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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드는 재미 노는 재미, 수수깡 안경
작성일
2015-03-09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6959

만드는 재미 노는 재미, 수수깡 안경. 수수의 줄기를 수수깡이라고 해야 하나, 수숫대로 불러야 하나? 원고를 쓰면서 먼 저 막히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니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었다. ‘1. 수수의 줄기. 2. 수수나 옥수수 줄기의 껍질을 벗긴 심. 미술 세공의 재료로 쓴다.’ 그럼 수숫대로 써도 되고 수수깡이라고 써도 된다는 말이다. 같은 의미인데 왜 이렇게 달리 쓰게 되었을까? 추측하건데 수숫대는 아직 수확하지 않고 밭에서 있는 수수의 줄기를 말할 때 쓰이고 수수깡은 베어서 말린 대를 뜻하지 않을까 싶다.

 

옛 기록에 전하는 수수깡

수수는 조, 피, 기장과 함께 고대로부터 주요 식량의 하나였다. 특히 수수는 생육 기간이 다른 작물에 비 해 짧고 척박한 땅이나 가뭄에 강해서 구황식물의 하나로 각광 받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다음과 같이 명절의 풍습을 노래했다. ‘종로거리를 나서니 길은 십자로 통했고 / 밤을 알리는 종소리 뗑 뗑 들리는구나 / 신년에 온 나라는 화간을 허옇게 세고 / 풍속에 따라 집집마다 약밥을 먹는구나 (중략)’ 여기에서 화간禾竿이란 정월 대보름날 풍년을 기원하면서 수수깡으로 벼나 조 이삭의 모양을 만들어 다는 것을 말하는데 수수깡이 주술에 이용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밖에 김경선(金景善, 1788~1853)이 중국 동지사로 중국을 방문한 후 북쪽 지방에 수수깡이 지붕의 재료, 거름, 울타리, 온돌의 자리, 곡식이나 과일 바구니, 연료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음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중국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수수깡의 쓰임이 많았다. 연료로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집 의 벽을 만들 때 엮어 기둥으로 삼고 양쪽에 흙을 발라 쓰기도 하고, 얇은 부분만 추려서 발을 만들어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쓰임 많고 흔해 놀이감이 된 수수깡

이렇듯 알곡에서부터 수수깡까지 쓰임이 많았기에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고 이는 아이들의 놀이감으로 활용하기가 쉬웠다. 놀이감의 활용 중에 으뜸이 수수깡 안경이다. 필자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다니던 70년대 미술 공작 시간에 꼭 수수깡 안경을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 글을 쓰려고 문구점에 갔더니 플라스틱으로 만든 수수깡을 주면서 이것밖에 없단다. 그래서 수수깡의 껍질도 써야 한다고 하니 그건 구할 수 없다고 한다. 재배면적이 줄고 손 이 많이 가는데 비해 값이 헐해서 더 이상 만들지 않아 플라스틱으로 대체된 것이다. 급기야 시골에 가서 빈 들판을 돌아다니며 어렵 게 수수깡을 구해서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안경을 만들었는데 속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을 이용해 만들게 되었다. 수수깡 안경에 과거와 현재가 함께 있게 된 셈이다.

수수깡 안경은 가을에 수확한 수숫대를 비가 맞지 않게 말려 잘 보관해 두었다가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아래쪽은 속이 비어 있어서 중간 이상을 사용해야 하는데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하나, 속이 꽉 찬 수수깡을 20~30cm 정도 자른다. 둘, 껍질과 속대 모두를 사용해야 하므로 껍질은 벗겨 따로 놓아둔다. 셋, 속대는 가볍고 잘 부러지므로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안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2cm정도 길이의 속대 5개, 3cm정도 2개가 필요하다. 넷, 안경 알 부분은 껍질을 둥그렇게 휘어서 위쪽 반원을 만들어 속대에 고정하고 같은 방법으로 아래쪽을 만든다. 이와 같이 2개를 만들면 안경알이 완성된다. 다섯, 완성된 안경알을 연결할 부위에 속대를 놓고 그 사이를 껍질로 찔러 고정시킨다. 여섯, 안경알 바깥쪽의 속대를 껍질(7~9cm)로 찔 러 안경다리를 만든다. 일곱, 끝 부분은 속대를 약 30°정도 비스듬히 찔러 귀걸이를 만든다. 맞은편도 이와 같이 한다. 여덟, 안경이 완성되면 써보고 간격을 조정한다.

수수깡안경 모양 일러스트

 

아이들의 작은 ‘반란’이었던 수수깡 안경

조선시대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젊은이나 아이가 안경을 쓴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안경은 노인의 상징이요 이는 어른, 권위, 존경의 뜻으로 이해되었다. 아이들이 수수깡으로 다른 것도 아닌 안경을 만든 것은 써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란’이었을 것이다. 안경을 쓰고 할아버지 흉내를 내면서 느린 팔자걸음을 걷고 또 헛기침도 하면서 남은 수수깡으로 만든 곰방대를 물고 주위 아이들에게 헛 호통을 치면 이에 뒤질세라 집으로 달려가 서로 만들었기에 다른 것도 아닌 수수깡 안경이 오랜 전승력을 얻게 된 것이다.

큰 잘못을 해도 ‘놀다가 그랬는데’ 하면 왠지 악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은 놀이가 가진 비일상-환상-상상에 대한 공감 때문이다. 놀이란 어쩌면 이런 곳에서 숨 쉬고 활개 칠 수 있다. 이를 가장 잘 구현한 것이 수수깡 안경이 아닌가 싶다. 수수깡 안경을 끼면 괜히 헛기침이 나온다. “에~헴~”

 

글. 이상호 ((사)놀이하는사람들 대표) 일러스트. 박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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