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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사랑

제목
용담사 석불입상이 더 아름다운 이유
작성일
2013-05-13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3794



강진 월남사지의 진각국사 탑비

남도 강진의 명산 중 하나로 꼽히는 월출산 남쪽 기슭 한 쪽에 자태 우람한 석탑이 서 있다. 석탑에도 근육이나 알통이 있다고 해도 좋을 만큼 볼륨감이 특히 두드러지게 석재를 잘 깎아서 쌓았다. 이곳을 월남사月南寺라는 옛 사찰이 있던 자리라 해서 월남사지月南寺址라 하니, 월남사라는 옛절 이름 자체도 월출산 남쪽에 있다 해서 얻은 이름일 터이다. 이곳을 증언하는 옛 기록을 보면, 월남사는 특히 고려시대에 번영을 구가한 듯 하지만, 그 영화의 흔적은 다사라지고 오직 이 삼층석탑에서만 그 아득한 편린을 엿볼 뿐이다.
지금은 수풀이 우거지고, 그 중심 구역에서는 발굴조사도 이뤄지는 이 월남사지 한 쪽 구석에는 수풀에 가린 작은 사각형 기와 건물이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듯이 어떤 비석을 보호하는 시설인 비각碑閣이다. 이 비각 안에는 한 눈에 봐도 고색창연하면서도 육중함을 자랑하는 비석이 있다. 이 비는 월남사의 실질적 창건주라 할 만한 고려시대 중기의 고승 진각국사眞覺國師혜심慧諶(1178~1234)이 입적하자 그의 공적을 기려 세운 것이다. 탑비는 머리에 해당하는 이수 首부분은 사라지고, 몸통에 해당하는 비신碑身이 위쪽 일부분이 떨어져 나간 채 거북 모양 비석 받침돌인 귀부龜趺에 꽂힌 상태로 남아 있다.

얼마 전에 남도 일대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길에 월남사지 현장에 들른 나는 이 비를 볼수록 갑갑함을 지울 길이 없었다. 그것이 일부가 깨져 나갔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그릇인 보호각이 탑비를 옥죄는 듯 했기 때문이다. 비를 보호한다고 설치한 건물이 온통 나무창살로 그것을 가리다 못해, 철창 안에 가둬둔 듯한 모습이 보는 이의 분통을 자아낸다. 아마도 월남사지는 발굴조사 완료와 더불어 정비가 될 것이며, 그에 맞추어 진각국사비 또한 적절한 외투를 다시 걸쳐 입으리라 기대해 본다.



보호각을 뜯어 더 아름다운 서산 마애삼존불

이처럼 보호각이라는 이름으로 설치한 각종 전각이 실은 보호는 커녕 해당 문화유산 그 자체는 물론이려니와 주변 경관까지도 망치는 일이 전국 곳곳에 산재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도사린다. 이 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낸 까닭은 비판만 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곳도 엄연히 존재하며, 그런 좋은 보기들을 통해 지금의 문제점을 고쳐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불교유산 중에 저명한 서산 마애삼존불이 있다. 백제의 미소라는 이름으로 일컫는 이 마애불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호각 안에 봉안된 상태였다. 이를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 또한 만만치 않았으며, 그 반대편에서는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철거한 지금, 보호각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찾을 수 없다. 그만큼 잘한 결단이다.

물론 저런 마애불은 그것이 남은 상태를 보면 보호각 비슷한 시설이 예외 없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예컨대 남도 답사길에 들른 고창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을 보면 마애불 상호相好주변 바위면 곳곳에는 구멍을 팠으며, 더구나 그 구멍 일부에는 아직 박힌 나무가 더러 남아 있다. 이는 틀림없이 애초에 이 마애불을 만들 무렵에 설치한 보호각의 흔적이다. 서산 마애삼존불에도 이와 거의 똑같은 바위 구멍이 있으며, 그 외 웬만한 규모를 자랑하는 마애불에서는 공통으로 보이는 보호각의 흔적이다. 이들 구멍의 흔적이 정확히 우리가 요즘 생각하는 보호각인지 여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요즘도 사찰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이나 극락보전 같은 곳을 보면 부처님을 봉안하고 그 위에는 닫집이라는 장식을 볼 수 있으니, 아마도 이 닫집을 설치한 흔적이라고 보아도 대과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여 이제는 그것이 닫집이건, 혹은 진각국사비의 보호각 같은 시설이건 관계없이 그것이 없어야 오히려 그 문화유산이 빛을 더욱 발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옥죄는 보호각에서 빛내는 보호각으로

내가 직접 다녀본 곳 중 그 유산을 더욱 빛내는 보호각 시설로 서슴없이 남원 용담사를 든다. 일반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 사찰에는 입구를 기준으로 우람한 칠층석탑과 아름답기만 한 석등 뒤로 높이 6m에 달하는 거대한 석불입상이 참배객이나 관람객을 맞는다. 이 중에서도 석불입상은 여타 다른 지역에서라면 갑갑한 전각 안에 모셨을 법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그것은 보호각을 설치하기는 했지만, 그 보호각이 석불을 갑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장엄莊嚴하는 효과를 낸다. 사방 벽면은 텄으며, 전면은 활짝 열어 놓았다. 불상 높이에 걸맞게 보호각을 날렵하게 만들어 세웠다는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문화유산 보호각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 설혹 옛날에는 마애불 닫집이 있었다 해서 섣불리 닫집형 보호각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옷을 바꿔 입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최대한 전통을 살려야 한다. 신도비나 탑비의 보호각을 만든다 하면, 그것이 이들 유산을 옥죄는 쇼생크가 아니라, 그것을 더욱 빛나게하는 아름다운 치장이 되었으면 한다.

글·사진.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문화재 전문기자) 사진.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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