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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막힘없는 기(氣)의 순환,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작성일
2016-05-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105

 막힘없는 기(氣)의 순환, 균형과 조화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국내 외국인 출신 한의사 1호 라이문드 로이어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대표적 한방전문병원에선 조금 특별한 한의사를 만날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우연히 침술을 경험한 후 생각지도 못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라이문드 로이어 원장. 국내 외국인 출신 한의사 1호가 된 그의 지난 30여 년은, 상호 균형과 조화의 동양문화를 체득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벽안의 청년이 한의학에 빠지게 된 사연

30년 전, 한 오스트리아 출신 청년이 한국을 찾았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직장까지 다니던 이 평범한 외국인은 언젠가부터 생겨난 동양에 대한 호기심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 그의 행선지는 자연스레 한국으로 향했고 당시 느낀 한국의 첫인상은 ‘활기!’ 그 자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낯설고 생경한 도시에서 인생의 커다란 전환이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태권도장에서 발목을 삐기 전까지는 말이다. 다친 부위만 치료하는게 아니라 다른 부위에도 침을 꽂는 건 서양의학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고, 그의 호기심은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 욕망’으로 발전했다. 그는 정식으로 한의대에 진학을 해 한의학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서양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해하고 한자로 된 교재로 공부한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는 전통 한의학이 가진 가능성과 그 깊이에 점점 매료되었다.

“서양의학에서는 육체와 정신을 분리된 영역으로 이해하지만 동양에서는 그 상호연관성을 기본으로 봐요. 동양에서는 사람 자체를 하나의 소우주로 보는 거예요.”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이런 통합적 세계관은 서양문화에서 간과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푸는 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겐 더욱 매력적인 발견이었다. 동양의학의 여러 갈래 가운데서도 한의학의 독보적 성취라 할 수 있는 사상의학은 그로 하여금 한국에서 뿌리내리며 살도록 한 강력한 유인이 되기에 충분했다

걸음을 멈추게 하는 가야금 선율의 안식

현재 자생한방병원에서 주로 외국인 환자를 전담하고 있는 그의 주된 관심은 한의학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열어가는 일, 바로 ‘한의학의 세계화’에 모아지고 있다. 진료실에서 접하는 다양한 치료 경험들을 수치화하고 논리적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이론적 정립이나, 해외 의학계와 연계할 수 있는 학문적 교류 기회를 늘리는 것도 그가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영역이다. 한편 의료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일상 가운데 가장 부족한 것이 있다면 문화적 즐거움을 향유할 여유가 너무 없다는 점이다.

자주 찾는 한국의 전통문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전통 차 한 잔의 여유나,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야금 산조 한 가락의 위안을 이야기한다.

“가야금 소리는 마음을 달래주는 힘이 있어요. 연주자의 호흡이 그대로 아름다운 음악이 되는 대금소리도 좋아요. 어딘가 마음을 차분히 안정시키고 치유하는 힘이 있는 것 같더군요.”

바쁜 하루일과를 마치고 진료실을 나서기 전 잠시 젖어보는 전통의 선율. 그에겐 걸음을 멈추어 생각에 잠겨볼 수 있는 찰나의 안식이다. 사람의 질병을 치유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누리는 색다른 치유비결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한의학 세계화의 최전선에 서다

서울시 홍보대사로서 활동했던 적이 있는 그는 한의학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에 알려야겠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한의학에 대한 터무니없는 오해와 폄하의 분위기가 여전하다. 그는 서양인으로 한의사가 된 최초의 인물로서 마땅히 느끼는 사명감이라 말했다.

“한의학에서 기(氣)라는 개념은 상당히 중요해요. 이걸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상당히 어려운데, 서양인들에게는 ‘에너지’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지만 한국인에게는 일상의 도처에 넘치는 의미에요. 기운이 없다, 분위기, 인기, 기분 등 언어 자체에 녹아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개념이지요.”

막힘없이 순환되는 기의 상태가 곧 건강이라고 한다. 몸과 마음에, 혹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기가 막혔을 때’ 병이 생기는 것이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한국적 전통의 건강함과 아름다움을 더 넓은 세계에서 흐르게 하는 일은 이미 뼛속까지 한국인이 되어 살아가는 그가 달려갈 다음 목표가 되고 있다. 동양의학에 대한 대표적 오해는 ‘비과학적’이라는 점이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서양의학 중심의 기준에서 해석된 결론일 뿐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서양의학에서도 ‘통하는’ 이론적 체계화도 한의학을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 강조했다. 운명처럼 한의사가 되어 살아가는 그의 간절한 목표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 동양과 서양 사이에 기운차게 흐르는 건강한 소통의 문화인지도 모르겠다.

글‧김수연 사진‧정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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