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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함경남도 여성들의 봄맞이 놀이, 돈돌날이
작성일
2013-05-1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4736



한식寒食과 ‘돈돌날이’

“한식 다음날이면 신포시, 북청군, 신창군을 비롯한 함경남도 일대와 양강도 일부지역에서 돈돌날이를 하면서 놀았죠. 그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게 돈돌날이가 전승됐던 곳이 신포시와 북청군이에요.” 함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 ‘돈돌날이’동영범 보존회장의 설명이다. 북청군에서는 각 마을의 여성들이 남대천 강가나 모래산에 모여 달래를 캐다가 오후 무렵 춤을 추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놀이를 ‘달래터놀이’라고 하였고 여기서 추는 춤을 달래춤이라고 했다.
춤판에서는 피리나 퉁소 같은 악기 반주와 함께 ‘이 강산 서산에’, ‘도레미쏘’, ‘거스러미노래’,‘시집 안 가겠다고’를 비롯한 20여가지의 노래가 번갈아가며 불려진다. 놀이판에서 부르는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돈돌날이’여서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은 점차 ‘돈돌날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됐고, 지금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돈돌날이, 희망의 노래

“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 모래 청산에 돈돌날이요. 시내 강변에 돈돌날이요. 오막살이 초가집에 모래강산아, 리라 리라리 돈돌날이요, 리라 리라리 돈돌날이요.”
원래 ‘돈돌’은 회전을 의미하며, 동틀날 곧 여명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 북청 지방 사람들은 언젠가는 잘 살게 되리라는 가지고 돈돌날이를 불렀어요.” 이처럼 이 지역 여성들은 가난을 원망하기보다 춤과 밝고 경쾌한 노래로 희망을 찾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는 돈돌날이가 식민지가 된 우리 땅이 다시 우리의 손에 되돌아온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항일의 성격을 띤 민요로 부각되기도 했다.“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은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노래를 부르며 노는 놀이와 춤은 일제강점기에 형성되었다고 해요.”
선율의 진행도 창가唱歌와 닮아 있고, 이 지역 향토 민요의 고유음계와도 다른 면을 보이고 있어, 돈돌날이는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의 전통 위에 창가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경남도 사람들의 남녘에서의 봄맞이

매주 수요일이면 이북5도청의 연습실에서는 손뼉 치는 소리와 흥겨운 노래가 울려 퍼진다. “이곳에서는 함경남도에서 내려 온 고향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함께 모여서 돈돌날이판을 벌이면 신나지요.”돈돌날이가 1998년에 함경남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으니, 보존회원들이 함께 한 날도 제법 오래되었다.
“옛날에 북청에서 놀 때 대단했지요.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흥이 오르면, 둥그렇게 둘러앉은 가운데로 한명씩 뛰어들어 춤을 추고, 주변 사람들은 신나게 노래를 불러서 흥을 돋구고. 그러다가 여러 모양으로 대열을 지어서 손목도 돌리고, 발을 살짝살짝 뒤로 들며 춤을 추니 아주 신이 났어요.”연세 많은 한 전승자가 고향에서 추었던 때만큼 춤동작이 활발하지 못해 아쉽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돈돌날이 보존회원들 중 대부분이 70세 정도이니 그럴 만도하다. 그런들 어떠하랴 이들이 있어 함경남도의 봄맞이 축제를 남녘에서 느낄 수 있을 수 있으니 그 자체로 고마운 것을.

글. 황경순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사진. 연합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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