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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두운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비추었던 한줄기 빛
작성일
2006-08-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963

어두운 일제강점기에 조선을 비추었던 한줄기 빛 독립운동의 산실, 조양회관 ''조선의 빛이 되어라.''라는 뜻을 지닌 ''조양회관朝陽會館''은 1922년 독립운동가 서상일과 대구구락부회원에 의해 지어졌다. 순수한 민족 자본과 기술로 지어진 이곳에서 대구의 민족지도자들은 민중과 청소년들에게 독립정신을 가르치고 민족계몽운동 및 신교육운동을 펼쳤다. 현재 광복회 대구 경북 연합지부 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곳은, 항일독립운동의 산실이라는 역사적 가치는 물론 건축사적으로도 귀중한 유산으로 인정되어 등록문화재 제4호로 등록되었다. 8.15 광복절을 맞아 대구 지역 독립운동의 산실로 자리했던 조양회관을 조명해 본다.

조양회관
<조양회관>
조선의 빛, 조양회관의 건립 조양회관은 동암 서상일의 주동으로 1922년 4월 착공되어 7개월 만인 그 해 10월 대구시 중구 대신동 1번지 달성공원 입구, 옛 원화여고 자리에 준공되었다. 조양회관이 지어진 내력은 이러하다. 3.1운동 이후 일제가 식민지 정책을 무단정치에서 문화정치로 전환하자, 중국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였던 서상일은 민중들이 일제에 회유당하여 민족의식을 잃을까 염려하여 대구 지역 독립운동가의 뜻을 모아 달성공원 앞에 교육회관을 건립하게 된다. 서상일 자신이 몸담고 있던 대구구락부 회원들이 각자 일정액씩 건축비용을 분담하기로 하고, 부지는 서상일이 땅 500평을 제공하였다. 건물설계는 당시 대구에서 건축업을 하던 윤학기가 했고 건축공사는 벽돌공장을 경영하던 백남채의 책임하에 중국인 기술자들이 담당하였다. 그러나 일본 고등계의 집요한 방해로 말미암아 건축비를 분담하기로 약속했던 회원들이 분담금을 한 푼도 내지 않거나 일부만 내어 결국 서상일 혼자 건축비를 떠맡게 되었다. 서상일은 경북 성주에 있던 논과 대명동 산대못을 팔아 건축비를 충당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7개월 만에 건물을 완공했다. 조양회관은 건축비로 당시 4만 3,080원 50전이 들어간 대역사였으며, 회관에 사용된 목재는 압록강 근처에서 생산된 낙엽송을 사용할 정도로 서상일은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이 회관은 준공 후 대구구락부, 대구여자청년회, 대구운동협회, 농촌봉사단체 등이 입주하여 민족계몽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하였다. 밤이면 각종 청년단체에서 주재한 야학이 열려 향학의 열기가 뜨거웠으며 우국충정에 불타는 청년들이 밤낮없이 모여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1930년대에 들면서 조양회관은 직영하던 사진실과 인쇄시설도 남에게 임대하고 도서실과 대강당을 통한 사회계몽 활동에만 주력했다. 1940년대엔 일제의 말살 정책으로 건물 전체의 기능은 물론 동아일보 폐간에 따른 동아일보 지사의 폐업을 마지막으로 정지되고 말았다. 그 후 일본 군대가 주둔하며 보급부대로 쓰였던 조양회관은 해방 후에는 서상일의 정치참여(제헌국회의원)로 한민당 사무실로, 6·25때는 유격대 병영으로 사용되다가 1953년 원화여중·고가 설립됨에 따라 교무실과 도서관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80년에 원화여중·고의 교외 이전 계획에 따라 월성 건설회사에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한때 존폐 위기를 맞기도 했다. 당시 월성건설 측은 조양회관을 헐고 그 자리에 사옥을 신축할 계획이었으나, 건물의 보존을 원하는 광복회와 시민들의 여론을 받아들여 대구시가 1억 7천 700만 원에 매입하였다. 1984년 현위치인 효목동 망우 공원 내에 이전·복원하였고, 1987년부터는 광복회에서 영구 무상 임대하여 광복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동암 서상일 선생 동상
<동암 서상일 선생 동상>
절충식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 조양회관 조양회관은 항일 독립운동 현장으로 역사적 가치에 못지않게 1920년대 건립된 건축물로서의 문화재적 가치도 인정할 만하다. 건축의 양식은 절충식 르네상스 양식으로 외벽은 화강석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쌓았으며, 창문은 오르내리기 창을 시설했다. 모든 창문은 화강석으로 다듬은 인방석引枋石을 연속으로 설치하여 수평성을 강조했다. 정면 중앙에 현관을 돌출시켜 당시 유행하던 양풍洋風을 따랐으며, 건물의 평면은 좌우 대칭형으로 정면 좌우 양끝의 계단실 부분이 약하게 도출되고 뒷면 중앙부가 뒤로 돌출해 있어 전체적으로 십자十字형을 띠고 있다. 정면 중앙의 돌출된 현관은 4개의 사각 돌기둥을 세워 평지붕을 올린 형태이며, 돌기둥의 머리에는 주두柱頭를 간략히 표현하였다. 기둥 사이에는 반원형 아치를 틀어 장식했다. 현관 상부의 지붕에는 작은 삼각형 박공을 만들어 정면성을 강조했다. 1층 평면은 현관을 중심으로 십자형의 중복도를 내고, 복도에 면해 각 실을 배치했다. 2층에서 가장 중요한 강당은 대중 강연 등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독립운동 사료전시실로서의 조양회관 광복회에서는 대구시로부터 1억 2천만 원의 기금을 지원받아 1999년 4월 광복회 조양회관 내에 대구지역 최초의 대구경북독립운동 사료전시실을 개관하였다. 사료전시실에는 ‘3·1운동 당시 대구시 지역 주모자들에 대한 대구지방법원 판결문’ 등의 문서자료, ‘애국지사 김태련이 대구형무소 복역 중 쓰던 밥그릇’ 등 항일운동가들의 유품과 초상화 등 400여 점의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또한, 2층 대강당에는 사방을 둘러 애국 열사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2002년 2월 28일 등록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 4월 28일에는 조양회관을 건립한 서상일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동상이 조양회관 현관 좌측에 건립되었다. 조양회관은 지방의 한 언론인 서상일과 지역민들이 불굴의 항일독립정신으로 세워진 건물로 오늘날에도 변색하지 않는 붉은 벽돌로 남아 당시의 독립정신을 전하고 있다. 조양회관이 민족의 표상으로 영구 보존되어 길이 빛나기를 소망한다. 이항원 _ 근대문화재과 서기관 자료제공 _ 대구시청 [국민과 함께 하는 문화유산 e-야기]는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에 수록된 것으로서,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문화재에 얽힌 재미있는 숨은 이야기, 문화재 이해의 체크포인트, 문화재 지정 보수 수리 등 행정프로세스 상의 노하우가 담긴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만든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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