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종교적 신념의 가치가 담긴 세계문화유산
작성일
2016-05-0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300

부다가야 VS 요르단 종교적 신념의 가치가 담긴 세계문화유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역 중, 종교적 가치를 갖고 있는 요르단과 부다가야. 성경의 역사와 함께한 요르단은 세례 요한과 예수의 공생애가 이뤄진 곳이자 예수의 세례지 ‘베다니’가 존재한다. 부다가야 또한 부처가 성불한 곳이자 불교가 시작된 깨달음이 담긴 성스러운 곳이다. ©차장섭 ©셔터스톡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

부다가야는 부처가 성불한 곳이다. 시골의 자그마한 도시에 불과하지만 부처의 득도로 불교가 시작됐다. 그러한 연유로 참다운 깨달음을 열망하는 스님들과 불자들에게는 불교의 참모습과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부처는 29세에 지혜와 자비의 길을 찾아 출가했고, 여러 스승을 찾아 가르침을 받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참된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다. 마침내 부처는 스스로를 스승으로 삼고, 혼자의 힘으로 깨달음을 얻기로 결심했다. 레란자라강에 있는 부다가야의 우루벨라 마을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수행을 시작한 부처. 눈은 해골처럼 움푹 들어가고 몸은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로 변해갔다. 극한의 고행을 하는 모습은 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상태였다

부처는 고행을 포기했다. 지금까지 해온 고행, 즉 육체를 괴롭히는 일은 오히려 육체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것을 바르게 보고 바르게 알 수 있는 ‘중도(中道)’를 선택했다. 부처는 지쳐버린 육체를 회복한 후 수행을 계속하기 위해 전정각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자 산신과 천신이 두려움에 떨며 산에서 내려가 고행림 근처 우루벨라 마을의 보리수 아래에서 수행할 것을 간청했다. 반면 산의 동굴에 살고 있던 용은 그곳에서 성도하기를 원했다. 이를 기특하게 여긴 부처는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동굴에 그림자를 남기고 떠났다. 이 동굴이 유영굴이다.

부처가 성도한 자리, 대보리사

산을 내려온 부처는 보리수 아래에서 길상초를 깔고 앉아 선정(禪定)에 들었다. 마침내 보름달이 밝은 밤에 깨달음을 이루었다. 부처가 깨달은 법의 실체는 ‘연기법’과 ‘사성제’이다. 연기법은 존재의 실상을 깨닫고 그 내용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사성제는 현재를 관찰하는 고제, 그 원인을 분석하는 집제, 처방을 마련하는 멸제,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도제를 말한다.

부처가 성도한 그 자리에 마하보다 사원, 즉 대보리사가 있다. 대보리사는 기원전 254년 아쇼카왕이 부처의 성도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그러나 대보리사는 12세기 인도를 침입한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되고 버려져 황폐해졌다. 이후 1883년 컨닝햄에 의해 발굴이 이루어지면서 인도 정부가 복원하였다.

대보리사는 탑형 사원이다. 탑 내부에 법당이 있고, 그곳에 불상을 모신 형태이다. 대보리사는 한 가운데 중앙탑이 있고 네 모퉁이에 작은 탑이 있다. 55m의 중앙탑은 수미산을 상징하며, 네 모퉁이의 작은 탑은 사주를 상징한다. 그리고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은 황금색 가사를 걸친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한 성도상이다. 우리나라 석굴암의 본존불이 바로 이곳에 있던 성도상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보리수는 대탑 바로 뒤에 있다. 보리수의 동쪽, 즉 보리수와 대탑 사이에 부처가 성도한 자리인 금강보좌가 있다.

성도한 부처는 7일마다 자리를 옮겨 가면서 7주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49일 동안 해탈의 환희를 느끼면서 바로 이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매주 부처가 머물렀던 자리에는 다양한 상징들이 만들어졌다. 깨달음을 얻은 금강보좌 주변에 부처가 머물렀던 일곱 개의 작은 성지가 있는 것이다.

부다가야는 과거의 땅이 아니라 현재의 땅이요, 미래의 땅이다. 과거에는 부처가 성도함으로써 불교가 시작되었다. 현재는 또 다른 부처의 탄생을 기다리며 숱한 사람들이 치열하게 수행하고 있다. 특히 대보리사 대탑과 보리수 주변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스님들과 불자들이 예불을 드리거나 수행을 한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하나로 부처가 추구하였던 바로 그것이다.

01 보리사 전경 ©차장섭 02 금강보좌 ©차장섭

영험한 선지자의 ‘요르단 강’

이스라엘의 가장 큰 강인 요르단 강은 역사·종교적 측면에서 성스러운 공간으로 여겨진다. 성서의 내용에 등장하는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제사장들이 지나가자 상류 쪽 물이 흐름을 멈추고 강바닥에 길이 트였다는 것부터 엘리야(선지자)가 하늘에 오르기 전, 요르단 강의 물살을 반으로 갈랐다는 이야기까지 요르단 강을 따라 흐른다. 뿐만 아니라 복음서에서 요르단 강은 세례자 요한이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세례를 베푼 곳이자, 예수 역시 이곳에서 세례를 받았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 때문에 요르단 강은 수백 년 동안 예술가들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소재로 쓰였으며 그로 인해 요르단 강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그려진 강이기도 하다.

세례 요한의 세례지, 베다니

신약성경과 비잔틴·중세 시대 사가들의 저술에서 언급되었던 세례 요한의 세례지이자, 예수가 세례를 받았다는 베다니는 암만에서 사해 방향 59km, 사해 북쪽 9km 떨어진 요르단 강 동편에 위치한다. ‘알카라르 와디’ 지역의 초입이자, 요르단 강에서 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곳이다.

세례지인 베다니를 일부 학자들은 요르단 강 동편 ‘벳아바라’라고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발굴 유적과 기록, 전승 등에 비추어 보면 맞은편의 알카라르 와디의 사프사파스(Saphsaphas) 샘 지역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이 지역을 베다니라고 언급한 성지 순례자는 20여 명이나 되는데, 이 중 1106년 러시아인 성지순례자 아봇대니얼(Abbot Daniel)은 “요르단 강에서 화살 2대를 쏠 정도의 멀지 않은 거리에서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승천했던 장소가 있는데, 그곳에 세례 요한이 거주했던 동굴이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30세의 젊은 예수는 요르단 강 동편의 베다니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성경 마태복음 4장에 기록된 대로 40일 금식을 한 후 세 가지의 시험을 받는다. 첫째는 요르단 골짜기의 광야에서, 둘째는 여리고 인근의 가파른 절벽에서, 셋째는 예루살렘 성전 꼭대기에서 시험을 받으며 공생애(公生涯)를 시작한다.

또한 베다니 유적지에는 이스라엘 왕국 초기의 예언자 엘리야가 불마차를 타고 승천한 곳, 즉 ‘엘리야 언덕’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기독교에서 죽음을 ‘요르단 강을 건너다’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 말은 요르단 강 동편(길르앗 지역) 디셉 마을에서 태어나 선지자로 사역을 하다가 마지막에 요르단 서편에서 동편으로 건너간 후, 강가에서 회오리 바람을 타고 승천한 엘리야를 상징하여 이르는 말이다. (열왕기하 2장 7~11절)

03 엘리야의 언덕 ©셔터스톡 04 세례지 ©셔터스톡

베다니는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와디(乾川) ‘알카라르’ 유적지가 발굴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이 지역을 발굴하면서 로마와 비잔틴 시대의 세례 장소를 5개, 비잔틴 수도원, 11개의 비잔틴 교회, 은둔자와 수도승이 사용했던 동굴들을 발견했다.

세례 요한이 20여 년 간 살았던 이 베다니를 2000년 1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한 세례식에 교회 지도자를 비롯한 4만 명이 이곳을 찾았다. 이스라엘이 반대를 함에도 불구하고 교황은 이곳을 기독교 성지로 인정했다. 요르단 왕국은 2002년 이 지역을 베다니로 인정하여 관광지로 개방하자 한 해 20만 명이 다녀가는 명소가 되었다.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아나스타시우스 황제 시대에 지어진 이 세례지를 방문했으며 이 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2015년 7월 3일에 세계 유산으로 지정했다.

글‧차장섭(강원대학교 삼척캠퍼스 교양학부 교수), 이인섭(한국외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