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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계기록유산으로의 빛나는 가치 ‘유교책판’
작성일
2016-04-01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2764

세계기록유산으로의 빛나는 가치 ‘유교책판’ 한국에서는 고려 시대에 금속활자와 같은 우수한 인쇄 매체가 발명되었지만 널리 보급되지 못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책을 인출할 수 있고, 또 시간이 지난 뒤에도 동일한 형태의 책을 인출할 수 있는 목판인쇄가 널리 성행했다. 목판 인쇄의 시작은 통일신라 시대 전후로 보이지만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가장 보편적인 인쇄 방법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유교책판은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저작물을 출간하기 위하여 제작했던 책판으로, 흔히 ‘목판’으로 표기되었다. 퇴계선생문집 책판

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책들이 목판으로 제작되었지만 몽골의 침략, 홍건적의 난, 이자겸의 난을 비롯한 조선 중기의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으로 그때까지 제작된 책과 목판은 대부분 소실되어 현재는 매우 적은 숫자만 남아 있을 뿐이다.

17세기 중반 이후 사대부들에 의한 책판의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19세기와 20세기 초에 그 정점을 이루게 되는데, 유교책판은 바로 이때 제작된 책판들로 구성되어 있다. 본래는 서원이나 문중에서 대대로 보존, 관리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한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해서 관리되고 있다. 모두 305개 문중, 서원에서 기탁한 718종, 64,226장으로 구성된 유교 책판은 1460년에 제작된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5호 『배자예부운략(排字禮部韻略)』을 비롯하여 1955년의 것까지 다양한 종류의 책판이 약 500년의 시차를 두고 지속적으로 제작됐다.

가장 많은 종류는 개인 문집으로 583종이다. 이외에 성리서, 예학서, 훈몽서, 역사서, 족보, 지리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작 시기는 19세기와 20세기에 간행된 것이 전체의 70%를 상회하고 있으며 약 1/3이 완질로 남아 있다.

공동체 출판이란 독특한 책판 선택

유교책판은 제작 기법이나 형태, 양으로는 팔만대장경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책판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특징 때문이다.

첫째는 책판 제작 과정의 독특함이다. 유교책판이 제작된 시기는 조선 시대로 이와 동일한 시대인 중국의 명(明)과 청(淸)은 상업출판이 매우 성행했던 시기였다. 이에 비하여 유교책판은 책의 출간 과정이 중국의 상업출판과는 매우 다른 형태로 진행됐으며 주로 개인의 문집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개인의 문집은 사후(死後)에 출간한다는 원칙이 조선 초기부터 관행으로 내려오고 있다. 사후에도 문집 출간을 위해서는 향촌사회 여론 주도층인 사대부들의 공론(公論)을 얻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저자의 원고가 있고, 책을 간행할 경제적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공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책을 간행할 수 없는 것이 조선 시대 문집간행의 일반적인 형태였다. 공론의 형성자들은 문중-학맥-서원-지역사회로 연계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였고, 이 공론 형성자들에 의해 문집 간행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목판인쇄를 이용하여 책을 간행하는 일은 매우 오랜 시간과 경제적 부담이 필요하였다. 시작에서 완성까지는 대체적으로 2~3년 정도의 기간이 필요하며, 전 과정에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필요했다. 현재의 금액으로 계산하면 책판 1장(앞뒷면 판각) 제작에 500만 원 이상 소요된다. 물론 조선 시대와 지금의 경제적 상황을 동등하게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에도 개인이나 문중이 단독으로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이에 공론 형성자는 물론, 공론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능력에 따라 성의를 표시하여 문집 간행에 필요한 경비를 공동 부담하였다. 등재신청서에서는 이러한 행위를 ‘공동체 출판’이라 표현하였다. 이처럼 공론과 공동체 출판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물이 바로 유교책판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제작된 유교책판은 한번 책을 간행하고 버려지는 단순한 인쇄매체가 아니라, 책판을 영원히 보존하여 스승과 후학 사이 ‘지식 소통’의 역할을 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이러한 출판 과정은 출판 사상 매우 독특한 형태로 한국의 일부에서는 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 오고 있다.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되기를 추구

둘째, 책판 내용에서 추구하는 일관된 가치체계가 있다는 점이다. 유교책판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가장 완비된 인본주의의 유교 국가 건설을 지향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논리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한 국가 건설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聖人)에 의해 가능한데, 유교책판에는 이러한 성인을 추모하고 기억하며 모든 사람이 성인 되기를 추구하는 방법론이 담겨져 있다. 성인은 학문을 통해 완성되며, 학문은 출세를 위한 것이 아닌 스스로를 수양하는데(修己治人)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히 이러한 학문의 내용이 어떤 특정 지역, 특정 시대의 사상과 학문체계가 아닌 ‘도덕적 인간상의 완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원리임을 천명하고, 이 원리가 시대에 따라 연구, 발전되는 모습이 일목요연하게 수록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출판과정과 수록 내용의 인류 보편적 가치가 등재의 큰 요인이 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가나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이 가진 기록물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하며 연구하는가에 따라 중요한 기록유산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유네스코에 의해 재확인 받은 것도 큰 수확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고 천덕꾸러기로 사라져만 가던 유교책판이 보존, 관리와 함께 연구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는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에서 목판연구를 위한 기구(IWA, International Woodblock Association)도 만들어져 정기적인 학술교류를 할 정도로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는 향후 한국의 기록유산 등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지침을 제공했다는 점도 유네스코에서 인정한 등재의 한 요인으로 파악되고 있다.

조선 시대에만 불경을 제외하고 약 1만 종 이상의 책들이 목판으로 제작되었으나 현재 전국적으로 남은 책판은 약 20% 정도에 불과하며, 이것도 현재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유교책판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점으로, 남아 있는 책판을 조사하고 추가 기탁을 받아 향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추가 등재를 신청할 예정이다.

 

글‧박순(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 사진‧한국국학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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