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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꿈꾸는 시지푸스는 힐링에 기대지 않는다
작성일
2013-05-1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731

꿈꾸는 시지푸스는 힐링에 기대지 않는다

꿈꾸는 시지푸스는 힐링에 기대지 않는다 01.이탈리아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가 그린 시지푸스. 거대한 돌덩어리를 언덕 위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시지푸스의 모습이 똑같은 노동을 하염없이 되풀이해야만 하는 오늘날의 직장인의 모습을 닮아 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시지푸스는 코린토스라는 도시 국가를 창건한 왕이었지만 몇번이나 신들을 속인 끝에 저주를 받아 거대한 돌덩어리를 언덕 위까지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두 손과 발로 밀어 올려 언덕 꼭대기에 도달할 무렵이면 기운이 떨어져 밑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그러면 시지푸스는 똑같은 노동을 하염없이 되풀이 해야만한다. 철학자 피터 싱어는 이런 시지푸스의 딱한 처지가 오늘날의 직장인을 빼닮았다고 말한다. 쉴 새 없이 열심히 일하지만 꿈도 기쁨도 없이 오늘도 내일도 지루한 직장생활을 반복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꿈이 없기로는 요즘 청소년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전국의 중고등학교 청소년 6천3백여 명을 대상으로 한 직업 선호도 조사를 보면, 초등학교 교사, 의사, 공무원 등의 순서다. 10년 전만 해도 상위권에 있었던 사업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은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한 마디로, '꿈'을 좇기 보다는 안정적이고 명예와 부를 얻을 수 있는 작업을 선호한다는 얘기다.

고단한 청춘에 넘치는 ‘위로’

누군가가 별 생각 없이 중학교 2학년 조카에게 ‘너의 꿈이 뭐니’라고 물었더니,“정규직이요”라고 대답하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기상천외한 대답이지만 세태를 반영한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위에서는 취업이 어려워 청년실업자가 늘고, 그렇다고 창업도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청소년들에게 꿈을 꾸라는 말은 사치가 아니냐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나라의 청년(15~29세) 실업자가 약 27만 명으로 실업률로 따지면 6.7%(2012년 11월 기준)에 달하고, 공식통계에 잡히지 않는 청년 무직자를 포함하면 청년 실업자는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걸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이다.
이런 추세에 재빠르게 편승해 ‘위로’가 대유행이다. 스님부터 서울대 교수, 맛깔스런 입담을 자랑하는 강사들에 이르기까지 청춘의 아픔을 치유하는‘사업’에 뛰어드는 듯한 느낌이다. 서점가에는 고단한 청춘의 입맛에 맞게 제작된 위로의 책들이 넘쳐나고, 케이블TV 채널에는 독설로 위장한 또 다른 힐링 강연을 들으며 넋을 빼앗긴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위로와 힐링이 지친 청춘들에게 잠시나마 힘은 줄 수 있을지는 모른다. 허나 그것은 마치 남이 건네주는 콜라를 마시며 순간적인 톡 쏘는 맛에 갈증을 해소하려 기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목마름은 계속될 뿐이다.

바꿀 수 있는 건 ‘나 자신’

위로는 필연적으로 아픔이나 어려움의 탓을 ‘남’ 혹은 ‘시대’로 돌리게 되어 있다. 그런데 남이나 사회는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청춘독설’이란 책에서 말하듯,‘지금 당신이 억울한 처지에 있다고 해도 어떤 시스템이나 누군가가 그런 불공정성을 해소해 줄 것이란 기대는 품지 않는 게 좋다.’ 그렇다면 불공정한 시스템 개혁을 위해 투쟁하든가 아니면 나 자신을 바꾸든가,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가 어렵고 취업문이 좁다고 한다. 그래서 2030세대는 꿈꾸는 것 조차 버겁다고 투덜댄다. 그러나 불평, 타령은 여기까지면 충분하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던 80년 초에도 경제는 어려웠고 일자리는 제한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경제가 나의 꿈만은 빼앗지 못했다. 비행기 삯을 빼곤 3개월을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호주로의 유학을 택한 것은 배움을 통한 나름의 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10여 년간 화장실 청소부에서 국제회의 영어 동시통역에 이르기까지 스물세가지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유학 아닌 고학을 해낼 수 있었던 힘은 그‘꿈’이었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는 것도 그 꿈의 실현이다.

02. 또 다시 밝아오는 아침. 경제가 어렵고 취업문은 좁고 실업자는 늘어만 가는 비정한 현실 속에 도시인들의 고단한 하루 일과가 시작되고 있다.

시지푸스 행복의 두 가지 조건

다시, 시지푸스 얘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 철학자 테일러Taylor는 시지푸스와 같은 직장생활을 하는 현대인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운명이 바뀌어야 한다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른바 ‘시지푸스 직장인 구하기’다.
하나는 아무런 소득 없이 계속해서 똑같은 바위를 끌어올리게끔 하지 말고, 시지푸스로 하여금 다른 바위를 언덕 위로 올리도록 해서 그 바위들을 이용해 멋진 사원을 짓도록 만드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신들의 마음이 갑자기 자비로워져서 똑같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노동은 계속 반복하더라도 시지푸스가 그 반복적인 행위를 열렬히 좋아하게끔 마음을 바꾸어 놓는 것이다. 그러면 노동의 지루함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다.‘의미’와‘즐거움’. 얼핏 들으면 식상할지도 모를 해법이지만 행복의 지혜가 농축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행복의 첫 번째 조건은 ‘의미 찾기’이다. 젊은이의 멘토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게 행복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래야 성취동기, 일의 만족은 물론 조직의 성과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나,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일’만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있다. 어찌 보면 ‘좋아하지 않는 일’을 더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실제 직장이고 인생이다. 그래서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Russell은 “이상적인 것(the ideal)과 가능한 것(the possible) 사이의 끊임없는 타협이 실제 인생”이라고 결론 내린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하던 경험을 생각해 보자. 남자라면 군대를 꼭 좋아서 가는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모들은 모두 좋아하는 일이라서 일을 하는가? 좋아하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일하며 살아가는 직장인들은 행복하지 않단 말인가? 반면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불행한 사람들 역시 적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프리드리히 니체Nietzsche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행복의 첫째 조건은 바로 여기에 있다. 제2차 대전 중 나치 수용소에서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체험한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Frankl은 “희망의 끈을 놓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순간, 사람은 생명까지 놓게 된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삶의 의미를 총족시킬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자신을 넘어 다른 대상을 향할 때 채워진다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은 일이라도 기꺼이 해내는 부모나 직장인들은 ‘가족’이란 대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충족된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흔히 목표와 꿈을 구분 없이 쓰기도 한다. 그러나 ‘교사가 되는 것’은 목표이지 꿈은 아니다. 교사가 돼서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가 꿈이다. 목표를 이루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목표달성이 반드시 행복은 아니다. 정치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소위 출세한 사람들이 반드시 행복한 사람은 아니라는 얘기다. 오히려 사회적 성공의 잣대와는 관계없는 행복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인생의 묘미다.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발견할 때 그 의미는 꿈이 된다. 그리고 의미와 꿈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이다.

03. 실업률이 날로 증가하는 가운데 졸업식이 열림 서울시내 모대학에서 한 졸업생이 취업정보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04. 삼성그룹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인 열정락서 현장. 사회 각 분야를 대표하는 멘토들이 전국을 순회하며 열정과 희망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05. 실업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프랑스 정부의 최초 고용계약(CPE) 관련 실업정책에 반대하는 프랑스 학생 및 시민들의 시위가 파리 시내에서 열리고 있다.

즐겁게 생각하는 패러다임으로

시지푸스 같은 인생을 행복으로 인도하는 또 다른 방법은 일 자체를 즐겁게 생각하자는 것이다. 대뜸 힐문에 가까운 질문이 제기될 것이다. 일이 즐겁지 않은데 어떻게 즐겁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축복이다. 그러나 시지푸스처럼 즐겁지 않아도 해야 될 때가 있는 게 인생이다. 그렇다면‘즐겁게 생각’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선, 생각을 지배하는 습관적 언어부터 고쳐 볼 일이다. 이를 테면 2030세대를 가리켜 언론에서는 “날로 늘어나는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들이 ‘삼포(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로 가고 있다”는 등 집단 무기력증을 불러일으키는 자조적인 조어造語들이 난무하고 있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말이란 마치 마법 같아서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 그 말을 한 사람은 그렇게 된다.”고 말한다. 모든 인식은 우리의 언어 속에 들어 있다. 따라서 언어의 습관이 바뀌면 생각도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즐겁게 일하기 위한 방법은 하는 일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즐거움과 의미는 동전의 양면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느끼고 있다. 2030세대의 실업률도 높지만 취업 후 그만두는 비율 또한 높다는 통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글. 이관춘 (명지전문대 청소년지도복지과 교수) 사진. 연합콘텐츠,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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