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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작성일
2012-08-14
작성자
국가유산청
조회수
5472



손기정, 고난을 넘은 세기의 역주
손기정은 1912년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스케이트나 야구보다 달리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1928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손기정은 지역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며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손기정은 1931년 처음으로 공식대회인 제7회 조선신궁경기대회에 참가해 우승과 더불어 마라톤을 처음 알게 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배움에 대한 의욕으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육상지도와 훈련을 받기 위해 당시 육상의 명문인 양정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양정고등보통학교 입학은 손기정의 마라톤 인생에서 하나의 분수령이었고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후 손기정은 1933년 3월 경영마라톤대회, 동년 10월 조선신궁경기대회 마라톤, 1934년 전조선풀마라톤대회 등 각종 경기대회의 마라톤뿐만 아니라 중장거리, 계주에도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조선육상계의 일인자로 떠올랐다. 이러한 경험은 손기정의 마라톤 선수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결국 마라톤에서의 세계신기록 달성과 올림픽 제패를 가능케 했다. 특히 1935년에는 한 달에 1번 걸러 마라톤에 출전해 전부 세계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보이며 당대 최고의 마라토너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손기정은 일본에서 베를린올림픽 후보선발전을 겸해 개최된 대회에 출전해서 2차례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올림픽출전권을 획득했다. 이는 당시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 비록 일본대표로 올림픽대회에 참가했지만,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올림픽이라는 국제스포츠무대의 장을 통해 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에 출전한 손기정은 올림픽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차지했는데, 손기정의 우승은 올림픽무대에서 각국의 선수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국민에게 민족의 영예와 자신감을 심어 주었으며 올림피아 사상 영원히 빛날 것이라고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손기정은 우승 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외국인들의 사인요청에 ‘손긔졍 KOREAN’으로 사인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 후 손기정은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의 일장기말소사건으로 어쩔 수 없이 은퇴한 후, 지도자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며 후계자 양성을 위한 인재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46년에는 ‘조선마라톤보급회’를 조직하고 마라톤의 저변확대를 위해 각종대회를 개최하며 선수들을 육성, 발굴해 그 결실이 보스턴마라톤대회의 2차례 우승과 도쿄아시아경기대회의 우승으로 이어졌다. 이는 광복 후 코리아라는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우리 선수들이 세계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한 것으로, 당시 국내의 혼란한 사회정세 속에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다!
1936년 8월 9일 제11회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손기정이 올림픽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하자 조선의 전 국민은 감격에 겨워 열광하고 각 신문들도 호외를 발행하는 등 매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보름 후인 8월 25일 동아일보 기사에는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가 지워진 사진이 지면에 실렸다. 이것이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 유명한 일장기말소사건이다.

일장기말소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아일보는 8월 25일자 석간 2면에, 일본 주간지 <아사히스포츠>에 실린 월계관을 쓰고 시상대에 오른 손기정의 감격적인 사진을 복사해 전재했다. 그런데 초판에는 일장기가 선명하게 보였으나 재판에는 원본과 달리 유니폼 가슴부위의 일장기가 교묘하게 삭제되어 있었다. 체육부기자 이길용이 전속화가인 이상범에게 사진 속의 일장기 처리를 상의했고 두 사람은 손기정이 일본인을 이기고 세계를 제패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해 손기정 가슴의 일장기를 지우게 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이길용을 비롯한 동아일보 기자와 편집자들은 옥고를 치루며 동아일보를 그만두어야 했고 동아일보사도 9개월간이나 정간처분을 받았다.

일장기말소사건에 대해 당사자인 이길용은 손기정의 우승이 준 감격과 환희가 조선민족의 혼을 되살렸고 조선의 청년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면서, 민족적 감격에서 비롯된 일장기말소사건은 죽어서도 잊지 못할 중대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한편 동아일보사 사주인 김성수는 일장기말소사건은 당시 조선총독부의 문화통치정책으로 인해 민족지도자들과 사회저명인사들이 친일파로 변질되어 가는 상황에서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이며 동아일보가 민족지로서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일장기말소사건은 일제의 식민지통치하 실의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에게 손기정을 통한 대리만족, 즉 용기와 희망, 그리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며 당시 조선사회의 지도자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 역할을 했다.



한국의 스포츠영웅, 손기정
대한체육회는 2011년 체육발전 공헌도, 사회적 상징성, 도덕성 및 인품, 경기력 및 활약상, 국민적 지지 등의 기준에 따라 모든 체육인의 귀감이 되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스포츠인사라는 차원에서 ‘스포츠영웅’에 손기정을 선정했다. 스포츠영웅 사업은 한국스포츠의 발전에 공헌한 체육인을 사회적인 예우 차원에서 선정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고 자긍심을 고취시킴으로써 이를 국가적 자산으로 인식하고 체계적인 육성과 지원을 하도록 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한편 문화재청은 2012년 손기정 탄생 100주년을 맞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대회 마라톤에서 우승으로 받은 금메달, 우승 상장, 시상대에서 쓴 월계관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손기정 기념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이들 유물은 한국인 최초로 획득한 올림픽 금메달로서 체육사·민족사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손기정은 한국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한 체육인들 중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아 한국에서 처음으로 스포츠영웅에 선정되었으며, 또한 베를린올림픽 우승관련 유물도 그 가치를 평가받아 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끝으로 한국의 스포츠영웅 손기정에 대해 독일인 슈테판 뮐러가 쓴 ‘마라톤 영웅’ 손기정에 관한 글을 소개하고자 한다.
"여러분들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지도를 펼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아마 알고 계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반도 하나가 놓여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반도가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닌 나라입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이 조그마한 나라의 어떤 마라토너입니다. …중략… 나는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에 얽힌 엄청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1936년 히틀러 정권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개최됩니다. …중략… 하지만 시상대에 오른 두 일본인의 그 표정이라는 것이… 그건 인간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슬픈 표정입니다. 왜 두 사람은 그런 슬픈 표정을 지으며 시상대에 올라 있는 것일까요? …중략… 그들의 가슴에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의 붉은 원이 붙어 있었습니다. …중략… 일본의 검열 하에 이 기사를 실었던 동아일보는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합니다. …중략… 그 후 일본정부는 신문사의 폐간을 결정합니다. 이런 야비하고 무지한 동시에 무식한 억압이 어디에 있습니까? …중략… 그 후 이 나라의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이 개최되었습니다. 52년이 지난 후에 말입니다. …중략… 그리고 개회식 세리모니에서 성화주자로 경기장에 들어선 사람이 바로, 그 당시(1936년) 몹시도 슬프고 부끄러워했던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씨였습니다. 손에 성화를 든 백발이 성성한 이 슬픈 마라토너는 마치 세 살배기 아이처럼 기뻐하며 달렸습니다! …중략… 그 당시 모든 한국인들은 이 노인에게, 아니 서로서로에게 그동안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대로 계속 보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이 이야기는 슬픈 눈물로 시작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습니다.”




글·사진·손환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과교수 사진·문화재청,손기정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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