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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우리 민족의 일에 대한 인식과 상·농·공 발전사
작성일
2013-05-1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535

우리 민족의 일에 대한 인식과 상·농·공 발전사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채집과 사냥으로 이동생활을 했던 구석기시대가 70만 년 동안 지속되다가 한 곳에 정착하여 농경을 시작한지는 1만년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시대부터 컴퓨터를 이용한 시공간의 개념을 초월하기까지 8000년 남짓 걸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705년, 백제 678년, 신라 992년, 조선 519년 등 500년 이상 존속한 4개의 왕조 역사를 갖고 있는데, 이러한 왕조 역사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의 예를 들면 당청등이 가장 오래 존속한 국가였다. 01. 02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중 기와이기(02)와 논갈이(02). 서민사회의 일상생활 모습과 생업에 종사하는 모습이 구수하고도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고인돌을 보유했던 선사시대, 광활한 대지 위에 고구려의 거대한 숨결을 보여주는 유적들과 벽화에 나타난 고구려인의 기상, 돌과 금·은을 자유자재로 표현한 신라의 위대한 유산들, 일본을 오늘에까지 이르게 한 백제와 가야의 문명전파,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한 고려인의 지혜,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과 그 시대의 첨단과학을 구가했던 조선시대, 이 땅을 지켜내고자 목숨을 아끼지 않은 독립지사들의 정신 등은 우리 선조가 그 시대에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다하여 만들어온 우리의 역사이다.

이렇듯 찬란한 역사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선조들이 각 분야에서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왕, 관료, 생산집단 모두가 각자의 임무를 충실히 한 것이며 지금도 우리는 각자 자신의 직업에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

03 전남 영암 거푸집 일괄(국보 제 231호) 중 낚시바늘과 동부용범. 거푸집은 청동검, 청동칼, 청동도끼, 청동창, 청동끌, 화살촉, 낚시, 단추 등에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거푸집은 청동기 주조물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기술이다. 04. 옹구, 광복 이후 사용됐던 농기구로 두엄, 무, 호박, 배추 등을 실어 나르는 도구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을 시작한 우리 민족은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해왔다. 05.06 고려시대에 충남 태안구 마도 인근 해저에 침몰한 선박 마도 1-2호선에서 발굴된 청자상감유노죽화훼문매병과 고려시대 김순영 대장군의 죽찰. 대외무역이 발달했던 고려시대의 해상활동을 짐작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일을 하였을까

4만 년 전부터 오늘날 인류와 거의 같은 두뇌용적과 체질상의 특징을 가진 진정한 의미의 현생 인류가 출현하였다. 구석기 시대는 구석기인의 생활도구인 석기의 종류나 가공기술에 따라 전기(400만~10만 년 전), 중기(10만~4만 년 전), 후기(4만~1만 년 전) 등 3시기로 분류된다(국립중앙박물관,1997). 전기는 한 개의 큰 석기를 가지고 여러 용도에 썼으나, 중기에는 큰 돌을 떼어 낸 격지돌을 가지고 잔손질을 하여 크기가 작아지면서 한 개의 석기가 하나의 쓰임새를 가지게 되었다.
후기는 쐐기를 이용하여 같은 형태의 여러 가지 돌날격지를 만드는 데까지 발달하였다(교육부, 1999).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한탄강 강변의 황토대지에 형성된 전곡리유적은 10만 년 전의 유적이며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전형적인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경기도박물관, 1998)므로 우리나라는 구석기 중기부터 식량을 위한 채집과 사냥을 위하여 돌과 짐승뼈를 사용했고 이동생활을 하면서 강가나 막집, 동굴에서 살았다.

우리나라의 신석기는 900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인은 이동하며 생활했던 형태에서 벗어나 한 곳에 터전을 마련하여 움집을 짓고 원시공동체적 생활을 했고, 사냥과 농경생활, 고기잡이 등 주요한 생산활동을 공동으로 했다. 신석기인들의 움집은 거주, 보온, 조리, 난방, 저장 등의 기능을 기본적으로 갖춘 최초의 주택개념의 형태를 만들었고, 한반도 최고最古의 신석기 집터 유적인 강원도 양양군 손양면 오산리 집터에서는 이음식 낚시축, 톱, 칼 등이 출토되었으며(국립중앙박물관, 2000), 정교하게 제작된 길이 13.1㎝의 돌바늘은 간석기 제작기술의 극치를 보여준다(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2000). 특히 간석기 제작을 위해 신석기인들은 이미 일에 대한 직무를 분석하여 부분갈기, 갈기, 정교하게 갈기 등을 분류하여 이에 맞는 도구를 준비하였고 이러한 일들을 분업화하였음이 움집 집터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는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구석기부터 일을 하였다.

07 신석기시대 초기의 토기로, 신석기인들은 9천 년 전부터 토기를 구워 음식을 저장했다. 08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국보 제143호). 한국식 동검문화를 대표하는 유물들이다.

농공상의 직업발달사

인간 역사에서 가장 큰 혁명은 신석기시대의 토기를 구워내는데 있다고 본다. 신석기인들이 9000년 전부터 토기를 사용함으로써 음식의 저장과 보존을 가능케 하여 정착생활이 가능해지면서 인구팽창을 가져와 국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의 인간을 있게 한 시발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농업이 발달하게 되었으며 2300년 전에 철기가 출현하면서부터 더욱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는 철기로 농기구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땅을 더욱 깊이 갈게 되고 노동력을 철기에 의존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업형태는 1900년대까지 지속되었다가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컴퓨터로 원하는 농작물의 조건을 만들어 언제든 원하는 농작물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엄밀히 추적하기 어렵지만, 우리나라 공업의 발달과 공장의 출현은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거푸집의 출현이 계기가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3000년 전에 청동기시대에 나타났는데 청동기시대에는 사유재산과 계급이 나타난 시대이기도 하다. 청동은 구리를 기본으로한 구리합금의 한 종류로서 인류가 발견한 최초의 합금이다.
특히 아연을 섞는 것은 우리나라 특유의 합금술로서 주조시 유연성에 도움을 주며 잘 부식되지 않는 효과가 있다. 거푸집은 처음에 돌이나 진흙에 만들려는 모양을 새겨서 두 개 맞붙여 녹인 청동을 부어넣는 직접적인 방법을 사용하였으나 나중에는 밀랍거푸집을 만들어 사용하였다(전상운, 2001). 거푸집은 청동검, 청동칼, 청동도끼, 청동창, 청동끌, 화살촉, 낚시, 단추 등에 다양하게 사용하였다. 신라시대는 생산품에 공장명까지 기재한 라벨을 붙여 수출할 정도로 공장이 발달되었다. 1800년대 후반에 발달한 산업혁명은 세계의 공업화를 불러왔지만, 우리나라는 1950년에 경제개발을 시작하면서 급속한 공업화를 가져와 세계와 겨루게 되었다.

또한 가야의 철은 매우 우수하여 세계에 수출하였다. 신라는 명품을 만들어 상품화하여 교역하였으며, 특히 장보고 무역상선의 중국, 일본, 한국과의 교역활동은 그 당시 상업의 발달수준을 가늠케 한다. 백제는 일본과의 교류를 활발히 하여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송나라를 중심으로 대외무역이 크게 발달하였는데 벽란도는 국제무역항으로 번성하여 해상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청자를 실은 배가 태안군 근흥면 마도 앞바다에서 침몰된 마도 1·2호선을 보아도 고려의 해상활동을 짐작할 수 있다. 상업은 물물교환에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형식은 조선시대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대규모 상단을 꾸려 교역한 상업의 형태는 2000년 전부터 나타난다. 고구려는 수레가 다닐 수 있는 다리도 만들고 제륜신이라 하여 수레산업을 신격화하였으며 지금으로 보면 물류시스템을 첨단화하여 국가의 부를 꾀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보부상들이 발달하여 전국을 다니면서 무게나 부피가 크고 값이 비교적 낮은 상품을 지게에 짊어지고 다니거나, 부피가 작고 가벼우며 비교적 비싼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다니거나 하는 방법으로 상업이 발달하였다.
또한 객주도 발달하였는데, 객주는 각처에서 모여드는 상인을 위하여 물품을 보관하거나, 숙식을 제공하거나, 위탁판매 등을 해주었다. 특히 외교관들은 인삼과 같은 우리나라 특산품을 중국에 가져가 파는 등의 교역을 하였다. 현대에 와서 우리나라는 동북아 물류시스템의 중심이 되고자 하고 있으며, 세계 5대 무역항을 갖고 있는 국가가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직업들과 농공상은 수천 년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며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들을 후손들에게 어떻게 전수할지를 고민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글. 김병숙 ((사)한국직업상담협회 이사장) 사진. 문화재청, 농업박물관,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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