이 더해지면 바로 ‘천지인’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게 된다.
물론, 후원의 초입부에는 이렇듯 아름다운 절경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왕립도서관인 규장각과 과거시험을 치르기도 했던 영화당 앞의 넓은 뜰인 춘당대가 있어 학문과 인재 양성의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춘당대에서 과거시험을 치러 급제한 자는 어수문을 지나 규장각에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부용지의 한쪽 귀퉁이에는 잉어가, 그리고 다른 한쪽 귀퉁이에는 이무기가 새겨져 있다. 이는 바로 ‘등용문’을 의미하는 것이며, 어수문의 의미는 이러한 임금과 신하의 관계를 이르는 것이다. 규장각의 2층은 도서의 열람을 위한 공간으로 ‘주합루’라고 불렸다. 특히, 주합루라는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라고 한다. 정조는 ‘역사를 알아야 현재를 바로 볼 수 있다’고 하여 중국에서 많은 책을 들여오고, 이 책들을 볼 수 있는 도서관을 여러 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건물들이 사라지고 없어 매우 안타깝다.
부용지 지대를 지나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돌로 만들어진 문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문의 위쪽에는 한자 전서체로 ‘불로문’이라고 쓰여 있다. 옛날 사람들은 돌은 늙지 않고 변함이 없다 하여 돌을 사랑했다 한다. 이 불로문에는 하나의 통돌을 깎아 임금님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불로문을 지나면 네모진 연못과 작은 정자 하나를 만나게 된다. 이 정자의 이름은 ‘애련정’으로, 연꽃을 사랑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이름은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따온 것인데,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해서 군자의 꽃이라 여겼다고 한다. 돌과 꽃 같이, 너무 흔해서 무심히 지나칠 수도 있는 자그맣고 사소한 것들에서 어쩌면 이렇게 깨끗한 정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닮고자 했는지, 옛 사람들이 얼마나 애정 어린 눈과 맑은 정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배움을 찾고자 했는지 새삼 놀랍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을 늘 가까이 하고 만물에서 두루 깨달음을 얻고자 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애련지를 지나 후원의 좀 더 깊숙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관람정과 존덕정, 폄우사, 승재정이 어우러져 있다. 존덕정은 이중 겹지붕에 천장에는 두 마리의 용이 그려져 있어 그 일대 정자 중에서도 가장 지체가 높은 정자임을 알 수 있다. 존덕정의 계판에는 정조의 시가 새겨져 있다. ‘물 위에 만 개의 달이 떠 있어도 실제 달은 하나이다’ 라는 내용인데 만 백성을 고루 비추는 인자한 임금님의 사랑, 또는 절대 왕권에 대한 다짐과 강조, 이 두 가지 의미로 풀이가 가능하다. 이런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도 백성 생각, 정치 생각에 잠겼을 임금님을 생각하니, 임금님이 한시라도 마음 편할 날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이라는 속담이 있다. 천석꾼은커녕 내 한 몸 편히 먹고 자는 걱정으로 족한 나는 신록으로 푸르른 후원의 절경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소유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하니, 내가 이 아름다운 후원의 주인이라도 된 양 괜히 마음이 호기로워졌다.
후원의 가장 깊숙한 곳인 옥류천 일대는 임금님도 만 가지 근심, 걱정을 잊고 자연 속에서 시도 짓고 술도 마시며 즐기셨을 법한 곳이다. 옥류천은 커다란 돌을 반으로 잘라 거기에 ‘옥류천’이라 새기고, 아래쪽에는 굽이치는 물길을 만들어 술잔을 띄워 시를 짓는 놀이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곡류를 지난 물은 아래쪽 폭포로 흘러 떨어지게 만들었는데 이 자그마한 폭포를 보고 지은 시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폭포의 물줄기를 보며, 그 자그마한 폭포에서 삼백 척의 폭포와 무지개, 우레 소리를 떠올린 옛 사람들의 풍류와 멋이 지금 시대에는 이어지지 않아 아쉬움을 느꼈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 조상들의 미적 감각이 얼마나 빼어난 것인지를 보여준다. 산세를 해치지 않고 그대로 안긴 듯한 건물들의 구조와 은은하고 은근하게 후원 속에 숨겨져 있는 정자들을 통해 자연의 조화와 균형, 규칙을 최대로 활용했던 조상들의 심미안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았던 서양의 자연관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우리는 자연과 ‘더불어’, ‘함께 살기’를 중시하며 자연과의 조화를 중히 여겼다. ‘자연을 벗 삼는다’라는 표현은 이러한 자연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건축과 조경은 웅장함으로 억압하지 않고 화려함으로 어지럽히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인공미를 최소화하고 자연미를 최대화 하는 세련된 감각을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세계화’라는 말처럼 요즘 많이 접하는 말도 없는 것 같다. 세계화의 의미가 다른 나라 문화의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니라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를 널리 전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 아름다운 창덕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무척 다행이다. 우리 전통의 자연스러운 멋과 미적 감각을 향기롭게 뿜어내고 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 여인을, 나 혼자 보기 너무 아까워 두루 보여주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 글·사진 : 양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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