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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문화유산 종묘,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윤리적 공간
작성일
2016-05-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442

세계문화유산 종묘,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윤리적 공간 조선왕조실록에는 나라를 가진 자들이 해야 할 일을 꼽으면서 그 첫 번째가 종묘를 만들어 조종을 봉안하고 효성과 공경을 높이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국가의 존엄성을 보이고 정령을 내는 궁궐을 세우는 것이며, 세 번째로는 안팎을 엄하게 하고 나라를 굳게 지키기위 한 성곽을 쌓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관자 목민편에는 백성을 따르게 하는 기본 이치는 귀신을 밝게 하고 산천에 제사를 올리며 종묘를 존숭하고 조상을 공경하는데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종묘는 하나의 왕조가 성립되어 당위성을 갖고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상징적 공간인 동시에 그 정점에 있는 군주의 존재 이유이다. 종묘정전

700여 년 동안 오롯이 지켜온 본분

조선왕조의 군주는 궁궐에서 그 삶을 시작하여 능묘에 육신을 묻고 종묘에 혼을 맡기게 된다. 따라서 종묘는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후 및 추존된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기 위해 가장 정제되고 장엄한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지어졌다. 현재 종묘에는 49위의 신주가 정전 19실에, 그리고 34위의 신주는 별묘인 영녕전 16실에 각각 모셔져 있으며 정전 월대 앞의 공신당에는 공신 83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이로써 종묘는 조선왕실을 이끈 주요 인물들의 혼령이 오례(五禮)의 하나인 길례(吉禮)를 통해 후손과 만나 국가의 근본이념인 효를 실천하는 공간인 동시에 왕실의 유대감과 질서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조선 초 한양으로 천도를 한 다음해 준공된 종묘 정전의 영건 시점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면 오늘의 종묘 역사는 이미 700여 년이 넘었고, 임진왜란 이후 중건 시점을 감안하더라도 400여 년을 훌쩍 뛰어넘는 장구한 시간의 흐름이 누적된 장소이다. 하지만 이처럼 오랜 풍상의 세월 속에서도 종묘는 조선왕조가 표방한 유교적 도덕관과 윤리관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지금까지도 그 자신의 본분을 오롯이 지켜왔다. 그래서 우리는 종묘에 내재된 가치를 평가하여 종묘제례악과 종묘제례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종묘 일곽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하였으며 그 가운데에서도 정전과 영녕전은 국내 유형문화재의 최고 영예인 국보와 보물로 각기 지정하여 유지, 관리해 오고 있다. 더구나 1995년에는 유네스코로부터 뛰어난 인류문화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정받아 종묘의 건축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한편, 2001년에는 제례와 제례악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됨으로써 내용과 형식이 모두 겸비된 명실상부한 유기적 실존 공간의 존재로 자리매김 하였다. 특히 소박하고 장엄한 건축공간에서 펼쳐지는 정제된 종묘제례악은 우리 고유의 음률로 왕조의 창업과 기상을 노래하고 있으며 모든 행사의 순서에 맞추어 춤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다. 이는 엄숙한 제사 의례만큼이나 장엄미가 돋보이는 종합예술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크며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남아 있는 고전음악의 하나로 평가된다.

무한 성장을 담은 목조구조의 멋

최근 종묘 외곽 일원이 정비되어 사라졌던 다리는 물론 외삼문의 기단이 제 모습을 되찾았으며 외삼문과 다리 사이의 길을 중심으로 좌우의 공간에도 식재가 되어 점차 세계유산의 명성에 걸맞는 환경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음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종로에서 새로 복원된 다리를 건너 외대문인 정문을 통과하여 종묘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망묘루, 공민왕 신당, 향대청, 재궁, 수복방, 전사청, 제정, 악공청 등의 건물이 기능에 따라 배치되어 있으며 가장 안쪽에는 종묘의 핵심 영역인 정전과 영녕전이 풍수의 혈처에 자리를 잡았다. 전체적인 배치는 지형과 좌향에 따라 비대칭적인 구성을 하고 있으나 각각의 건축물이 신도를 따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정전은 매 칸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신실 양 옆으로 각각 두 칸의 협실, 그리고 협실 양 끝에서 직각 방향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문인 신삼문에서 보면 동서 109m, 남북 69m의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 있다. 다른 일반적인 목조건축과 종묘의 건축의 차이는 단순, 반복을 통해 무한 성장할 수 있는 목조 구조의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건물 내부에 모시는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의 확장을 걸쳐 건물을 옆으로 길게 늘려나갔다.

종묘제례악 ©문화재청

영녕전 역시 신실 하나하나의 구성은 정전과 크게 다름이 없고 규모가 정전보다 작기 때문에 그 비례에 맞추어 부재의 크기를 조절 하였으나 여전히 장중함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중앙 네 칸의 신실에 시선이 집중되도록 하였다. 또한 좌우 익실 앞으로 동·서월랑이 뻗어 나와 ㄷ자 형태를 이루고 있고 박석을 덮은 상·하월대가 울타리 안마당을 가득 메우는 점도 정전과 동일하다. 그리고 초석에서부터 기둥과 익공, 판문의 형식, 벽체의 마감 등 세부 구성도 두 전각이 대동소이하며 부재 표면에는 화려한 채색을 하지 않고 간단히 주칠로 마감하였다. 질박하면서도 친근감 있는 장인들의 솜씨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현존하는 고건축물 가운데 조선왕실의 건국이념과 실천정신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종묘는 종종 동양의 파르테논 신전, 우주를 담은 듯한 장엄한 공간, 첼로에 비견되는 건축, 침묵의 공간, 비움의 미학이 극대화된 건축, 사막의 고요, 천지창조 이전의 침묵 등과 같이 사람들마다 제각기 이런 저런 수식어에 기대어 찬탄을 금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러한 수식어들은 종묘를 온전히 드러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 우리가 종묘를 사랑하고 아끼고 드러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글+사진‧한동수(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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