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트위터 페이스북
제목
흙냄새가 물씬 나는 근대의 기억 반곡역盤谷驛에서 토지土地 문학관까지
작성일
2013-05-1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186

반곡역에서 토지 문학관까지

반곡역에서 토지 문학관까지 -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라 했던가? 유난히 바람이 많았던 봄. 원주 치악산 한 자락에는 시간 따라 쌓인 것이 또 있었다. 근대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축물들이다. 지금은 한 두 차례 열차가 지날까 말까한 치악산의 숨은 보석, 반곡역이 그렇고 용소막 성당이 그렇고 삶의 에너지가 가득 느껴지는 원주 중앙시장이 그렇고 박경리의 토지문학관이 그렇다. 그 한 페이지를 조심스럽게 열어보고 싶어서 녹색이 짙어가는 어느날, 나는 원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어디선가 본 듯 낯익고 반가운 반곡역

반곡역에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잘 오지도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또 한참을 걸어가야 했으니까. 가는 길도 괜히 낯이 익지 않아 여기가 정말 맞나? 몇 번을 갸우뚱하게 만든 후에서야 그 얼굴을 쓰윽 들이 민다. 시골 간이역簡易驛, 딱 그 모습이다. 조그맣고 정겨운, 그 자체로 수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듯한 시골 간이역.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유난히도 영화와 드라마 촬영이 많았단다. 처음부터 왠지 어디선가 본 듯 했던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1941년 개통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반곡역의 역사는 근대 서양 목조건축으로 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재 제165호로 등록되었다.

근대의 아픈역사를 간직한 반곡역사

역무원 아저씨의 설명을 듣자니 반곡역은 뼈대나 건물양식이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박공朴工지붕이 유난히 높고 철로 쪽 지붕은 주 지붕의 처마를 연장해서 비 등을 피하도록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광산, 농산, 임산 개발을 목적으로 중앙선에 지은 역사. 한국 전쟁당시에도 인민군이 장악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고 하니 작고 예쁘게만 느껴졌던 건물이 새삼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소박한 역사 안으로 들어서니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2007년 여객업무 중단으로 손님을 실은 객차가 서지 않는 무정차 간이역.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나무 의자는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예전에 사용하던 대합실은 원주지역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작은 역사를 나오니 끝간 데 없이 펼쳐진 철길. 2017년이면 철도가 폐선이 되어 기차가 다니지 않을지도 모른다고하니 괜한 아쉬움이든다.
철도 너머를 보니 여긴 완전 숲이다. 울창한 치악산雉岳山자락, 막바지 봄이 너울너울 손짓을 한다. 역사에 가지런히 놓인 꽃들과 녹음이 짙어가는 봄의 산이 상쾌하게 느껴진다. 가슴 깊숙이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이번엔 배를 채우러 가야지. 삶의 에너지가 가득한 원주중앙시장中央市場으로.

01. 2007년 여객업무 중단으로 객차가 서지 않는 무정차 간이역, 예전에 사용하던 대합실은 원주지역 화가들의 그림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이용되고 있다. 02. 작가가 직접 거주하며 토지 4,5부작을 완성시켰다는 박경리 문학공원, 시골학교처럼 아늑한 공원 곳곳에서 박경리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03. 원주 중앙시장의 명물, 뽕잎 황태밥, 뽕잎과 황태로 밥을 지어 간장과 된장에 비벼먹는 웰빙식이다. 04. 문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사를 담은 역사적 고증 자료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소설 토지.

원주중앙시장의 뽕잎 황태밥

문화의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원주 중앙시장으로 통하는 문이 보인다. 장터, 전통시장이라고 크게 써 붙인 간판에서부터 시끌벅적, 왁자지껄 살아 움직이는 삶의 뜨거운 에너지가 느껴진다. 아침에 출발해서인지 12시가 훌쩍 넘어서인지 아까부터 배도 고파 원주에서도 소문난 뽕잎 황태집을 수소문해 찾아 나선다. 몸에 좋은 뽕잎과 황태로 밥을 지어 간장과 된장에 비벼먹는 웰빙식. 착한 가격에서도, 푸짐하게 한 상을 차려내는 식단에서도 원주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었다. 조미료 맛 하나 없이 집에서 만든 듯 담백한 황태밥을 싹싹비웠다.
밀려드는 포만감을 뒤로 하고 시장 구경을좀더하기로 한다. 시장 곳곳에 근대의 흔적들이 보인다. 아직도 영업을 하고 있다는 오래된 이발관, 떡집, 깨진 유리창과옛간판들이 현대의 그것들과 어울려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마치 시간을 한 그릇에 넣어 버무려놓은 느낌이랄까? 시간의 흔적들을 찾으며 한참을 그렇게 시장 바닥을 헤맸다.

토지의 고향,박경리 문학공원

작가가 직접 거주하며 토지 4,5부작을 완성시켰다는 공간, 작가의 방을 훔쳐보고 싶어 찾은 곳은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이다. 18년 동안이나 이곳에 정착하여 글을 썼다는 작가는 그의 글을 바느질에 빗대어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듯 한땀 한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게 아니었을까’라고 쓰기도 했다. 과연 그의 집필실을 둘러보니 정갈한 방에 나지막한 나무 책상 하나. 철저히 고독한 시간과 공간속에서 한줄 한줄 바느질 하듯 글을 써가는 작가의 모습이 마치눈 앞에 보이는 듯했다.

한국 근대사에서 토지가 차지하는 의미는 매우 크다. 문학적으로도 그렇지만 한국 근대사를 수려한 필체로 그려놓아 역사적 고증 자료로도 중요하다. 총 5부25편으로 26년(1969~1994)에 걸쳐 완성한 대하소설. 토지를 통해 작가는 한국 근대, 민초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또한 신분질서의 와해와 일제 침략으로 인한 수난사, 근대적인 것 앞에서 몰락해가는 군상들을 손에 잡힐 듯 묘사했다. 또한 이를 통해 민족애를 높이고 우리 전통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표현했다. 생가를 나와 문학의 집을 기웃거려 본다. ‘글을 쓰지 않는 내 삶의 터전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박경리 선생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일생은 그대로 우리 근대사를 살아낸 삶의 역사였다. 일제강점기, 6·25, 민주화 물결을 흘러온 세월들이 반곡역을 거쳐, 치악산 자락을 거쳐, 이곳 박경리 문학공원, 대하소설 토지 위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원주로의 여행은 그렇게 지난 시절의 흔적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

만족도조사
유용한 정보가 되셨나요?
만족도조사선택 확인
메뉴담당자 : 대변인실
페이지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