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 우리문화 탐방 - 영월 답사기
- 작성일
- 2005-09-30
- 작성자
- 국가유산청
- 조회수
- 3015
단종의 슬픈 넋이 서린 영월을 찾아서
‘편안히 넘어가는 곳’이란 뜻의 영월寧越은 심산유곡에 맑고 잔잔한 강을 소리없이 품고 있는 곳이자 비운의 왕 단종의 애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종의 무덤인 장릉을 비롯해서 관풍헌, 자규루, 청령포 등 단종과 관련된 역사 유적이 곳곳에 있으며, 단종의 행적에 얽힌 땅이름과 전설이 많이 전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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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로 인하여 전국이 들썩거리는 8월이 지나고 모든 일상과 자연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가을이면 발걸음은 언제나 영월을 향한다. 아직은 뜨거운 햇살과 조금은 무더운 공기가 감돌지만 이곳을 찾는 마음은 더더욱 숙연하고 무겁기만 하다. 그것은 아마도 단종임금과 김삿갓의 고된 삶이 얽힌 이야기와 동강이 앓아온 아픔 때문이리라.
영월읍 곳곳에는 단종과 관련된 유적지들이 많이 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되어 영월 청령포로 내쫓긴 채 결국에는 사약을 받고서 한 많은 16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 단종의 한과 슬픔이 서린 곳들이다.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그리며 스러져갔을까? 그저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이러한 마음을 안고서 먼저 향하는 곳은 청령포淸冷浦다. 서강의 물도리와 높은 봉우리들이 천혜의 유배지를 만들어주고 있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처연하게 아름답기만 한데, 배를 타고서 소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들어서면 음습한 기운이 맴돈다. 사람이 살기에는 부적절한 이곳에 단종은 유배되어 외롭고 고된 유형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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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살아생전 모습을 보았을 유일한 기념물은 관음송觀音松일 것이다. 집터 뒤켠 노산대로 올라가기 전에 두 갈래로 갈라지며 우뚝하게 솟은 적송 한 그루 - 단종의 처참한 생활을 보았기에 觀자를, 또 울음소리를 들었기에 音자를 붙여 이런 이름을 얻었을 거라 추측해본다. 그리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절벽 위 좁은 터가 나오니 여기가 노산대이다. 이곳에 서서 한양을 향해 그리운 마음을 띄워 보냈을 단종의 한숨과 눈물이 전해지는 듯하다. 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애처로운 마음을 안고서 단종을 호송하고 사약을 전하였다는 금부도사 왕방연이 못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었다는 시비가 있는 곳에 앉아 마음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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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공고 뒤편 산기슭 좁은 주택가를 지나면 영모전이 나오는데 긴 계단을 올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운보 김 기창 화백이 그린 단종의 영정이 걸려있다. 그에게 머루를 따다 드리고 말벗이 되어주었다는 추익한의 모습도 한쪽에 그려져 있다. 단종을 배알하고 내려오면 아래쪽에는 추익한, 정사종, 엄홍도 세 분의 영정을 모신 충렬사가 있어 충절을 익히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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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에서 내려오면 아래쪽에는 홍살문과 어도, 그리고 제를 모시는 정자각과 시종들의 위패를 모신 배식단사, 제수를 놓는 배식단, 제를 지내는 한식 때면 물이 힘차게 더 솟는다는 영천, 박충원의 비각인 낙촌비각, 엄홍도 정려각 등을 볼 수 있으며, 능 밖으로 나오면 능을 지키는 일을 맡았던 보덕사와 단종이 꿈에서 보았다던 금몽암 등이 단종의 못다한 이야기들을 전해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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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영 / 우리얼 http://uriul.or.kr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